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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7. : 맺음말 : 이사가기 싫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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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락희 [rakhi] 쪽지 캡슐

2005-05-23 ㅣ No.5430

 

나의 사랑 중계동 성당 7. : 맺음말 : 이사가기 싫은 이유


 

집에서 성당까지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가 걸린다.

당현천 변으로 오솔길이 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철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데,

지금은 줄장미의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고,

인들레와 애기똥풀꽃. 토끼풀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이 지천이다.


이사 가기로 결정한 후부터는

이 길을 눈에 담아두려 일부러 천천히 걷곤 했다.

노란 개나리가, 눈처럼 날리던 벚꽃이,

그리고 올해는 이상하게도 별로 고울 새 없이

금방 져버린 철쭉도 이미 담겨 있다.


둘러가도 걷고 싶을 이 길이

성당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이 길에서 꽃을 느끼며 걸을 때,

김신부님의 꼬마 조카 얘기가 떠오르곤 했다.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주시잖아!’

했다지......



몇 년 전에 약 두 달 동안 다른 성당에서 매일미사 참례를 한 적이 있다.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었는데,

산꼭대기에 있는 성당에 가려면,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었다.

게다가 주택가를 지나서 가야하는 데,

새벽미사를 갈 때는

으슥한 축대 밑을 피해서 돌아가야 했다.

미사가 시작될 즈음에는 땀이 뻘뻘 나는데,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면,

땀이 식으면서 으슬으슬 했다.

 

집에 돌아와 우리 성당을 가려니까,

큰 맘 먹지 않아도,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게다가, 외출을 하고 집에 들어올 때도

중계역에서 내리고,

걸어서 5분이면 이미 성당 안에서 성체조배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코앞에 성당을 실감했다.

성당의 입지가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그전에는 잘 몰랐다.


다만 몇몇 레지오 형님들이,

적십자 혈액원의 별관에 눈독을 들여,

기도를 하고 계신단다.

‘우리 성당과 저걸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두)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계동 성당은

말씀의 은사가 남다른 곳이다.


이미 12년동안, 여러 신부님을 맞고, 보내고 했지만,

아직도 문득 그분들의 면면이 음성과 표정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예사롭지가 않은 곳이다.


늘 같은 시간에 매일 미사가 있고,

어김없이, 기막힌 강론을 들을 수 있다.


주임신부님의 말씀은 멀리 쿠웨이트에서까지 목말라하니,

말해 무엇 하겠나?

그전에도 언급했지만,

신부님의 강론 중에 교정된 나의 생각과 행동이 부지기수다.


최신부님의 명성은 오시기 전부터 자자했다.

어린이 미사에서는 그 분의 부드러움 속에서,

전혀 다른 카리스마가 폭발하듯이 나오는데,

아이를 주일학교에 보내는 엄마 입장으로 보면,

사랑 많으신 친근한 목자의 모습으로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말씀이 좋은 터여서 그랬을까?

김신부님을 우리 성당에 붙잡아 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당신 스스로는 많이 불편하셨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갖지 못했던 신앙의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로도 들을 수 없었다.

(음성이 너무 작으셔서)

말씀에 귀 기울이는 훈련까지 해 주신 셈이다.

6월에는 가셔야 한다니,

서운하기 이를 데 없다.

참, 나는 이사 갈 테니,

나보다 남는 우리 교우들이 더 섭섭하겠네.

(뭔가 말이 이상하다. 나도 많이 서운한데......)


 


그리고,

미사 후에,

공부 후에,

모임 후에

함께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누었던,

우리 성당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나는 정말 이사 가고 싶지 않다.(끝)




  6월 18일로 이사 날짜가 잡혔습니다. 사실 예정된 날보다 한 달 정도가 늦춰지는 바람에 경제적이 부담이 그만큼 커졌습니다. 가기 싫던 이사가 날짜가 지나가면서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도 하고 하나도 걱정 안 된다며?’하면서 나무랐지요. 결국 믿던 대로 예기치 않게 일이 성사되더군요.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가장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만약에 예정된 날에 갔더라면, 둘째와 셋째는 학교 수련회를 갈 수 없었을 텐데, 날짜가 바뀌는 바람에 두 아이 모두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사 가기 서운했던 내 마음이 갈 수 있도록 성사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저는 ‘이사’라는 것을 통해서, ‘내가 이 세상을 이사할 때는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 때도 주님께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저의 하찮은 글에 시간을 내어 들러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마도 중계동 성당을 사랑하는 분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내내 목이 매이고 몸살을 앓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현명함으로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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