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울성당 게시판

악착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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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marianna02] 쪽지 캡슐

1999-12-16 ㅣ No.622

어른이 읽는 동화에 많은 호응이 없는거 압니다만 그래두 악착같이 올리렵니다. -_-;;

그 뒤에 이어서 씁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감나무 가지 위에 휘영청 보름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젊은이의 발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가슴을 억누르고 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젊은이의 발걸음소리는 바로 내 머리같에 와서 딱 멈추었습니다.

  나의 가슴은 크게 고동쳤습니다.  달빛에 비친 젊은이의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나는 고요히 숨을 죽이고 젊은이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팔을 벌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젊은이는 고의춤을 열고 주저없이 나를 향해 오줌을 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아, 나는 그만 오줌독이 되고 만 것이 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슬펐습니다.  아니, 슬프다 못해 처량했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며 열망해온 것이 고작 이것이었나 싶어 참담했습니다.

  젊은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오줌을 누고 갔습니다.  젊은이 뿐만 아니었습니다.  젊은이의 아이들도, 가끔 들르는 동네 사람들도 오줌을 누고 갔습니다.  내가 오줌독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국 나는 오줌독이 되어 가슴께까지 가득 오줌을 담고 살고 있었습니다.

  곧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날은 갈수록 차가웠습니다.  강물이 얼어붙자 오줌도 얼어붙어버렸습니다.  나는 겨우내 얼어붙은 내 몸의 한쪽 구석이 그대로 금이 거가나 터져버릴까봐 조마조마해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내 몸이 온전한 채 봄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얼었던 강물도 녹아 흐르고 얼어붙었던 오줌도 다 녹아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렸습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에는 내 몸에 가득 고인 오줌을 퍼다가 밭에다 뿌렸습니다.

  배추밭에는 배추들이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무밭에는 무들이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나는 그들이 싱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내가 오줌독이 되어 오줌을 모아 줌으로써 그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나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만은 아니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줌독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늘 가슴 한쪽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여전히 오줌독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여전히 오줌독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오랜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내게 오줌을 누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굳이 누가 있다면 새들이 날아가다가 찔끔 똥을 갈기고 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독 짓는 젊은이는 독짓는 늙은이가 되어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독 짓던 가마 또한 허물어지고 페허가 되어 날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느새 오줌독의 신세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오줌독 따위가 아닌, 아름답고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이 어떠한 꿈을 꾸었느냐 하는 그 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면, 나도 큰 꿈을 꿈으로써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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