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엄마와 좀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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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23 ㅣ No.5358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없어진다는 걸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엄마였습니다.

"엄마, 뭘 그렇게 찾아?"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 둔 것 같은데."

처음엔 우리 모두 엄마의 건망증이려니 생각했고 없어지는 물건도 쌀, 라면, 조미료 같은 하찮은 것인데다 양이 적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휴...."

엄마는 빈 찬장을 보며 낮은 한숨만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매주 수요일, 엄마가 집을 비우고 난 날이면 어김없이 일어났고 집안이 누군가의 손을 탄다는 건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엄마, 경찰에 신고할까?"

나는 열쇠를 바꾸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엄마는 한숨만 지으며 그런 나를 말렸습니다.

오히려 그 좀도둑이 올 때 쯤이면 기름진 음식을 만들어 놓고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에 돈을 놓아두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선행이 못마땅해 좀도둑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문화센터에 가는 수요일.

나는 도서관에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엄마의 외출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분 뒤, 달그락대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누군가 조용히 안으로 들어 오는데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야구방망이 쥔 손에 힘을 주고 있다가 그만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헉."

좀도둑은 다름 아닌 시집간 누나였던 것입니다.

"어...?"

나는 잠시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결혼한 누나가,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 집을 만삭의 몸이 되어 몰래 찾은 것입니다.

돌아누울 곳도 없는 초라한 방에서 얼마나 못 먹고 얼마나 뒤척였는지 그 곱던 얼굴이 반쪽이 된 누나를 보고서야 좀도둑을 때려잡자는 말에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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