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아버지가 사 주신 중고차

인쇄

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27 ㅣ No.5372

 

 

어느 날 저녁 뜨게질을 하던 아내가 뜬금없이 말했습니다.

"여보, 저기... 우리도 차 한 대 새로 살까 봐요."

"차? 아니 우리 차가 어때서?"

"아버님 병원 가실 때마다 불편해 하시잖아요."

듣고보니 그랬습니다.

폐암에 걸려 투병증인 아버지.

착한 아내는 불편한 승합차로 아버지를 병원까지 모시고 다니는 일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자동차 광고 전단을 잔뜩 구해대 늘어 놓고 가격과 연비 같은 것을 꼼꼼히 따졌습니다.

마침내 새 차를 고르고 선금까지 치른 어느날 밤, 카센터를 하는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다들 잘 있지 그럼. 근데 무슨 일 있냐?"

"응, 그게... 아버지한테 전화 안왔어?"

"전화? 안왔는데?"

"어? 아버지가 오빠네 준다고 중고차를 하나 사 놓으셨는데..."

아들이 털털거리는 승합차를 10년 넘게 쓰는 게 안쓰러웠던 아버지가 시금치를 팔아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80만 원짜리 중고차를 사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또 다른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신이 사 주신 차를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아버지...

새 차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아내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새 주시는 차 받자."

"뭐? 애들은? 계약금은?"

"지금은 아버님만 생각하자구요. 계약금은 무르면 되고 애들은 달래지 뭐."

자동차가 도착하던 날 밤, 아내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님, 차 잘 탈게요. 네  네. 아뇨 아직 새 차던걸요."

아내의 착한 거짓말에 아버지가 얼마나 흐뭇해 하실지...

다음 날 우리 부부는 징징거리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 아버지가 사 주신 80만 원짜리 중고차를 몰고 아버지 계신 고향집으로 첫 드라이브를 나섰습니다.

 



5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