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캬뮤를 작가로 만든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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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gnre206] 쪽지 캡슐

2002-06-08 ㅣ No.2350

캬뮤를 작가로 만든 축구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뮤는 대학 시절까지 축구선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로 골키퍼를 했다. 골키퍼를 해야 신발이 가장 덜 닳았기 때문이다. 집이 가난했던 그는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사치를 감히 꿈꾸지 못했다. 매일 저녁 그의 할머니는 신발 창 검사를 했고, 신발이 많이 닳았을 때는 회초리를 들었다. 내성적 성격의 그는 골키퍼를 하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다. 축구는 그를 실존주의 작가로 만들었다. <공은 누군가가 오기를 바라는 방향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축구를 통해 배웠다. 그것은 나의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람은 때때로, 특히 대도시에서, 소위 올바르다는 말을 듣는 존재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축구는 가난한 소년들의 변함 없는 벗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이나 방학 중에 이웃동네 아이들과 가끔 내기 축구를 벌였다. 주로 두 동네 아이들이 돈을 모아 싸구려 고무 축구공 하나를 산 후, 이긴 편이 공을 차지하는 내기였다. 경기 도중 공이 터져 낭패를 본 적도 있지만, 5리쯤 떨어진 학교 운동장에서 돌아올 무렵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종달새처럼 가볍고 즐거웠다. 우루과이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 '축구, 그 빛과 그림자'는 소년에 대한 헌사로 시작된다. 이 헌사처럼 축구의, 혹은 월드컵의 즐거움을 함축한 말도 드물다. '이 글을 수년 전 칼레야 데 라 코스타에서 마주친 꼬마들에게 바친다. 그들은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모두에게 즐거운 월드컵 대회가 열린다. 축구장은 인류의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용광로다. 피부색이 다른 인종과 민족이 모여 공을 쫓아 달리고, 넘어지고, 치솟고, 환호한다. 갈색 피부의 선수는 야무져 보이고, 흰 선수는 늘씬해 보이고, 검은 선수는 유연해 보인다. 사람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축구가 생명에 내재된 원초적 충동을 가장 역동적으로 구현하는 운동이고, 관객도 같은 체험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16강을 능가하는 야심과 포부를 품고 경기장으로 향한다. 한국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날렵한 몸놀림과 투지, 지략으로 거인골리앗을 이기는 소년 다윗을 보게 될 것이다. 축구의 의외성은 우리를 놀람과 감탄으로 이끌면서 새로운 축구스타를 탄생시켜, 월드컵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다. 월드컵은 또한 노조 파업과 개고기 논란, 자동차 홀짝제 운행, 학교 휴업, 외국 윤락녀와 훌리건의 입국 등으로 얼룩지며 즐거움과 혼란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월드컵은 즐거운, 그러나 정상적인 혼란이다. 우리가 기대한 월드컵 효과는 이미 당도해 있다. 대회에 맞춰 거리를 산뜻하게 디자인하고 멋진 미술관 박물관 공원을 개장하여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열린 마음과 대등한 자세로 각국의 선수와 손님을 맞아 함께 즐기는 것, 그 과정에 국가간 상호 신뢰가 쌓여 경제 관계로 발전되는 것, 그것이 월드컵 효과다. '축구는 국민이 다른 위험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고의 스포츠'라는 냉소적 정의도 있지만, 월드컵 정쟁중단이 선언된 것은 좋은 일이다. 선언을 하지 않았어도 국민의 관심은 벌써 축구장에 가 있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정치 과열을 식힐 시원한 소나기와 같다. 잠시 정치는 잊어도 좋다. 2년 간격으로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에 의해 지구의 정치과열은 냉각되어 정상을 회복한다. 월드컵 동안에 정치보다 더 의미 있는 문화적 가치와 인간적 기쁨이 있음을 만끽해 보자. 지구가 둥근 것은, 신이 축구 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의 어느 시기가 왁자한 축구의 날로 채워진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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