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오호통제라! 불타버린 내 집이여!!

인쇄

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7-04-16 ㅣ No.3970

답십리교우님들 오랫만입니다, 자주 안 들렀더니 인연 끊어지나 싶어 알쫀합니다.

글이라도 하나 남겨서 안부라도 전해야지 싶어 제 슬픈 얘기 하나 하렵니다.

굿뉴스에 올린 제 이야기 입니다.

 

이 세상에 내 이름으로 허가가 난 교회건물이 하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큰 위안이었고 남들한테 자랑하기는 뭐 하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큰 뿌듯함이기도 했다.

 

2004년 8월 굿뉴스 자유게시판 게시번호 70703호로 내가 올린 “내가 개종(?)을 한 이유”라는 글에서 약간 언급한 부분이긴 하지만 내가 젊었을 때인, 그러니까 약 27년 전에 보르네오 섬에 있는 원목회사에 근무했었을 때 그곳에 근무하는 한국인종업원 및 가족까지 합쳐서 약 60명의 한국인 중에 기독교신자가 무려 20명이나 있었다.

기독교학교를 다닌 내가 그 회사에 입사하여 현장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그곳 한국인 직원들이 내가 현장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끈질기게 나를 공략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교회를 열심히 나가게 되었다.


교회건물도 없이 회사에서 지어준 직원사택을 돌아가며 한자리에 모여서 서울에서 보내 온 순복음교회 예배실황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주일예배를 올리던 그때,

얼마 뒤에 내가 회계(총무) 일을 맡아 통장을 보니 십일조를 내는 이들이 몇이나 있어서 그랬을 테지만 거금이 저금통장에 모아져 있었다.

“이렇게 돈만 쌓아두면 뭐하느냐? 이 돈으로 예배당이라도 하나 짓지?” 내가 어느 날 무심코 그 말을 한번 했다가 여러 사람에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누군 바보냐? 그런 생각 안 하게. 다 그런 생각 해 봤지만 이눔의 나라가 회교국가라서 교회 건축허가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니까 못하는 거지” 너만 똑똑하냐? 그런 뜻인 것 같았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찬스가 왔다. 회사 대표인 회장이 IOC위원이기도한 김운용 대한태권도 회장을 우리 현장에 모시고 와서 인도네시아 체육부장관에게 우리 현장이 위치한 남부칼리만탄에 회사 돈으로 한국 태권도장을 지어주고 한국인사범을 둔다고 발표를 하고 덜컥 기부체납계약을 해 버린 것이었다.(인니 IOC위원에게 선거선심을 쓴 듯 했다)

그런데 바로 그 태권도장 신축업무 진행이 업무과장인 내 소관 업무였으니 절호의 찬스였다.

태권도장 신축문제로 주지사를 자주 만나면서 쌓은 현지 인맥을 동원해서 나는 드디어 회교국가에서 그토록 어렵다는 교회신축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건축허가를 낼 때 회사 이름으로 허가를 내서 가지고 왔더니 높은 분이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종업원의 85%가 모슬렘인데 회사이름으로 기독교교회가 세워졌다 하면 회사 입장이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노사문제라도 생기면 교회가 1차 방화목표물이 될 것이 뻔하다" 하면서 ................

“당신 이름으로 허가서류를 바꾸어라. 회사가 지어준 것이 아니라. 한국인 신자들이 자기들끼리 모금해서 지은 거라 말하면서 회사가 빠져 나갈 수 있으니까...”

 

결국 그렇게 되어서 “그레쟈 권 코리아” 예배당, 즉 150명이 한 자리에서 예배를 볼 수 있는 목조건물이 종탑이며 십자가를 높이 달고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천년을 가도 썩지 않는다는 철목이라고 하는 Ulin 나무로 지상 1m에 바닥을 깔고 그 위에 Kruing 제제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순 나무로만 교회건물을 지었다. 거의 공짜인 회사 운영 제재소의 나무를 가져다 쓰고, 유리와 지붕 슬레이트 대용인 울린시럽(얇은 Ulin나무판) 그리고 빗물받이 함석, 그리고 목수 품삯만 돈이 들어갔으니 큰돈 안들이고 번듯한 교회건물을 지은 셈이었다.  

그후부터 주일이 되면 한국인 신자들이 제일 먼저 예배를 드리고 곧 이어서 현지인 개신교신자들(주로 푸로레스나 티몰 티모르(동티모르) 자바 이주민 중에 기독교신자들이 많았다)이 예배를 보고, 밤에는 스피드 보트나 오토바이를 타고 현지인 신부님께서 오셔서 같은 건물에서 미사(천주교신자는 프로레스, 동티모르, 모나도(슐라웨시북부) 출신들이 많았다)를 드리고......

그야말로 신구교가 사이좋게 함께 사용하는 교회 건물이 되었다. 그때가 1983년 11월에 봉헌예배를 드린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얼마 전, 그 당시 인도네시아에 함께 근무하면서 예배당을 지을 때 함께 봉사했던 동료가 막내 결혼을 시킨다기에 강남에 있는 예식장에 갔었을 때 나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 교회가 불에 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동료가 얼마 전에 자신이 젊어서 일했던 그 현장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서 어렵사리 기회를 만들어 그 현장에 가서 교회를 찾아봤었는데 1998년 한국인이 완전 철수했던 그 무렵에 회사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났고 그 분규 때, 전에 내 상관이 우려했던 그대로 종업원 중 모스렘들이 교회건물로 몰려와서 불을 질렀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늘 내 마음 속에 큰 위안이 바로 그 교회 건물 하나였는데.......

1995년에 최계월 회장 책을 집필한 후에 보너스로 현장 공짜여행을 했을 때도 버젓이 내 이름을 달고 그 자리에 서있던 교회가 이제는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니....!!!

농담 삼아 ‘난 빽이 있잖아, 내 이름으로 된 교회가 있으니 하느님께서 좀 봐 주시겠지 뭐’ 했던 것도 이제는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결국 이제부터는 유혹 앞에서 내 몸을 사리는 도리 밖에는 딴 방법이 없게 된 셈이다.  오호애제라. 이 일을 어찌할꼬?............       



49 3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