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다시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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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yisangin] 쪽지 캡슐

2006-04-04 ㅣ No.1311

시와 수필 (209)
다시 시작하자 | 시와 수필
2006.04.01

 

 

<다시 시작하자>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이처럼 힘을 주는 말이 있을까.
시들고 있는 마음에 생명을 불어 넣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는 모두 하루를 깊은 어둠속에서 시작한다.
한해를 춥고 삭막한 겨울의 한 가운데서 시작한다. 모두 그렇다.
시작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신의 처지를 너무 어둡다고, 춥다고 탄식하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출발은 없다.
아직도 출발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포기해 버리려고
그럴싸한 구실을 찾아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그냥’ 시작하는 때가 많다. 두렵고 떨리지만,
사실 별로 내키지 않은 것도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밥 먹기 위해 하는 일만큼 성스러운 것은 없다. 당사자에게는 그런 일이 성직(聖職)이다.
그러니 성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면서도 또한 고통의 길이다.
그것만은 피할 수 없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오골계(烏骨鷄) 문화제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싸움을 벌이며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있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여린 날개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면서 사람의 눈이 얼마나 시큰거렸는지 모른다.

솔개 이야기다.
60~80년을 산다는 솔개는 날 짐승으로서는 가장 장수하는 새라고 한다.
그러나 40년 정도를 살다보면 부리, 깃털, 발톱이 다 상해서 사냥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때 두 부류의 솔개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죽은 동물만 먹자는 부류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부활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부류라는 것이다.

부활의 과정이 만만찮다.
높은 산 절벽이 있는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자신의 부리로 돌을 쪼아 댄다.
그렇게 부리가 다 부러져서 없어질 때까지 쪼아댄다. 피투성이인 것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며칠을 보낸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부리가 생겨난다.
새 부리가 생겨나면 자신의 발톱을 다시 쪼아서 다 뽑아낸다.
그리곤 자신의 깃털도 마찬 가지로 뽑아낸다.
마침내 새로운 부리, 발톱, 깃털을 가지게 되어서 전혀 새로운 새로 부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생의 어느 고비에 서게 되면 문득 많은 것이 변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치아가 약해지고 어깨가 결리고 배가 나오고 술에 약해졌다. 어디 몸뿐이었던가.
밥벌이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노하우도 더 이상 경쟁력을 잃었다. 녹슨 칼이다.

그런데도 모험이 싫어지고 변화가 두렵다. 갈수록 패기마저 없어진다.
대단한 것이나 이룬 양 어떻게든 안주하려 한다. 이점이 사람이 솔개와 다른 점이다.
죽은 먹이를 먹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솔개인간들은 그럴싸한 논리로 자신을 위로한다.
영리하니까.

지금이 시작할 때다.
‘미국의 샤갈’로 불리는 리버만이라는 화가가 있다.
그는 여든한 살에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일흔네 살에 은퇴한 후 바둑을 두며 소일했다.
그런데 하루는 바둑 파트너가 약속을 어겨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젊은 봉사요원이 말했다. “그림을 한번 그려 보시지요”
리버만은 화실을 찾았고 10주간의 교육을 받은 후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다.
여든한 살 때의 일이다.

화가 리버만은 일약 ‘원시의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로 불렸고 그림은 불티나게 팔렸다.
그는 백한 살에 스물두 번째 개인전을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심장의 고동이 멈추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너무 늦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시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난 것은 잊자.
마음이 아팠던 것, 실패했던 것, 이제 그만 뱉어버리자.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였거든 가뭄을 잊고 어서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서자.
밖에는 비올 낌새가 아직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비웃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때일수록  아이가 엄마를 믿는 것처럼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도 한때는 잊기의 선수들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누구나 다 그랬다. 그래서 행복했었다. 그래서...
즐거운 일도 쉬이 잊었지만 괴로운 일도 돌아서면 씻은 듯이 잊어버렸다.
그래서 아침은 늘 새로운 출발이었다. 멋진 도전이었다.
그때 벌였던 전쟁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 삶을 즐기자.
지금 영국에서 인생의 상종가를 향해 나날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이 영표는 말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그가 헛다리짚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승부가 아니라
진정으로 즐겁게 공을 차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아름답지 않은가.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해볼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고 있다면, 지체 없이 ‘그래, 그러자!’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왜? 사랑하니까...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니까.


그대로 인해 내 삶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기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없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입니다.
춥고 어둡던 방에 밝고 따뜻한 빛으로 그대가 오셨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퇴화되었던 눈이라서 나는 그대를 제대로 바라 볼 수조차 없습니다.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빛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나를 잘 이끌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무리 뜨겁다한들 한 번에 바다를 이룰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시간은 너무 더디 흐르고 그리움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대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고 울었습니다.
많이 무거우면 조금씩 내려놓으시고 답답하면 창문을 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대의 삶에도 지금 빛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 그대에게도 기적처럼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예,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4월의 첫주일 입니다

 모진 겨울을 이겨 내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봄의 계절처럼

새로운 출발로 시작하여 봅시다.

 

 

신영길님의 산문을 보며/ Buruno yi 

다음곡으로 바로 가실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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