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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순신은 조선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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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nuri] 쪽지 캡슐

2001-08-23 ㅣ No.8561

좀 긴 내용이지만 읽어두시면 좋을듯 싶어서 올립니다..

 


 

 

 

˝이순신은 조선의 사무라이?˝

 

 

전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였던 최상천씨가 쓴 ’알몸 박정희’(도서출판 사람나라)는 내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그의 말대로 박정희 시대를 발가벗긴 박정희의 내면, 박정희의 통치의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는 서문에 ’혼자 알고 있기에는 가슴 떨리는 이야기’, ’천기를 누설하는 마음’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강준만 교수 마저 극찬을 했던 이 책은 그다지 대중을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들이어서 일까? 그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들이 얼마나 잘못되었었는지를, 또 그들이 우리의 생각을 얼마나 악랄하고, 교묘하게 통제했는지를 보여준다.

 

 

최상천 교수는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박정희, 그는 근대화 혁명가인가, 1급 친일파인가, 독재자인가? 그러나 이 세 가지 얼굴은 박정희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진짜 정체를 보아야 박정희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 수 있다.

 

 

18년 권력자의 알몸 추적! 겁도 났지만 스릴과 재미도 컸다. 박정희의 알몸이 드러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 통념과 정설들은 허울을 벗어던졌다. 나는 박정희의 알몸을 보았다. 문화의 씨줄도 윤리의 날줄도 걸치지 않은 천연의 알몸, 거기에 박정희의 인생과 권력의 비밀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일본제국도 이루지 못한 진짜 천황주의까지 빛나고 있었다"

 

 

그가 밝힌 천기누설에 대해 매스컴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몇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는 박정희가 만든 ’성웅기획’의 일환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박정희가 깊이 감동받은 영웅전은 ’나폴레옹 전기’였다. 박정희는 정복자 나폴레옹 의 전기를 평생을 끼고 다니면서 정복자로서의 꿈을 다져나갔다. 또 박정희가 감동받았다는 다른 하나의 책은 이광수의 ’이순신’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났던 이순신은 진짜 이순신이나 이순신의 영령이 아니며, 보통 조선사람들이 사랑하는 ’호국영웅 이순신’도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인간 이순신이 아니라 이광수가 만들어낸 ’이순신’, 즉 ’성웅 이순신’을 만났던 것이다.

 

 

’이순신’은 이광수가 1931년 5월 30일부터 이듬해 4월 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켰던 그 민감한 시기에 왜적을 물리친 ’호국영웅 이순신’에 관한 작품을 썼으니 이광수를 애국자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역설적으로 그 시절은 우리의 군사정권때보다 훨씬 더 언론의 자유가 있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재작가 이광수의 고도의 속임수였다.

 

이광수는 1922년 ’민족개조론’이라는 글에서 3.1 운동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종이 지각없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말했으며, ’허위, 비사회적 이기심, 나태, 무신, 사회성의 결핍’ 따위의 타락한 민족성 때문에 조선은 독립능력이 없다고 못박은 친일 지식인이었다. 그는 틈틈히 더러운 조선민족을 버리고 사무라이정신을 가진 일본민족으로 통째로 바꿔야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이순신’은 보통 소설이 아니었다. 천재적인 ’일제인’ 이광수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엮어낸 ’성웅 기획’ 작품이다. ’이순신’이 민족의식을 일깨운 작품이라고 착각하면 그의 ’성웅 기획’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이순신’은 민족자학의식을 정신병적 경지까지 끌어올린 기획작품이며, 제작된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력을 발휘하는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이 최상천 교수의 설명이다.

 

 

최교수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한가지 자문을 해볼 것을 권한다. 이순신하면 일본의 침략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더러운 당파싸움이 떠오르는가? 만약 더러운 당파싸움이 떠오른다면 당신도 ’성웅기획’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소설 ’이순신’의 대결구도를 조선과 일본의 국가대결이 아니라 당파싸움에 초연한 ’성웅 이순신’과 당파싸움에 미친 조센징의 대결구도로 만들어버렸다. 이광수는 이야기를 미친 조센징들의 ’성웅 죽이기’로 끌고 갔다.

 

 

최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원균이 사악한 인물이었다는 증거는 어느 사료에도 나와있지 않다. 비록 한때 패장이 되기는 했으나 그 역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위해 싸운 인물이었으며, 그 공로로 전쟁이 끝난 후 3등 공신으로 책봉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인들 때문에 난 전쟁이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에 닳고닳은 위험한 사무라이들을 국외로 내몰기 위해 저지른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이광수는 마치 조선인들의 나쁜 국민성을 전쟁보다 더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사람이 당파본성을 가졌고 당파성이 악의 근원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초당파적 영웅을 만들어낸 것이 소설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성웅 이순신’은 더러운 조센징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이었으며, 이순신이 빛날수록 조센징은 추악해진다. 조센징은 위대한 성웅을 모한하고 괴롭히고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악마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순신’을 읽으면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간 곳 없고, 대신 조센징에 대한 환멸을 가지게 된다. 이게 이광수가 퍼뜨린 ’이순신 병’이다. 이 병은 심각한 민족자학증으로 이 병에 걸리면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견딜 수 없게 된다. 소설 이순신이 노린 것은 이렇듯 조선사람의 ’민족적 자기 부정’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도 한번쯤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들어, 하나일땐 힘을 발휘해도 여럿이 모이면 안돼’라고 스스로 자학하지 않는지. 이광수의 이순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성웅 혼자 ’윤리적 인간’이고, ’조선의 수호신’인 나라는 사회안정이나 국가안보가 취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성웅이 병이 들거나 장기간 출장을 가거나 죽는 날이면 그 날이 제삿날이다. 사리 사욕에 들끓는 ’나머지’들의 아귀다툼으로 나라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당리당략에 미친 ’나머지’ 조선인들이 국가를 멸망으로 이르게 되어 있다. ’조선의 수호신’이 없는 나라는 망하는 길밖에 없다"

 

 

이광수는 ’이순신’의 마지막을 성웅의 ’위대한죽음’으로 장식하면서 이제 ’조선의 수호신’이 운명했으니, 조선사람은 유일한 희망을 잃어 버렸다고 역설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정복 야욕에 맞서 호국투쟁이 성공함으로써 조국의 주권과 강토를 지켰을 뿐 아니라 살생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낸 역사적 승리였음에도 이광수는 조선 500년에서 단 한 사람 뿐인 ’큰 사람’이 돌아가셨다며 미친듯이 통곡했다.

 

 

최교수는 소설 ’이순신’이 "조선은 망해도 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책이라고 단언한다. 이광수는 그 증거로 당파싸움을 제시했지만, 최교수는 오히려 그 시절에 말로 싸운 수준높은 민족이 어디있었냐고 반문한다.

 

 

최상천 교수는 박정희가 이순신을 성웅으로 받들었던 것은 사기라고 단정한다. 박정희가 정말로 이순신에게 감동했다면, 독립운동에 나섰어야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최우수 황국신민이었고, 일본교사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일본 사관학교를 두 개나 졸업했고,’정복의 꿈’을 위해 독립군 사냥에 나섰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을 추모했을까? 최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가 소설 ’이순신’을 보고 진짜 감동을 받은 이유는 ’민족적 자기부정’ 즉 민족 자학증이었다는 것이다. 조센징이 꼴도 보기싫던 차에 이광수가 확실히 조센징은 패야 말을 듣는 야만종족이며, 미래가 없는 민족이며, 당파싸움이나 일삼는 조선은 망해도 싸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다.

 

 

민족 반역자들이 진짜로 이순신을 좋아했던 이유, 이순신만이 가지고 있던 매력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변치않는 애국심이었다는 것이다. 왕과 대신들이 도망을 다니든 말든, 원균이 모함을 하든 말든, 백성이 좌충우돌하든 말든, 이순신은 오직 나라사랑의 길로 매진하는 애국자의 표상이었다. 어떤 시련도 그의 나라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그것은 대체로 진실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광수와 박정희에 의해 성웅으로 둔갑된다. 성인과 영웅이 과연 합쳐질 수 있는 말일까? 5천년 역사상 단 하나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낸다. 그들이 만들어낸 성웅은 머리 속에 ’나’는 없고, ’국가’만 있는 인간상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멸사봉공 정신이다. 멸사봉공정신은 일제 황국신문사상 중에서도신민사상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사무라이정신의 핵심인 ’끝없는 충성’인 것이다.

 

 

최상천 교수는 이렇게 외친다. "성웅은 사무라이다. 이광수의 성인은 보통 사무라이고, 박정희가 만든성웅은 ’슈퍼 사무라이’다" 박정희가 추진했던 이순신 작품집 번역 발간, ’난중일기’ 국보 지정, 국가 제사, 동상건립, 영화 제작 및 단체 관람 등의 일련의 성웅사업은 박정희가 직접 기획, 제작, 감독한 국민 의식개조사업이라는 것이다. "성웅사업의 본질은 국가신교의 창설이다. 성웅은 유일신이고 현충사는 국가신사이고 박정희는 교주가 된다" 실로 소름끼치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최교수는 역설적으로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독립정신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매에 장사가 없다보니 때리면 말을 듣긴 하지만, 자기의 생각과 주체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한국 사람의 독립정신을 이 말이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상천 교수는 세종로의 충무공 동상을 볼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호통이 들려오는 듯하다고 말한다. "왜 하필이면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길에다 나를 세웠단 말인가? 내가 왼손잡이야?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는가? 입으로는 호국영웅이라고 떠들면서 왜 왜놈칼을 쥐어놓았는가? 너희는 조선 칼은 직선이고 일본 칼은 휘었다는 것도 모르는가? 내가 사무라이란 말인가? 천하의 고얀 놈들!"

 

 

최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린 왜 그렇게 단순한 진리를 한번도 부정해 보지 못했을까? 우리는 한글을 창제한 문화민족이라고 떠들면서도 세종대왕을 기념하는 도로에 충무공 동상이 서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까?

 

 

최교수는 충무공 동상은 박정희 정권을 너무나 잘 상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종로에 세운 장군 동상은 문민국가를 정복한 군사정권을 상징하며, 한국인의 창조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훈민정음 대신 일본 칼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정권이 일본제국주의의 변종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성웅기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형 문화국가를 전복하고 일본형 군사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박정희는 호국영웅 이순신을 ’슈퍼 사무라이’로 만들어서 문화국가의 상징 세종대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껍데기만 한국인이며, 정신은 일본인인 박정희에게 짓밟혀왔다는 것이 아닌가? 난 이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란다.만약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너무나 분통터지고 억울한 일이 아니던가? 한국의 언론인, 지식인들에게 호소한다. 왜 이책을 외면하는가? 사실이 아니라면 이 책 내용에 대해서 반박을 해야할 것이고, 만약 사실이라면 박정희의 정체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리포터 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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