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병원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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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아 [ella-0] 쪽지 캡슐

2000-11-28 ㅣ No.1602

밤근무 이틀째. 21번째 침대에 계신 할아버지가 마구 부르신다. 할아버지는 키도 크고 매우 건장한데 찐고동색 양말을 신고 있어서 다소 우습다.

 

 병원에서는, 특히 중환자실이나 수술방에 갈때는 속옷을 전혀 입지 않는다. 입고 있던 속옷마저 벗겨낸다. 미안하지만 병원은 그런 곳이다. 가뜩이나 아프고 위축되는 환경인데다, 처음 보는 사람을 앞에다 두고 속옷을 벗어야 하거나,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안입어본적 없는 속옷을 안입고 있어야 하는 좀 그런 곳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양말을 신고 계신 할아버지, 그것도 환자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찐고동색 양말을 신은 할아버지가 어색해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여튼 양말신은 할아버지가 마구 부르신다. 할아버지가 말하신다. 할아버진 전라도 분이시다. 전라도 사투리를 생각하며 한번 읽어보자.

 

 잠안자?

 

 간호사가 대답한다.

 

 할아버지 우린 안자요. 할아버지 얼른 주무세요.

 

 아 왜 안자?

 

할아버지 잘자나 봐야지. 어서 주무세요.

 

거참 이상도 하네, 나랑 같이 자지.

 

할아버지 저희는 일해야죠.

 

할아버지 마지막말.

 

아~ 철야혀?

 

시간이 잘 때가 되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지 않는다. 일하러 출근한다.

환자들은 자고 있지만, 나는 사실 그 잠이 무서워서 자꾸 자고 있는 환자곁으로 가서 인기척을 내본다. 자꾸 깨워보고 싶다. 정말 잠을 자는 것인지, 잠자는 게 아니라. 혹 잘못된 것은 아닌지. 나는 너무너무 조마조마하다. 내가 겁이 많긴 많은 걸까. 기우일까.

물론 환자의 몸에는 온갖 거추장스런 것들이 달라붙어 있어.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온통 난리난다는 소리가 울리지만 그래도 나는 두렵기만 하다.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두려움을,

그래서 나는 잘 자는 환자곁엔 더 자주 간다. 괜히 인기척도 내보고, 슬그머니 손도 만져보고 그런다.

 

이렇게 또 긴 밤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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