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고해성사까지 인터넷으로하는 슬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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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미 [idgagul] 쪽지 캡슐

2000-10-05 ㅣ No.4828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를 들어라면 물론 언어이다. 언어 없이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여러 가지 동물 가운데 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언어로만 만족하지 못하게 되자 문자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인류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람이 하는 일을 입으로만 전하면 기록성이 떨어져 그만큼 부정확하고 보존하기도 어렵지만, 문자로 남기면 정확성을 높여주고 보존하기도 쉬워 진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교통이 발달되면서 우리는 먼 곳에 있는 사람끼리도 편지나 엽서를 통해 안부를 묻고 이쪽의 뜻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편지전달 시간도 크게 앞당겨 몇 날 며칠씩 걸리던 것도 몇 시간 안에 전달할 수 있는 시대를 맞기도 했다.

 

 60, 7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것이 전보였다.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신청하면 늦어도 24시간 안에 배달이 되니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전보를 이용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하숙생들은 편지 쓰기는 귀찮고 할말도 적어서 전보를 많이 이용했다. 전보는 긴말을 쓰지 않고 이쪽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보는 길게 썼다가는 요금이 너무 비싸 짧게 쓸수록 잘하는 짓(?)이라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전보 외에도 빠른 통신수단으로는 속달우편이 있다. 많은 내용을 쓰고자 할 때 이용하는 것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배달되는 수단이어서 급한 서류나 편지를 보낼 때는 속달우편을 많이 이용했다. 물론 전화가 발달하면서 서신을 주고받는 일은 무척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음성만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글을 주고받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편지가 「사랑」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전보나 편지, 우편엽서가 최근에 와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PC통신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용건도 주고받더니 이제는 인터넷까지 가세해 전자우편, 즉 E메일로 편지(?)를 쓰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E메일로 카드와 연하장까지 E메일로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1년 전만 해도 거의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라 하겠다. 무료인데다 엄청나게 빠르게 보낼 수 있으니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파는 사람들이 망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우체국의 우편물량도 98년에 비해 30% 가량 줄었던 것을 알려졌고 실제로 우편물을 보냈을 때 도착시간이 예년의 경우 10일 안팎이나 걸리던 것이 늦어도 3∼4일이면 목적지까지 배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도 몇 년 안에 우체국이 엽서나 연하장, 크리스마스카드로 수입을 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빠른 우편수단의 대명사였던 전보도 이제는 일반편지처럼 2∼3일씩 걸리는 탓에 이용자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다만 경조사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만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메일은 이처럼 사람과 사람들이 쓰던 기존의 의사소통방법까지 확 바꿔놓고 있다. 어떠한 통신수단도 E메일의 위력 앞에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싶다. 통신수단의 대명사인 전화(휴대폰을 포함해서) 사용자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N세대들은 전화보다 인터넷으로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으니 인터넷과 E메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간다.

 

 E메일이 통신수단의 첨병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보니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2일자 외신보도는 유럽의 프리미어 크리스찬 라디오방송이 인터넷에 「참회자」라는 이름의 신앙고백 웹사이트를 개설해 신자들이 참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고해성사를 하려는 사람은 인터넷상의 신앙고백실에 들어가 자신이 지은 죄의 내용을 E메일로 보내면 되는데 고백내용은 다른 사람에게 유출되지 않도록 고해절차가 끝나자마자 자동적으로 삭제된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에는 "이 공간은 당신과 하느님을 직접 연결시켜 주며, 당신의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보장됩니다"라는 문구로 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한다지만 어떻게 컴퓨터가 인간을 하느님과 만날 수 있게 줄 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또 화면에는 컴퓨터가 풍겨주는 차가운 분위기를 덜어주기 위해 구름, 해바라기, 나뭇잎 등의 배경을 깔게 된다고 하지만 과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될는지도 의문이다. 컴퓨터는 어디까지나 컴퓨터일 뿐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해성사라는 게 신자가 신부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일종의 의식인데 사람이 아닌 컴퓨터 앞에서 신앙고백을 한다니 떨떠름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기계한테 털어놓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기계에 예속돼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바티칸 교황청측은 "고해성사는 전화나 E메일, 대리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본인이 신부와의 면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서 카톨릭신자들이 인터넷을 통한 참회하는 행위를 신앙고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혀 흥미롭다.

 

 인터넷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신앙고백까지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기계간에 감정의 교환 없이 어떻게 잘못을 용서 빌고 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죄지은 사람이면 누구나 성당으로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고해성사를 하면 자신의 지은 죄를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오늘 아침 신문기사는 필자의 마음을 아주 서글프게 만들고 있다.

                                 <20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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