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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깡패신문, 만만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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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승 [stpeter] 쪽지 캡슐

1999-10-07 ㅣ No.1744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구속 관련한 한겨레 신문의 사설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손석춘의여론읽기] /깡패신문, 만만한 신문/ /

 

검은 리무진이었다. 미끄러지듯 대검청사 마당으로 들어선 승용차에서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세금포탈 혐의자가 내렸다. 그 순간 대기하던 기자들이 외쳤다. “사장님 힘내세요!” 박수가 터졌다.

 

출두하는 중앙일보사 홍석현 사장을 위해 한줄로 늘어선 기자들의 사진을 보고 평생 언론학을 가르쳐온 한 원로 교수는 목이 잠긴 소리로 물어왔다. “그 사람들 정말 신문기자들 맞아요?”

 

모르는 바 아니다. 어찌됐든 조직의 우두머리 아닌가. `청와대 안 오적’을 “죽이겠다”며 살기등등했던 <중앙일보> 기자총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기자가 마치 대단한 직업인 양 내세울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자의 생명은 진실에 있다. 그 신문의 대표적 칼럼은 홍 사장 구속사건을 유신시대 `동아 사태’에 비유했다. 더구나 “지난 5년간 신문개혁을 내용과 형식면에서 가장 강력히 단행한 신문이 중앙일보”란다. 96년 신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신문 전쟁’을 누가일으켰는지 묻고 싶진 않다. 다만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은 있다. 탈세혐의로 구속된 사주를 어떻게 독재정권과 사주의 공모로 쫓겨난 민주 언론인들을 견줄 수 있는가. `동아투위’에 대한 모독이다.

 

문제는 중앙일보 기자들의 항변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기자총회에서 쏟아진 말들 가운데 몇몇 목소리는 경청할 만하다.

 

“깡패신문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인가. 우리가 만만한가!”

 

“지난 대선에서 어느 신문처럼 역겹게 보도하지도 않았는데 총선을 앞두고 만만한 우리에게 싸움을 건 것이다.”

 

예서 `깡패신문’ 또는 `역겹게 보도한 어느 신문’이 어디인가는 논점이 아니다. 그래서 깡패신문을 닮기로 했느냐는 물음도 접어두자.

 

문제의 핵심은 과연 <중앙일보> 기자들의 의혹이 전혀 근거없는 것일까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분명 만만하지 않을 법한 신문권력은 오늘 이 순간까지 건재해 있지 않은가. <동아일보> 주필의 땅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그랬다. “더 구린 신문을 두고 왜 우리냐”는 항변이 동아일보사 사장실에서 흘러나왔다. 신문개혁에 접근할 때 원칙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깡패신문이든 만만한 신문이든 마찬가지다. `관행’이란 말이 나돌 만큼 만연된 언론부패는 특정신문 특정인의 구속만으로는 맑아지지 않는다. 부패의 독버섯이 자라나는 언론사의 밀실경영에도 민주화의 빛은 절박하다. 편집국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할 정기간행물법 개정이 그것이다.

 

그래서였다. 지난 6월말 보광그룹 세무조사가 시작됐을 때 모든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촉구했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를 `성급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이들로 인해 김대중 정권은 요즘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언론탄압의 구설수에 휘말렸다. 자본금 100억원이 넘는 법인은 5년마다 세무조사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특혜 아닌가. 특혜를 없애고 원칙을 지키라는 제안이 비현실적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탈세를 해놓고 구속을 피하기 위해 지면을 `거래’하는 언론권력의 모습은 `자율 개혁론’이 얼마나 환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언론 길들이기 의도가 정녕 단 한 점도 없다면 김대중 정권이 `결백’을 보여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신문권력과 치졸한 말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유일 야당’ 또한 언론자유의 수호자인 양 부산을 떨며 수고할 필요가 없다. 이미 국민들은 참된 언론자유를 보장할 정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았다. 자신들의 외면 끝에 켜켜이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법안에 눈을 돌리기 바란다.

 

적잖은 사람들이 `만만한 신문, 깡패신문론’에 솔깃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깡패신문’ 앞에 몸사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국민여론이 오해라면, 그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것은 `국민의 정부’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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