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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ody] 쪽지 캡슐

2000-11-10 ㅣ No.1350

[삶 믿음 사랑 소망] 서울 삼성제일병원 마취과 강희륜(마태오) 박사   

 

 

   아무리 작은 수술이라도 수술대에 누워본 사람은 안다. 수술대의 그 싸늘한 촉감.

하지만 수술실로 들어갈 때 가슴을 파고드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비한다면야 그까짓 차가운 느낌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수술이 무사히 끝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수술환자에게 ’생명의 빛’과 같은 사람이 있다.

   서울 삼성제일병원 마취과 강희륜(67·마태오·명동본당) 박사의 별명은 ‘ 안수기도 박사 ’. 그는 수술 직전, 그러니까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환자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이 환자를 위해 기도 드립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주님께서 함께 하시어 환자에게는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시고, 집도하는 의사들에게는 당신의 영적 능력을 부어 주소서….”

   큰 수술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나를 위해 이 같은 기도를 바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날개 없는 천사’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강 박사의 출근 시간은 아침 7시께.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첫 수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가급적 많은 수술에 참여해 기도해 주려면 어떤 때는 네다섯 군데의 수술실을 뛰어다니다시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안수기도를 해주는 환자는 1주일 평균 100여명 정도. 병원의 최고참 의사로서 수술에 일일이 관여하기 보다는 수술실을 돌며 후배 의사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고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환자들이 반기지요. 수술 스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수술받는다는 게 얼마나 불안합니까? 기도하겠다고 하면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이건 99.9%가 다 좋다고 해요. 가톨릭 신자라 그러면 주모경을 같이 바치기도 합니다.”

   환자 중에는 목사도 있었지만 기도를 거절하지 않았다. 또 멀리 흑산도에 사는 스님은 수술실의 기도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퇴원하면서 꼭 한번 놀러오라고 신신당부한 적도 있다.

강 박사는 한 달에 한 통 꼴로 퇴원 환자들의 편지를 받는다.

   ‘수술실에서 박사님이 해주신 기도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릅니다. 이제부턴 저도 다른 이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감사편지가 강 박사에게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강 박사의 이런 기도가 선교 결실로 나타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강 박사의 기도에 감동해 퇴원한 후 천주교에 입교한 이가 한두 명이 아니다. 환자 남편까지 같이 세례를 받아 강 박사 내외가 대부, 대모를 선 적도 있다. 강 박사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 쉬는(냉담)신자도 부지기수다.

   명동성당에서 사목위원과 남성총구역장을 맡고 있는 그는 레지오 활동을 위해 화요일 오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비워둔다. 하지만 그의 신앙 경력은 의외로 짧다.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환갑이 다된 지난 92년이다.

   “사람들이 돌아보면 하느님 은총이라고 말하지요.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병원 설립자였던 고 이동희 이사장님이 꾸르실료 교육을 받고 오더니 자꾸 성당에 나가자고 ’꼬시는’ 겁니다. 또 원목실 수녀님도 마주칠 때마다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받으라고 조르고…. 산 사람 소원 한번 들어주자는 심정으로 명동성당에 가서 얼떨결에 영세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잠시 개신교회를 다닌 적은 있지만 이사장이나 원목실 수녀에게 ‘삼위일체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따지던 그는 다분히 회의론에 가까운 과학자이자 의사였다.

   그렇게 출발한 신앙생활이었지만 우연히 시작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비롯해 본당 사목위원을 맡아 봉사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억지로 쓴 감투였지만 반장학교, 복음화학교, 꾸르실료 교육 등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차츰차츰 신앙의 참맛을 배워나갔다. 늦게 하느님을 만나서 그런가, 가톨릭 신앙은 그에게 ‘가뭄 끝의 단비’였다.

   “신앙을 얻고 보니 그 전의 삶은 그야말로 철없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실 때 그 옆에서 비웃던 도둑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바로 구원임을, 그리고 사랑은 남을 위한 봉사이며 희생이라는 것을 신앙을 통해 배웠습니다. 뒤늦게나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착안한 것이 안수기도이다. 수술환자에게 용기를 주고 위안이 되는 데는 그만한 게 없을 것 같았다. 94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가톨릭 신자들만 대상으로 했다. 얼마 후 개신교 친구의 호응에 힘입어 개신교 신자에까지 넓혔다가 지금은 아예 종교 구분을 없앴다. 그 누구도 하느님 자녀 아닌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제일병원은 올해 처음 직원들을 대상으로 병원에서 누가 가장 친절한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압도적인 표차로 ’베스트 1’에 오른 이는 강 박사. ‘안수기도’는 강 박사의 한 단면일 뿐 그처럼 의술을 인술로 여기는 의사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게 직원들의 평이다.

   “친절, 친절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하지만 강 박사님을 보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환자 한 분 한 분을 더없이 따뜻한 정성으로 보살피는 그분의 모습에 감동돼 눈물이 다 난 적이 있어요.” (지혜진 간호사)

   “영세한지는 얼마 안되셨지만 신앙의 깊이는 다른 이의 몇 십 배는 될 겁니다. 환자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과 의사로서의 열정은 후배 의사들에게 그대로 귀감이 됩니다. 의사와 간호사간의 벽을 허물려고 애쓰시고, 또 누구에게나 존대말을 하세요.” (최윤영 의사)

   자그마한 키의 강 박사에게서 차가운 인상의 의사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동네 복덕방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같다고 할까. 그에게는 누구의 얘기라도 스스럼없이 들어 줄 것 같은 소탈함과 편안함이 배어있다.

   “젊을 적 죽을 고비도 많았는데 이제 보니 하느님께서 나를 여러모로 쓰시려고 살려주신 것 같아요. 뒤늦게 깨달은 하느님 사랑을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습니다. 실천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잖아요. 저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하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입으로만 떠드는 바리사이파 꼴이 되었다” 며 쑥스러워 하는 강희륜 박사. 넉넉한 마음으로 병원에 웃음을 몰고 다니는 그는 요즘 표현대로 ’칭찬 받아 마땅한’ 예수의 애제자이다.【 남정률 기자 】11/12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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