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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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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ilsong] 쪽지 캡슐

2005-04-30 ㅣ No.6011

 

이탈리아 안내

이탈리아 개관

   이탈리아는 지중해권 상에서 그리이스와 스페인을 연결하는 완충지역이다.  따라서 지중해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중해적 성격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 이탈리아는 총 면적이 301,202 kmq (20% 평야지대, 40% 산악지대, 40% 구릉지대)이며, 인구는 약 56,000,000 여명으로 유럽에서는 베네룩스3국, 독일, 영국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높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부터 매년 출산감소로 인해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도를 통해 보듯 마치 긴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는 남북의 길이가 1,200 km이며 전체 해안의 길이는 7,456 km이다.  북쪽으로는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접해 있는 긴 알프스 산맥이 있는데, 특히 오스트리아와 접해있는 티롤 지방(돌로미티 지역)이 관광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쪽 시칠리아 섬 안에는 아직도 불과 연기를 내뿜고 있는 에트나 화산이 있고 나폴리 부근에도 활화산인 베수비오 산이 있다.

    지중해 연안국들 중 가장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연중 기후의 특성은 크게 건기(4월~10월)와 우기(11월~3월)로 구별해 볼 수 있는데, 겨울이라 해도 피렌체 이남 지역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반면 여름은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평균 섭씨 35도 이상의 더운 날씨이지만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인 건조성 해풍으로 인해 우리나라처럼 무더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여름 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에 강렬한 태양빛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이탈리아 현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선글라스를 반드시 착용한다.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비교적 낮 시간도 길고 기후도 온화하며 관광객들이 그다지 붐비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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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의 남북문제

   
이탈리아는 모두 20개 주로 형성되어 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분활하나 실제,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북부, 중부, 남부로 분활하는 것이 보통이며 도서지방은 남부에 속한다. 

1) 북부지방에 편입되어 있는 주: 8개 주  *표는 도청소재지

에밀리아 로마나(Emilia Romana. * 볼로냐),  베네또(Veneto. *베네치아),  프리울리 베네치아 쥴리아    (Friuli Venezia Giulia. * 트리에스떼),  뜨렌티노 알토아디제(Trentino Alto Adige. * 우디네),  리구리아(Liguria. * 제노바),  삐에몬떼 (Piemonte. * 또리노),  발레다오스타(Valle d'Aosta. * 아오스타), 롬바르디아 (Lombardia. * 밀라노)

2) 중부지방에 편입되어 있는 주: 4개 주

토스카나(Toscana. * 피렌쩨),  움브리아(Umbria. *뻬루지아),  랏지오(Lazio. * 로마),  마르께(Marche. *     안코나)

3) 남부및 도서지방에 편입된 주: 8개
아브룻조(Abruzzo. * 라뀔라),  몰리세(Molise. * 깜뽀밧소),  깜빠니아(Campania. * 나폴리),  뿔리아(Puglia. * 바리),  바실리카따(Basilicata. * 뽀텐자),  깔라브리아(Calabria, * 까탄자로),  시칠리아(Sicilia, * 빨레르모),  사르덴야(Sardegna. * 깔리아리)

 
   이탈리아는 헌법상 지방자치단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로마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아직까지는 절대적인 것이 사실.  볼로냐를 중심 축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또리노, 밀라노, 베니스등  북부 지방은 상공업과 농업이 잘 발달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윤택한 형편이지만 로마 아래 쪽의 남부 지방들은 살림살이가 시원치 않다.  나폴리를 비롯해 남부 지방들이 풍부한 관광자원과 휴양지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뿌리 깊은 조직 폭력단(마피아/시칠리아아 주,  까모라/깜빠니아 주,   드랑겟따/깔브리아 주,  사크로 콜론나 우니타/뿔리아 주)들의 횡포와 더불어 안일무사 위주의 관료주의와 치안부재로 인한 각종 대형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되고 지방경제체재의 구조적 부조리와 불균형은  평균생산성까지 떨어트리고 있는 관계로 북부 또는 해외 투자가들이 자본투입을 꺼리고 있으며 그 위에 신변의 불안을 느낀 관광객들의 발길까지 멀어지면서 남부 지방 경제사정은 해마다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부 지방 사람들의 인심과 여유는 잘 사는 북부 지방 사람들을 훨씬 능가한다. 그들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경제형편이 넉넉치 못해도 가난한 티를 내기를 싫어한다. 특히 시칠리아 인들은 가문의 체면을 손상당했을 경우 보복을 해서라도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는 기질이 매우 강하다. 시칠리아 인들의 그러한 기질때문에 그 고장이 바로 마피아의 원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로마 중앙정부는 낙후된 남부 지방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Mezzogiorno(메죠조르노)라는 이탈리아 남부문제만 전담하는 특별기구를 설립해 운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북부 인들은 이 기구의 운용 방침에 대해 더 이상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북부 인들이 세금을 더 내고 더 낸 만큼 중앙정부를 통해 남부지방 경제발전 전담 기구인 Mezzogiorno에 보내고 있지만  수 십 년간에 걸쳐 보내진 막대한 발전기금은 로마 중앙정부의 핵심 세력들의 차지였고 그나마 보내진 기금은 지방자치단체의 관료들과 폭력단들이 독식해 왔다고 북부 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북부 인들은  남부 인들의 경제발전 기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고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으며,  결국 북부 빠다니아(Padania) 지방을 중심으로 북부지방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단체(Lega Nord당/ 북부연맹당)까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 당의 움베르또 봇시 당수가 처음 내 건 슬로건은 연방제도(Federalismo)였다.  미국 또는 독일식 연방제도 만이 이탈리아가 당면하고 있는 남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부 지방 경제원조 정책에 대한 북부 지방인들의 신뢰가 크게 감소되자 근년 들어 현 정부는 연방제도를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천명해 종래의 원칙적인 반대에서 일보 후퇴하는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북부지방의 입장을 정치적 이슈로 내걸고 있는 북부연맹당(Lega Nord)은 연방제도보다 한 수 더 위인 북부독립을 외치고 있어 로마의 중앙정부를 당혹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국민들의 여론도 연방제도는 수긍이 가나 북부독립은 가당치도 않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어쨋든 이탈리아의 남북문제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데  국민 모두에게 폭 넓은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남북문제 해소를 위한 합리적인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당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남북문제 해소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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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탈리아 정치

   
이탈리아는 EU회원국들 중 총리를 가장 많이 탄생시키고 있는 국가다.  1948년 국민투표에 의해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정부가 50여 번 이상 바뀌었다. 대통령 중심제가 아닌 의회내각제를 운용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총선에서 제 1당의 지지율 폭이 매우 낮다.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정부는 기민당과 사회당을 중심으로 5개 정당이 연립형태(Penta-partito)를 이루고  제 1당인 기민당의 지지율이 평균 35%선은 유지했던 관계로 45여 년간의 오랜 기간동안 정권장악이 계속되어 내려오는 중, 비록 총리가 자주 경질되고 정부가 바뀌어도 정치는 비교적 안정되었다.  이탈리아식 의회내각제도에서 대통령과 총리는 국가를 대표하고 정부를 이끈다는 단지 형식적인 자리에 불과하고 실제로 정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연립여당권의 정당 당수들이다.  이른바 정당정치가 이탈리아의 정계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총리까지 지낸 인물이 다시 장관으로 입각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국민들의 직접투표에 의해  상.하원이 구성되고 나면 선거에서 승리한 제 1 당을 중심으로 군소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과거 제 1 공화국 시절에는 5개 당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왔지만 1994년 이 후 두 차례에 걸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지금은 전공산당 계열의 좌파 민주당(Democrazia sinistra)을 중심으로 10개 당이 공동여당권을 형성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연립내각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정부의 생명이 짧다는 점에 있다.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서로 달리하는 동상이몽의 정당들이 한 배를 타고 함께 공동이익이라는 항구까지 운항한다는  자체가 불안한데,  이는 실제 현상으로 비일비재 나타나고 있다.  자당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있다고 판단되면 연정체재에서 탈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정계불안 요소가 항상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정계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총리를 국민들의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해서 헌법에서 보장됨 임기를 마치도록 하자는 정계 개혁안이 벌써 수 년째 거론되고 있으나 여야 모두 원칙론에는 합의하고 있지만 그 시행방법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정계 개혁안은 실현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소개하면 이탈리아는 헌법상 민주공화제이며 의회내각제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상하 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 대표들이 의회에서 투표로 선출하며 임기는 7년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군통수권과 의회해산권, 총리와 각료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총리는 의회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고 내각책임제하의 정부 최고 책임자로서 국정을 총괄한다.  의회는 상 하원 양원제이며 상원 315명, 하원 630명이고 임기는 5년이다. 상원은 종신상원의원제가 있는데 전직 대통령은 자동적으로 임명되며 그 밖에 국가에 대해 헌신적인 공로가 있는 인사들이 추천되기도 한다. 피아트 그룹의 소유주인 쟌니 아넬리는 이탈리아 경제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그리고  원로 영화배우 움베르또 소르디는 이탈리아 영화산업에 끼친 지대한 공로를 각각 인정받아  종신상원의원으로 추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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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니뿔리떼(Manipulite: 깨끗한 손)

   1993년 겨울,  밀라노의 일간지 Il Giornale(일 조르날레)지에서는 밀라노 시에 있는 한 시립양로원의 원장이 청소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는 짤막한 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접한 시민들은 시 공무원과 업자 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사건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 조그만 사건이 그로부터 일 년이 채 못되어 1948년 이래,  45년 간 정권을 계속 장악해 오던 그 막강한  제 1 공화국의 깃발을 내리는 사건으로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밀라노 지방검찰청 소속의 평범했던 한 무명검사인  안또니오 디삐에뜨로(Antonio Di Pietro)가 지휘했던 양로원 부정사건은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정부요직 인사들이 개입되는 등 단순한 부정사건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밀라노 검찰은  안또니오 디 삐에뜨로 검사를 중심으로  사정검사 팀을 임시로 조직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명칭도 이 때 마니뿔리떼(Manipulite:깨끗한 손)라고 부르기 시작 했다.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적지않은 공기업 회장들과 유명 재벌 총수들이 당시 집권당내에서 제 1 당인 기민당과 함께 양 대 세력을 이루고 있던 사회당 핵심지도부와 현직 장관들과의 어마어마한 정경유착형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있음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주요 신문들에서는 연 일 마니뿔리떼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크게 내었으며 수사가 진전될수록 집권당은 더욱 곤경에 처했다.  사정검사 팀에 대한 로마 중앙정부의 압력이 계속되었으나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사정 팀은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수사결과 대부분의 공기업들과 대재벌들에서 정부 발주의 큰 공사들을 따내기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여당권에 정기적으로 상납해 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회당 당수이며 전 총리까지 지낸바 있었던 베띠노 크락시(BetinoCraxi)를 비롯해 현직 장관들이 검찰수사 명단에 오르고 급기야는 이탈리아 국민들로부터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낙인 찍힌 크락시 전총리는 구속 하루 전 튜니지아로 야밤도주를 하고 도주지에서 체류국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연립내각 정부에서 제 2 당이었던 사회당은 하루아침에 주인 잃은 돗단배 신세가 되었고 결국 당 자체가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사회당의 공중분해는 오랫동안 사회당을 반려자로 정권을 주도해 오던 기민당에도 즉시 영향을 끼쳤고 결국 분당의 운명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실시된 총선에서 제 1 공화국의 주역들은 모두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했고  일개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948년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마니뿔리떼는 지금도 밀라노 검찰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안또니오 디 삐에뜨로가 검사직을 사직하고 상원의원 신분으로 정계에 뛰어 들면서 이제 색갈이 많이 바랬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 무명검사의 소신있는 행위가 결국 막강한 정부여당의 좌초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마니뿔리떼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국민들 머리속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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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탈리아 경제와 특성

   
마니뿔리떼로 인해 기민당과 사회당 연립정권이 붕괴되고 난 이후에도 연정은 계속된다. 그 전보다 연정을 위한 군소정당들의 참여가 오히려 더욱  많아졌다.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여러 당이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정치적 이슈가 서로 다른 당이 한 살림을 꾸려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 걸핏하면 국민투표(Referendum), 조기총선(L'elezione anticipato), 임시정부(Governo technico)등등 이러한 용어가 거의 매일 일간지 기사에 자주 오를 정도로 이탈리아 정계는 한결같이 매우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가 서방선진 공업국인 G7 대열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세계 제 6위의 부국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해 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세계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기업들의 외채부담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탕진되고 있는 동안 대물림을 해가며 꾸준히 기술향상을 해온 이른바 장인정신이 투철한 개미군단들이 이탈리아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크게 주도해 왔던 것이다.  1998년 미국의 카네기 재단 연구소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기업흑자를 가장 많이 내고 있는 탄탄한 기반을 가진 50대 중소기업들 중 이탈리아의 기업들이 무려 27개사로서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998년도 통계에 따르면 국가 총생산액이 1조 1.700억 달러였고 1인 당 GDP는 약 21.000 달러를 기록했다.  북부 롬바르디아와 베네또 주만 따지면 1인 당 GDP가 무려 32.000달러가 된다고 한다.  해외무역 규모는 4.500억 달러에 무역흑자가 270억 달러였다.  그리고 관광흑자는 1998년도에 200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이렇듯 좋은 경제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면서 국내 실업율은 좀체로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부 지방의 경우 평균 실업율이 3% 미만인데 비해 남부 지방은 평균 30%를 웃돌고 있다.  특히 고용연령인 만 18세부터 30세 미만 젊은이들의 실업율은 남부 지방이 평균 75%를 기록하고 있어 중앙정부가 고용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산업을 소개한다. 

1) 하이패션 산업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도 올리기 어려운 막대한 흑자를 하이패션 디자인 한 분야에서 내고 있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예로부터 회화 조각분야의 최고봉들인 미켈란젤로와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탄생시켰는가 하면 오페라 예술의 거장들이었던  롯시니, 도니젯티, 벨리니, 베르디, 푸치니를 조상으로 둔 이탈리아인들의 아이디어와 상상력(Fantasia)는 가히 세계 최고급이라 할 수 있다.  조상으로부터 타고난 이탈리아인들의 예술적 기질이 하이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메이드 인 이탤리(Made in Italy)를 단연 세계정상으로 군림하도록  해 주었음은 당연하다.  참고로 소개하면 세계 10대 하이팻션 디자이너들 중 8명이 이탈리아인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파리 패션이 최고인양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는 파리 팻션 이전에 밀라노 패션을 먼저 꼽고 있다.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에서 개최되는 중요한 국가적 행사에서도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은 최고의 VIP로 대접을 받고 있다.  1998년 당시 루이지 스칼파로 이탈리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이야 말로 이탈리아를 부국으로 만드는 애국자라고 높이 치켜 세우기도 했다.
   
   
이탈리아 하이패션이 세계화되기까지의 뒷 이야기를 잠간 소개한다.  1950년 대 들어서서 세 명의 자매들이 헐리우드로 건너 가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등 당시 세계적인 명 여배우들의 영화의상을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면서 이탈리아인들의 디자인과 옷 만들기 솜씨가 헐리우드 영화계를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세 명의 자매들은 죠에 폰따나(Gioe Fontana), 미콜 폰따나(Micol Fontana), 죠반나 폰따나(Giovanna Fontana)들이다.  그 후 Fontana  자매들의 명성이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전체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고 따라서 이탈리아 패션은 자동적으로 세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와 로마시는 Fontana 자매들의 업적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몇 해전 로마 시에 있는 한 길 이름을 "폰따나 거리(Via Fontana)"라고 명명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2) 건축,토목 산업 

   
2000년 전 로마인들로부터 시작된 장대한 건축술과 토목기술이 역사적인 사실로만 그대로 남아 있기 보다는 조상들이 남겨준 엣 기술을 후손들이 꾸준히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적인 건축, 토목분야에서 이탈리아 기술자들은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이 바로 장인정신, 대물림 정신, 가업정신이 자손 대대로 뿌리를 깊게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북서부 항구도시인 제노바에서 불란서와 국경을 접한 도시 벤띠밀리아까지 고속도로를 기회 있으면 한 번 달려보자.  해안을 낀 산악지대에 건설된 고속도로는 터널과 교량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다. 
자연경관의 훼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직선도로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곡선도로와 교량, 터널로 설계된 이 고속도로를 보면 이탈리아 토목공사 기술의 높은 수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파리의 명소 루블 박물관의 설계도 이탈리아 인이 했으며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 설계도 이탈리아 인이 했을 정도이며 미국 유명 대학들의 건축과 학생들의 여름철 썸머스쿨도 로마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고건축 수리에 관한 전문 연구소들이 국립대학 부설로 운영되고 있어 조상들이 남겨 놓은 고대 유적들을 과학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하는 전문가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3) 관광산업

   
이탈리아를 선진부국 대열에 안착할 수 있도록 공헌한 분야가 또 한가지 있다. 관광산업이다. 이탈리아인들의 가정에 가 보면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면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습성이 몸에 배여 있다. 지금도 EU 회원국들 중 유일하게 흑백 TV가 남아 있는 나라가 이탈리아라고 한다. 실제로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인 사무실 안에는 흑백 TV가 있으며 관리인이 보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인류 유산의 70%가 이탈리아에 있고 그 중 다시 60% 정도가 로마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유럽관광을 하려면 로마를 제일 나중에 보라는 속담이 있듯이 로마를 먼저 보고 나면 프랑스와 영국, 독일과 스페인등 가 보아도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할 정도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로마에 오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태리 사람들은 조상 잘 만나서 조상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로마 한 복판에 서 있는 꼴로쎄움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밀려 들어 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세계적으로 관광부국이 되기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우선 조상들이 남겨놓은 유적들을 철저히 보호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는 한편 전세계에 파견되어 나간 자국의 공관을 통해 현지 주재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꾸준한 홍보를 계속했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국내에서 세계적인 이벤트 행사를 마련해 그 기회를 통해 외국 메스콤들을 통한 간접홍보 노력도 꾀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레모 가요제 또는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영화제가 바로 그러한 세계적인 이벤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탈리아는 정말 가난한 나라였다. 특히 남부지방 사람들은 살기 위해 택한 것이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근세사가들에 의하면  1990년 대 초 이탈리아 국민들의 아침인사가 "Mangiato la colazione?(아침 잡수셨습니까?)"였을 정도로 결핍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다.  우리도 1960년 대 이와 꼭 같은 인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전대통령의 구호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였음이  중 년 이상 세대에게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이 점,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이다.  1922년 파시즘 정권을 탄생시키고 권좌에 오른 베니또 무쏠리니(Benito Mussolini)의 구호가 "일하는 자만이 이탈리아를 잘 살게 해 주고 먹을 권리가 있다"였다.  독재자 무쏠리니는 스스로 망치와 삽을 들고 이탈리아 새 역사 건설을 국민들에게 역설했다.  대규모의 도시계획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내었는데 우리의 새마을 사업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이처럼 배고픈 시대에서 유일한 희망은 해외로의 진출이었다.  100년 이상 이민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가 이제는 국내 인구 5700만 명에 비해 해외동포는 100만 명이 더 많은 580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고향자랑을 한 껏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들 모두가 이탈리아 관광홍보의 자원 봉사자들이라 칭해도 좋을 정도로 그들은 자신들이 떠나 온 고향에 대한 자랑을 현지국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는 자동차 공업을 위시해 금속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농업과 축산업 그리고 중화학과 경공업등 모두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도 석유를 비롯한 1차 산업자원이 전혀 나지 않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7 국가들 중 제 6위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마치 개미군단처럼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소비성향이 낮은 반면 저축률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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