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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과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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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5-10-06 ㅣ No.7186

- 복음 말씀 -

(루까복음 11. 1-4)


예수께서 하루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하나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나무아미타불과 주님의 기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뭔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뜻으로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속담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저 입을 봉하고 멀거니 있는 것보다 지혜의 말씀을 외는 것이 백배 낫다.

또, “비 맞은 중 염불하듯이 중얼댄다”는 말도 있다. 혼자 구시렁거리는 사람을 두고 빈정대듯이 하는 말이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다.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스님이 이제 비까지 맞았으니 더욱 처량할 터이지만 사실 그런 때야말로 도(道)를 닦는 스님답게 염불을 욀 때가 아닌가?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든 얼치기이든 모든 불자(佛者)들이 틈나는 대로 주문(呪文)처럼 외는 염불(念佛)이 있으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이 그것이다. 서방정토(西方淨土)의 부처인 아미타불에 귀의(歸依)하며 또한 이 세상에서 중생(衆生)을 도와 그 정토로 인도하는 아미타불의 화신(化身)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열 한 자의 이 염불은 모든 불자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그들 신앙의 농밀(濃密)한 정수(精髓)라고 하겠다. 그러하기에 서산대사(西山大師)는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 법문(法門)은 윤회(輪廻)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염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유래(由來)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알려져 있다. 스님들이 수많은 경전의 부처님 말씀을 가르치매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학식이 부족하여 도무지 현묘(玄妙)한 불법(佛法)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한다. 그래서 여러 스님들에 의해 무지한 대중(大衆)이라도 쉽게 외울 수 있도록 짧은 경구(警句)들이 만들어졌는데 그마저도 사람들은 어려워하였다. 결국 더 짧고 간단하여 쉬우면서도 동시에 핵심을 집약할 수 있는 경구로서 만들어진 말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제자들의 청(請)에 따라 친히 쉽게 외울 수 있는 기도를 하나 가르쳐 주셨다. 이른바 '주님의 기도'이다. 당신께서 직접 남겨주신 기도라는 사실 만으로도 당연히 으뜸가는 기도임에 틀림없고 또한 그 내용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고 동의하게 된다.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염원하면서 아미타불에 귀의하고 그 도움을 청하는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에 비견(比肩)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주님의 기도'에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에 귀의하면서 동시에 그 나라에 들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그것은 곧 용서이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그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오셨다. 그리고 아예 죄를 모르시는 분이 당신께 죄를 지은 우리의 죄를 기워갚기 위하여 바로 우리 손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셨다(필립비서 2. 6-11). 오로지 하느님의 대자대비, 곧 사랑이 강생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드러난 구체적 모습은 용서인 것이다. 상처 입으신 주님께서 패역한 우리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비구원의 처지에 있던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고 당신께서는 그 영광을 되찾으셨다. 이제 그 하느님 나라로 열린 길을 내달려야 할 우리의 행동은 역시 용서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내게 잘못한 너를 용서함으로써 나도 살고 너도 살게 될 것이며 함께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소망하게 된다. 그렇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사해동포(四海同胞)의 정신으로 한 형제가 되고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받들게 되는 것 - 그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이요, 또한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에는 구원의 대업(大業)을 성취하신 주님의 생애와 중심이 되는 뜻을 골격(骨格)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해야 마침내 하늘과 땅을 아우를 수 있는지 그 해답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핵심단어는 '용서'가 아닐까?


우리는 과연 불자들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만큼이라도 '주님의 기도'를 외고 있는가? 또 그저 외우기에만 바쁜지 아니면 정말 지극정성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그 큰 뜻을 깊이 새기며 바치는지 진지하게 반성해 보자.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똑똑히 불러 산란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합치되는 것이 염불(念佛)이다.”

서산대사의 말이다.


류종구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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