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추억 그 쓸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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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a [kbs001] 쪽지 캡슐

1999-09-16 ㅣ No.495

내가 중학교 2학년때...

 

후후... 10년도 훨씬 지난... 옛날이다...

 

주일학교를 정말 열심히 다니게 한...

 

선생님...(내가 가르친 녀석들이 보면... 놀리겠군....)

 

후후...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극성스럽게도... 그 선생님을 무지 많이 좋아했었다..

 

아마도.. 그것이 첫사랑이라 감히 불러본다.

 

훤칠한 키에 어벙벙한 표정, 헝클어진 머리, 비쩍 마른 체구에... 말까지 더듬는...

 

후후... 오랜만에 선생님 얼굴을 떠올리니... 사무치게 그립다.

 

참 많이 좋아했다.

 

선생님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아팠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좋았다... 그렇다고 좋아한다는 말 한번 못한 쑥맥이였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선생님은 결혼을 하셨다.

 

색시를 업고 꼬마신랑처럼 뒤뚱거리며 사진 찍던 모습이 선하다.

 

정말, 정말,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게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사진 한장을 내미시며 자랑하신다.

 

"봉신아! 내 새끼다... 이쁘지?..."

 

잘 생긴 녀석이 고추를 내놓고 찍은 사진이였다.

 

이름은 강인이... 녀석... 많이 컸을텐데...

 

그런데...

 

그 다음해였나...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응.. 봉신아... 바쁘니?..."

 

"앗.. 선생님이 웬일이세요?... 푸하하하... "

 

평소에 전화 연락은 잘 안하던 선배의 목소리가 왠지 불안했지만,

 

모처럼의 전화 목소리가 마냥 반갑기만 했다.

 

"응... 다른게 아니구... 동원형이... 어제 교통사고로... 지금 병원에 있다는데..."

 

"네???.... 많이 다치셨데요?.... 말도 안돼..."

 

"으응... 그게.... 영안실에 있데..."

 

"푸하하... 오늘 만우절도 아닌데...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진하게 하세요?..."

 

"아냐... 봉신아... 정말이야... 인천 무슨 병원이라는데... 갈꺼지?.."

 

"네...?... 정말... 정말이예요?...아니죠?..."

 

"암튼... 우리는 연락 되는데로 같이 모여서 갈꺼니까... 어떻게 할건지...

 

연락해라.."

 

"....네...."

 

그리곤 그게 마지막이였다...

 

병원도, 장례식도 가지 않았다.

 

믿고 싶지도,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1년후... 혼자 선생님을 찾아 갔다.

 

을씨년스런.. 공동묘지 비석 하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인 김 동원(프란치스코), 상주 장남 김 강인, 처 박 xx"

 

정말이였군...

 

평소 양주를 즐겨 드셨기에 조그만 양주 한병과 땅콩을 무덤 앞에 따라 드리고...

 

후후...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그냥 하늘만 바라 봤었다...

 

오늘... 그 때 봤던 그 하늘과 너무도 닮았다.

 

선생님은...

 

가끔 내 꿈에 등장하셔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일러 주신다...

 

후후... 나를 수호해 주셨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젠... 앨범 깊숙히 숨겨진 캠프후 아이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 한장만 달랑 남아있다.

 

선생님도 아셨겠지?...

 

내가 참 많이 감사해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

 

그 사람은...

 

나를 비틀거리지 않게 잡아 준다.

 

선생님이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며, 혼자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것 처럼...

 

얼마전 그 사람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유희열의 "익숙한 그 집앞"이란 책이었다.

 

함께 킥킥거리며 읽던 도중...

 

작자의 여자친구를 추억하는 글이 나왔을때...

 

난 그냥 책을 덮어버렸다.

 

그가 그의 아팠던 첫사랑을 추억할까봐...

 

여전히 난 이기적이다.

 

여전히 난 그 아팠던 첫사랑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그사람에게 감사한 봉신(글라라)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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