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성당 게시판

시복,시성 청원자 [윤지충 바오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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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3-09-26 ㅣ No.3983

 

 

1. 윤지충 바오로(진산 전주 1791년 12월 8일 33세) 참수

 

 

윤지충은 충남 논산군 벌곡면 장구제에서 아버지 윤경(尹憬)과 안동 권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윤지충의 7대조는 윤선도이고, 영·정조 때, 시·글·그림으로 뛰어난

 

이름을 날린 윤두서는 그의 증조부이다.

 

권상연의 할아버지 권기징은 딸 다섯을 두었는데 맏딸은 윤지충의 아버지

 

윤경에게. 둘째딸은 유항검의 아버지 유동근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래서 권상연에게 윤지충과 유항검은 고종사촌간이 된다.

 

또 정약전, 약종, 약용의 어머니도 윤지충의 고모이다.

 

이승훈은 고종사촌 매형이며, 윤진충과 유항검은 이종사촌이다.

 

또 이벽은 누이가 정약전, 약종, 약용의 이복형인 정약현에게 시집을 갔음으로

 

윤지충과 사돈 간이다.

 

 

윤지충은 정약전의 영향으로 1784년에 입교하여 3년 동안 천주실의, 칠극을

 

공부하여 정약전을 대부로 이승훈에게 바오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윤지충은 1791년 5월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초빈을 했다가

 

8월에 장례를 치렀다. 그는 맏아들이라 유교의식으로 제사를 지내야 되지만

 

윤유일 바오로가 1790년 북경에서 돌아온 뒤로 천주교에선 제사를 금지했다.

 

그래서 윤지충은 어머니의 신주를 불살랐다는 이유로 고발되었다.

 

그는 관장 앞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희들과 저희 어머님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저희는 참 하느님을 공경함으로 조상신에 대한 그릇된 공경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저희에게 당신의 장례식에는 미신적이거나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셔서 조상의 신주를 불살랐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의 뜻이었습니다.

 

저희 천주교는 참되기 때문에 나무 조각이나 불합리한 시체에 대한

 

공경은 무익하고, 나무로 만든 조상신을 보존함으로써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보다 차라리 형벌과 죽음까지 당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사건을 진산 사건이라고 하며 윤지충은 현령에게 공술을 써서 올린

 

공초는 참으로 유명하다.

 

형조는 윤지충과 권상연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을 상신하며 신주를 불사른 것은

 

무덤을 파헤친 ’발총조’(發塚 )에 해당하며, 사악한 술수로 천주교를 전하며

 

익힌 것은, 무당의 사술과 같은 사무사술(師巫邪術)에 해당되는 죄로 엮어서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윤지충이 살던 진산군은 5년 동안 현으로 강등하고,

 

감독을 소홀히 한 진산 군수는 귀양을 보냈다.

 

 

1791년 12월 8일(음력11/13) 오후 3시에 조선에 첫 공식적인 박해로 풍남문 밖

 

전주 전동성당 자리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을 처형하였고,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가하면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정조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사형을 허락한 다음 후회하였다.

 

 

그래서 전주 감영에 급히 파발마를 보내 사형을 중지하고 귀양을 보내도록

 

지시하였으나 이미 두 사람의 사형이 집행된 뒤에 파발마가 도착했다.

 

정조는 그 소식을 듣고 고산(윤선도)의 후손을 내 손으로 죽였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달레한국천주교회사상권334, 345, 352, 378)

 

(순교는믿음의씨앗이되고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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