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아이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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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17 ㅣ No.5341


몹시 추운 어늘 겨울날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수업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으응?"

안 그래도 추워서 얼어붙을 지경인데 아이들이 창문을 죄 열어제친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으으 호..."

"어휴 추워라... 니들은 안 춥냐?"

"추워요."

"아니 그런데 창문은 왜 있는 대로 열어 제쳤어?"

물어도 묵묵부답. 닫으래도 못들은 척, 아이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한 시간 내내 창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나 참 별일이네. 으으... 춥다, 추워."

의문이 풀린 것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서 그 반 담임을 만난 후였습니다.

"추워서 혼났네. 김 선생님 반 애들은 기운이 남아도나 봐요."

"예? 아,...저도 들었어요. 그게 사실은요...."

사연인즉, 그 반에 특수학급에서 온 아이가 있는데 4교시 수업시간 중에 그만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뭐야, 무슨 냄새야 이게? ... 어휴 냄새야."

옷을 버린 것은 물론이고 교실 바닥까지 지저분한 상황.

그런데 바로 그때 반장과 짝꿍이 벌떡 일어나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물을 치우고 숙직실로 그 친구를 더리고 가 목욕을 시켜 체육복으로 갈아 입혔습니다.

그리고 더럽혀진 교복과 속옷까지 발아 널었습니다.

그것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비밀로 간직한 채 추위를 견딘 것입니다.

나는 다음 날 그 속 깊고 대견한 마흔 명 애어른의 머리를 차례차례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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