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학창시절 추억의 책가방(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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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lsk55] 쪽지 캡슐

2003-09-17 ㅣ No.5342

 

2003. 9. 17 작성 (용산성당    http://www.yongsanch.or.kr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산성당

학창시절 추억의 책가방 (1편)



 


고교를 졸업한지 어느덧 30여년이 지나 우리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옛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학창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가 좋아서 서로 호칭을 할 때는 아직도 그저 옛날처럼 쌍두문자를 써가면서 “야~이 살느므 사~카!”라고 해도 성질내는 넘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이 자식! 저 자식! 이 새끼, 저새끼!” 하는 소리가 정겹기만 합니다.

엄동설한 그 추운 겨울 날, 우리 시골 동네에서 학교를 가려면 꼭 남대천을 건너야 하는데, 맨발로 개울돌다리를 건너려면, 정말 살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돌다리에 살얼음이 끼어 겁없이 객기로 잘못 돌다리를 건너다간 발라당 뒤집혀서 머리를 터트릴 우려가 있으므로 우린 울며 겨자 먹기로 양말을 벗고는 얼음같이 찬 개울을 건너곤했지요.



 


위의 사진은 금번 태풍14호 매미에 의하여 또다시 큰 상처를 입은 내고향 뚝빵길 근처 농경지입니다.


市內에 사는 일부 브르지아층의 친구들은 튼튼한 목조 다리인 재건교를 통하여 걱정없이 활보했겠지만, 그리고 우리 남포동보다 더 먼 村동네인 월호평과 병산 그리고 학산 및 금광리 등에서 학교로 등하교를 하던 친구들은 산을 넘고 묘둥가를 지나며 나름대로 입에 밀대를 물고 빨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등하교길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겠지요.

그러나우리 남포동 친구들에겐 학창시절 우린 잊을 수 없는 또다른 한가지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남포동 악동들이 등굣길 남대천 하류의 돌다리를 건널 때는 늘상 병산에서 이곳 돌다리를 건너 반대로 시내에 있는 여고로 가는 어떤 이쁘장한 여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병산골에 사는 무지하게 이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여름철, 남대천 물이 뿔어나면, 우리는 하교 길에 거기서 그냥 그녀가 올때까지 죽치곤했습니다.

마치 "소설 소나기에서 처럼..." 왜냐하면, 돌다리에 물이 넘치면 혹시나 그녀가 치마를 들추고 개울을 건널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지요.

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빨간색의 내의를 한번도 구경 해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기실 생각이 그럴뿐이지, 그녀가 물가에서 엉거주춤하면 재빨리 달려가 서로들 먼저 업어 줄려고 기달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건 우리 남포동 악동들이 사실은 착한 학생들이었느니깐요.

그렇기에 추석날을 전후하여 병산골로 초청을 받아서 그녀동네 친구들과 착착이 놀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참고사항)

착착이란? 서로 삥 둘러앉아서 짝~짝~ 박수를 치면서 돌림노래를 부르는 놀이를 말합니다.

엄청 재미난 어린시절의 우리들의 놀이문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내용이 길어서 1편을 여기서 총총 맺습니다.



2003년 9월 17일

용문동 구역장 李 相卿 가브리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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