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고양이와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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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18 ㅣ No.5345

 

한겨울 바닷가 작은 포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떠돌이 어미고양이가 어느 집 헛간에 주인 몰래 몸을 풀었습니다.

"우데서 괭이 앓는 소리가 나는 기고?"

이상한 소리에 놀라 헛간을 둘러보던 안주인이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어미는 산고에 기진맥진한 몸으로 새끼들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이를 우냐노? 괘안타.. 가만 있거래이."

안주인은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어미가 기특하고 또 안쓰러워 부랴부랴 헌 담요로 바람막이를 해 주고 먹을 것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어미고양이는 주인의 고운 마음을 읽었는지 곧 경계심을 풀고 그 따뜻한 호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긴 겨울 내내 식객노릇을 하면서도 어미도 새끼도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여느 때처럼 밥을 차려들고 헛간으로 간 주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야들이 우데 갔노?"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난 것이었습니다.

"뭘 그래 호들갑을 떨어쌌노? 어디 놀러 나갔겄제."

남편 말대로 잠깐 놀러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다렸지만 고양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 해 추석 무렵부터 일어났습니다.

대문간에 놓인 생선 한 마리.

처음엔 그저 누구 흘리고 간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그 후로 2년 동안이나 명절날만 되면 명태, 고등어, 넙치같은 생선이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데이...."

또 설이 다가오자 가족들은 대체 누구의 짓인지 알아내기로 하고 순번을 정해 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왔다! 고양이다, 고양이!"

"쟈가 뭐라카노?"

2년 전 몸을 풀고 떠났던 그 어미고양이가 생선 한 마리를 물고 나타난 것입니다.

"야옹.. 야옹."

고양이는 생선을 문간에 얌전히 놓고 집안을 한참이나 들여다본 뒤 돌아갔습니다.

고양이가 제아무리 영리한 동물이라 해도, 해마다 명절인사를 다녀간다는 것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가족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과도 같은 은혜갚음은 그 후로도 몇 차례나 되풀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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