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20년 전의 인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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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는 일년 중 절반을 해외출장으로 보냈습니다. "소현아 미현아...아빠 왔다." "야아, 아빠다!" 그리고 돌아오실 때는 초콜릿이며 학용품, 인형 같은 선물을 한아름 사 오셨습니다. "자 이건 미현이 꺼, 이건 소현이 꺼." 유난히 초콜릿을 좋아했던 나는 언제나 내 몫을 할당받자 마자 그 자리에서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서랍 가득 아빠의 선물들을 모아놓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아꼈습니다. 나는 마지막 사탕 한 알까지 다 먹어 치운 뒤 필통이나 샤프펜슬 같은 선물을 동생 몫의 초콜릿과 바꿔 먹곤 했습니다. "자... 필통 여기 있어." "여기 있어...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그렇게 필통이, 장난감이, 수첩이 동생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시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내 생일 선물로 아주 특별한 것을 사 오셨습니다. "자.. 우리 큰공주님 생일이 내일모레지?" "와! 아빠, 고맙습니다." 빨간 상자 속에 든 생일선물, 그것은 내 어린 눈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인형이었습니다. "우와! 헤헤." 나는 너무 좋았습니다. 초콜릿이 아무리 먹고 싶어도 인형만은 절대로 바꾸지 않을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끝내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과 또 한번 물물교환을 해 버린 것입니다. "자, 사탕도 줬다." 그리고 얼마나 깊이깊이 후회를 했던지.... 초콜릿에 반해 아무도 못말리는 어린 시절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둔 날 저녁. 동생이 내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결혼 선물이라며 동생이 건넨것은 20년 전 내가 초콜릿과 바꿨던 그 인형이었습니다. "이거 나 주고 언니 잠도 못잤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기억 속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아버지의 생일선물. 동생이 내게 돌려준 건 그냥 인형이 아니라 20년 전 차곡차곡 쌓아온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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