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어머니의 보석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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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20 ㅣ No.5352

 

지난 봄이었습니다.

나는 사업에 실패하고 알량한 집 한 칸마저 저당잡혀서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젊은 나야 한뎃잠을 자도 상관없지만 몸저 누운 어머니가 이모집서 군식구로 눈칫밥을 드셔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팠습니다.

"저... 엄마 몇 달만 고생하세요."

어머니는 장롱 속에 깊숙이 간직했던 보석상자 하나를 꺼나 옷 보따리에 챙겨 넣었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애지중지 아껴오던 보삭상사 안에 있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틀림없이 귀한 물건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저,, 엄마!... 아니에요."

어머니가 이모 집으로 가신 후, 여기 저기 돈을 꾸러 다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게 된 나는 점점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

나는 어머니의 그 보석상자에 들어 있을 귀금속들이 빚을 갚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찾아 갔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보석상자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 그것만은 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건 안 된다. 절대로 안돼."

나는 궁지에 몰린 아들을 끝내 외면하는 어머니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로부터 반 년 뒤, 어머니는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뜨셨습니다.

"글쎄.. 참는 김에 며칠만 더 제발요...."

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빚 독촉에 시달리던 나는 문득 어머니의 보석상자가 생각나 이모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상자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혹시나 귀금속을 기대했던 나는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자에는 옛날옛날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께 만들어 드렸던 카네이션 한 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색종이를 접어 만든 빨간 카네이션.

어머니에겐 그 빛바랜 카네이션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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