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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랑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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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범 [ddong] 쪽지 캡슐

2001-01-20 ㅣ No.4217

-4-

 

 

내겐,애인이 있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조직폭력배였고,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그를 만났던 난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다지 문제 삼진 않았다

그는 내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그만큼 날 아껴주었으니까

 

시간이 갈수록,그의 몸에밴 버릇은 어쩔 수 없었는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우려하던 것,바로 폭력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겐 한없이 온화한 사람이었기에 믿고 있었는데,난 너무나 놀라고 무서워서 그에게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어느날인가,아무 뜻없이 만난 친구가 마침 남자였고,그애와 새벽까지 함께 있다가

그가 날 찾아냈을 때,난 보고 말았다

아마,말리지 않았다면 내 친구는 택시가 아니라 엠뷸런스에 실려가야 했겠지

그가 사과했지만,그건 사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친구인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난 그와 이별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별을 말했을 때,그는,아낌없이 보여주고 말았다 그동안 감추고 있던 본성을..

나는 그가 원치 않는 이별을 말한 댓가로,몇일간을 그에게 끌려다니며 폭행을 당했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학교 앞에서,학원앞에서,날 기다리고 있었고,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참 정성이라고 말했을 뿐,전혀 이상한 의심따위 하지 않았다

그는,내가 나오면 나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가서,보이지 않는 곳을 때렸다

물론,내가봐도 그 딴에는 상당히 살살이었겠지만,내겐,맞는 아픔 이상의 고통이었다

 

도저히 참지 못해,선배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선배 역시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어찌 처리했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비슷했겠지

 

그렇게 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힘든 이별까지의 동안에도,그 이별 후에도,난 여전히 채팅을 했다

그리고,언제나 아무일 없었던 듯이 즐거운척 대화를 하고,농담을 하고,그렇게 지냈다

드디어 완벽하게 그가 사라질 것임을 확인한 날,왠일인지 사람없던 대화방에

번개날 그렇게나 날 신경쓰이게 하던,그 하얀 애가 있었다

 

어린애한테 못할말인데..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침 술까지 한잔 한 나는 너무 쉽게

그 얘기를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그애는,귀엽게도 그 얘기를 들으며,흥분하고 슬퍼하면서,동조해주었다

전화를 해도 좋냐는 그애말에 상관 없다고 했다 채 몇초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우리 언제 데이트 할까?"

 

내가 농담처럼 건넨 말에,그에가 생각외로 반가워 했다

 

"언제요? ..어디서요?"

 

그애와 만나려면 한번 갔던 곳이 좋을것 같아,번개때 만났던 커피숖에서 보기로 했다

약속을 잡고도 그애와 한참을 통화했다

고3이라 그런지,집에서 힘들게 한다는 얘기,여자친구랑 헤어진 얘기,이런저런 얘길 하고

한참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

끊을즈음엔 완벽하게 충전되어있던 핸드폰 배터리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애와 약속을 한날,조금쯤은 기분이 안좋았다

그래도 기분좋게 만나고 돌아오려는 생각에 많이 웃고 떠들었다

차를 마시고,나가서 거리를 돌다가,어느 카페앞에서 들어가자고 떼를 썼다

느닷없이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 덕에 그애는 들어갈 차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난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약간 술기운이 올라 무척이나 감정적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술이 오르면 졸음이 쏟아지고 마는 나때문에 그애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그렇다고 날 데리고 방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상황을 파악한 나는 먼저번에도 갔던 비디오방으로 비척비척 걸어들어갔다

눈은 반쯤 감겨서 당장 머리만 기대면 잘것 같은 상태였다

그애가 비디오를 고르는 동안,소파에 기대 졸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였을까,그애가 들어가자고 일으켜 세웠다

약간 짜증스럽다는 듯 투정을 부리며 그애가 이끄는대로 따라갔다

그 긴 소파가 침대처럼 보였고,난 앉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꿈에 놀라서 깨버렸다

꿈에,헤어진 애인이,내 옆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는 날 보고,그애가 더 놀란듯 했다

 

"왜 그래요?"

 

꿈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민망했다

 

"꿈 꿨어.."

 

그애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영화는 볼만했다

중반부터 보는데도 답답하지 않고 흥미를 끌었다 그애는 간간히 앞에 지나간 내용을 설명해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었다

난 약간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누나야"

 

그애가 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애가 갑자기 옆으로 기대앉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웅얼대는듯한 목소리였다 약간 슬픈듯도 했다

 

"뭐라구?"

 

당황해서 더 알아듣기 힘든지도 몰랐다

그애가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계속 함께이고 싶어.. 이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누나는 나한테 너무 먼 사람인데.."

 

난 천천히 돌아앉아 그애를 바라봤다

 

"현민아.."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애가,여자와 함께라는 것때문에 감정이 약간 흔들려서,그래서 생각없이 말한건 아닐까

그렇다면,어떻게 해야할까

 

"내가,여자로 보이니?"

 

그애가,현민이가,말없이 끄덕였다

 

"언제부터..?"

 

"처음부터..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는데.."

 

"....."

 

난 아직 많이 지쳐있었다

누군가가 날 잡아주길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하지만,난,그 상대가 얘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여할지 몰랐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상대는 다른 사람이었다

문제가 있다면,그 상대는,지금 내 곁에 없었다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알수도 없고

날 잊지 않고 있는것인지 어떤지도 몰랐다

벌서 오랜 시간 소식이 없었다

 

결론을 내렸다

 

서로가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관계로 시작하자

 

"그걸로 괜찮니?"

 

내가 말한것으로 그애는 충분히 반가워했다

그리고,그렇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연인을 사귀는 것이 처음인 나는 한편으로 당황했다

이제,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느닷없이 현민이의 입술이 느껴졌다

그냥,받아들였다

 

그래,이젠 이애가 내 연인인거다

내가 가장 충실한 감정으로 대해야할 내 연인인거다 그리고 앞으로헤어질 때까지 난

이 상대에게 충실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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