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10일만이군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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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상 [modif] 쪽지 캡슐

1999-07-03 ㅣ No.777

 제기동 교우 여러분.. 안녕들 하셨어요? 열흘 만이군요.. 오랜만에 여기와서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다 읽었어요.. 반갑더군요.. 혜원이도 많은 글을 올렸고

 

(다 재미있는 글이었어요), 태영이도 글을 올렸어요( 네 말대로 이렇게 한 칸씩

 

떼어서 글을 쓰고 있다). 동철형글도 오랜만에 보아서 반갑구요.. 성진형도요..

 

병호씨도 이곳을 자주 들르나봐요.. 사기성이 농후한 일에 일침을 가해줘서

 

고마워요.. 말숙이 글도 항상 잘 읽고 있어요.. 덕주는 고민이 많구나..

 

 내 생각에 그 판단은 누구도 대신해주지는 못할 것 같다.. 세상에서 어느 직장이

 

마음 편하고 즐겁기만 하겠느냐 하는 것이 내가 그동안 보아온바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반론이기에 네 생각대로 젊으니까 직장을 옮기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 네가 어떤 점에서 힘든지 구체적으로 들어보지 못했기에, 뭐라고

 

조언할 수가 없구나.. 다음 주에 한번 만나고 싶다.. 이야기 들어보도록.. ^^

 

......................................................................

 

꿈이야기 하나..

 

 어느 밝은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관악의 신록이 맑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즐거운 일-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을 마치고 면도

 

거품을 잔뜩 묻히고 세면실로 갔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노을의 붉은 빛이

 

기숙사의 안과 밖을 물들이고 있었다.. 난 무엇에 취한 듯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좋은 책에 그리고 아름다운 환경에 들뜬 듯 했다.. 세면실에 가서, 난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지금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가 사랑하던 투명하게 맑은 피부,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다 담고

 

있는 듯한 커다란 눈, 발그레한 뺨,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짓는 그녀의

 

웃는 모습, 그리고 맑은 울림을 가진 그녀의 커다란 웃음소리.. 난 너무도 놀라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떨리는 가슴.. 그녀를 다시 보다니.. 그것도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을..

 

 그녀의 웃음은 항상 인상적이었지만, 이날의 웃음은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마

 

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난 거기에 취해 잠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

 

몇초가 흘렀겠지.. 오랜 시간- 내가 느끼기에 15분쯤 -이 지난 후, 그녀가 짓는

 

미소와 청명하게 울리는 목소리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

 

눈가의 미소를 따라갔다..  그 눈길이 끝나는 곳에 한남자가 서서 그녀에게

 

부드러운 눈초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 키가 크지도 않고 체격이 크거나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어려보이는 얼굴에  

 

착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참 좋은 사람이구나.. 미워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진 남자.. 왠지 내면의 성격이 겉으로 묻어나는 듯한 남자였다..

 

그래.... 이제 네가 사랑하는 남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내 머리를 스치는 그

 

무수한 생각들!!.. 난 무엇을 생각하고 기대하며 널 회상했었던가????.. 네가

 

이렇게 내 앞에 있는데,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난 무엇을 생각해야할까.. 난 무엇을 생각해야할까.. 후후.. 답이 나지 않는

 

물음들이 또 고개를 든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냐니.. 바보같이!.. 생각나는 것을

 

생각하면 되는 건데.. 그래.. 지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니까..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하는데.. 감정에 충실하자.. 지금 무슨 생각이 나니.. 그래.. 기쁘다..

 

네가 행복해보여서.. 좋은 남자를 만났구나!.. 난 내가 아니면 네가 불행할까

 

두려웠는데, 네 곁에 내가 있지 않으면 네가 힘들까봐 두려웠는데.. 네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나.. 네가 행복해서 다행이다.. 너에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띄게하고, 맑게 울리는 웃음을 웃게한 그 남자가 고맙다..

 

좋은 사람이었으면..

 

 고개를 드니, 그녀와 그녀의 남자(!)가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난 미친

 

사람처럼 세면실을 뒤졌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그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를 .. 그 남자가 누굴까??..

 

알고 싶다!!.. 사범대에도, 인문대에도, 그녀는 없었다.. 망연자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선배가 그녀를 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는 이름이 영진이

 

라고.. '영진' 익숙한 이름이다.. 학교 신문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이름.. 왜지?

 

왜 기억에 남았을까.. 그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내가 사랑했던 그녀에게 웃음을

 

주는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난 미친듯이 중앙도서관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

 

그녀는 날 보고 표정이 굳었다.. 난 기억한다.. 그녀의 이런 표정!.. 그녀에게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말없이 웃었다.. 이런 식의 대화엔 익숙했다..

 

"네가 행복해보여서 기뻐.. 그 남자는 누구냐?"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빛이 나는 눈, 환히 웃는 미소.. 예전에 나를 생각하며 짓던 표정이었는데..

 

"내 남자 친구야.. 좋은 사람이야..".. "그래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져.."..

 

"너 서울에 살고 있는거야? 언제 올라왔어?".. "작년 9월에..나 가게 다녀..

 

우린 어항 속에서 살아.. 후훗~".. "그래 행복해!! 영진이라는 친구, 좋은 사람

 

이라고 느껴져..".. "그래 고마워.. 흐흑..흑..흑..".. 그녀가 울었다.. 방금 전

 

까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지었던 그녀가, 영진이라는 이름을 듣자....

 

"무슨 일이 있구나..? 영진이란 친구에게..".. "묻지마!"

 

...........

 

 여기까지가 내가 꾸었던 꿈의 내용이다.. 사실 내가 사는 기숙사에는 여자가

 

세면실에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광주에 있다.. 그럼 이 꿈의

 

의미는 무엇일까? 음.... 사실 아무 의미없는 꿈이다.. 그냥 일어나서 오랬동안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기에 글을 적는다.. 그녀의 미소가, 그 목소리의

 

울림이, 잊혀지지 않는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난 한번도 잊지 못한 듯

 

하다.. 그녀를 본지 8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광주에 내려가도 그 성당에

 

가지 않았다..

 

 이번에 8개월만에, 그곳, 문흥동 성당에 갔다.. 내 3년간의 시간과 노력과

 

사랑이 깃든 곳,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 사람들 사이의 정이 가득했던 곳..

 

8개월이 흐른 후, 난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었다.. 이젠 내 짙은 우울도 겉어야

 

겠다.. 나에게 삶과 죽음의 두 길이 있다면, 난 삶의 길을 선택한다.. 이젠 살아

 

가야 하겠다.. 밝게..

 

 이런 결심을 굳힌 나에게 왜 이런 꿈이 꾸어진 걸까.. 내 내면의 나는 무엇을 생

 

각하고 있나? 휴~~ 어렵군.. 잠이 오지 않는다..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한모금

 

빨고 싶다.. 그래.. 난 그녀를 잊어본 적이 없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젠 우울

 

을 걷고 살아가야한다.. 살!아!가!야! 한!다! 그녀가 행복하면 좋겠다.. 꿈 속에

 

서 처럼 울지 않기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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