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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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19 ㅣ No.924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철민은 자기가 면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동엽이에게도 알렸다.

"내가 니 방 얻어 쓰는 마당에 이런 말 하기는 뭐 하지만, 야이 병신아."

철민이는 동엽이가 계속 농담처럼 말을 받아 주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도 장

난처럼 답을 했다.

"너도 곧 신검 받지? 니가 면제를 받게 된다면 그건 니 코고는 소리 때문일거

다."

철민은 장난스럽게 대답을 했으나 동엽은 그렇지 못했다. 갑자기 얼굴엔 어둠

이 일었다. 자신이 먼저 장난스럽게 말을 했으나 받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생각이 스며 들었다. 자기의 코고는 소리때문에 철민이가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

실에 미안해 했다. 철민은 그것 때문에 동엽이가 부담스러웠다.

"예전처럼 장난은 장난처럼 받아 주었으면 한다. 너무 나를 의식하지 마라."

"고맙긴 한데, 자꾸 마음에 걸리네."

"너와 나는 국민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다. 부담갖지 마

라."

"그래.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하려고 노력할게."

"노력 하는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해라."

철민은 동엽이를 도우고 싶었다. 하지만 도울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철민은

동엽이가 괜히 자기를 의식하는 듯 하여, 지윤을 만날때면 자주 동엽이를 데리

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동엽이가 그것을 거절했었다.

 

"너 면제 받았다면서?"

"그래 나 면제 받았다."

지윤이도 철민이를 놀렸다.

"그럼 군대 안가는거야?"

"안가는게 아니라 못 간다."

"그럼 계속 학교 다니겠네."

"그렇다."

"훗, 그럼 내가 고무신 꺼꾸로 신고 할 일은 없겠다."

"너 지금 앞서가고 있지? 고무신 얘기가 왜 나와."

"치, 자기는 뭐. 그럼 고삼때 그짓 한 것은 얼만큼 앞서 간거야?"

"자기는 뭐? 고삼 때 내가 뭘 앞서 갔는데?"

"말 안할래. 하여간 나는 네가 군대 안간다고 그러니까 기분이 좋다."

"못 가는 거라니까 씨."

지윤은 철민이가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이 대학 사년 내내 철민이가 자기 곁에 있

어 줄 것으로 생각되어 기분이 좋았다.

 

유월달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다소 더웠다. 철민은 동엽이가 자기를 피하는 느

낌이 들자, 집에서 보내 준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동엽과 함께 자주 학교 운동장

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철민과 동엽이가 한참 운동장에서 공 던지고

받기를 하고 있었는데 학교 야구부원들이 운동장을 점령한 채 일반 학생들을 운

동장에서 내 쫓았다.

"저것들이 운동장 전세 냈나."

"이해 해야지. 학교 명예 세울려고 이렇게 더운 날 땀 흘려 연습하는데."

철민이는 투덜거리면서 운동장을 벗어 나고 있었다. 동엽이도 기분이 좋지 못

한 표정이다.

"야, 울 학교는 야구부 전용 연습장이 없냐? 저기 보니까 콩국대 같은 삼류대

도 야구부 전용 구장이 있더만."

"콩국대가 왜 삼류대야. 너 진짜 학교 가지고 차별 많이 한다."

"그랬냐? 하여튼 비싼 등록금 내고 운동장도 제대로 사용 못하니까 졸라 열받는

다."

"야 김철민. 너 비싼 등록금 내고 도서관 몇 번이나 이용해 봤냐?"

"한번도 없다."

"너도 공부 좀 해."

동엽은 철민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지면서 그는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철민이는 동

엽이가 자신을 피하는 것 처럼 느낀 것이었다. 동엽인 일학년 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거의 하숙집과 학교 그리고 도서관에서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편

이었다.

"야, 이차 지망으로 들어간 과에 정이 들겠냐.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싫어한

과목이 화학이다."

"아직 전공은 들어가지도 않았잖아. 핑계 되지 마."

"새끼. 일학년 때는 좀 놀아야지. 입학해서 바로 공부해야 한다면 누가 대학 오

고 싶겠냐."

운동장에서 내 쫓기면서 철민과 동엽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야구 부원 하나가 그들에게 소리 쳤다.

"어이 거기 학생. 공 좀 던져 줘."

철민과 동엽이 걸어 가는 길 앞으로 야구 공 하나가 굴러 가고 있었다.

"야이 너는 학생 아니냐? 아무리 우리가 신입생이지만 바로 반말하면 기분 나쁘

지. 개쉐이야."

철민이가 방금 소리 친 야구 부원을 보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렇게 작은 소리로 말하면 누가 듣겠냐. 좀 큰 소리로 말해."

그 옆에서 동엽이가 철민이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맞아 죽게 새꺄."

철민은 툴툴 거리면서 굴러간 공을 잡았다. 그리고 힘껏 던져 주었다. 공은 거

의 백미터 가까이 날아가 아까 소리친 야구 부원이 아니라 감독인지 코친지 포

수 옆에 서 있던 어떤 배 나온 아저씨 쪽으로 가 떨어졌다. 소리친 야구 부원은

어리 둥절 했다. 갑자기 자기 옆에 공이 떨어지자 배 나온 아저씨도 상당히 놀랐

다.

철민은 그냥 돌아 서 운동장을 빠져 나갈 요량이었다. 철민은 급히 아저씨에게

로 뛰어 가는 아까 소리친 야구 부원에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철민이가 거의 운

동장을 빠져 나갈 참이었다.

"어이, 학생."

철민이는 자기를 부르는 줄 몰랐다. 그냥 계속 걸음을 걷자 야구 부원 하나가

뛰어 오며 소리 쳤다.

"어이 학생 잠깐만 서 봐."

철민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야구 부원 하나가 자기에게 뛰어 오며 손짓하

고 있었다.

"왜요?"

"우리 감독님이 잠깐만 와 보래."

"왜요 저 바쁜 사람이이에요."

"니가 뭐가 바빠 임마."

"학생 우리 학교 학생 맞지?"

"맞는데요."

"잠깐 우리 감독님 보재."

철민은 동엽이와 함께 아까 배나온 아저씨에게로 불려 갔다. 그 배 나온 아저씨

가 야구부 감독이었나 보다. 아까 철민에게 공 던져주라고 부탁했던 학생이 그

의 곁에 서 있다.

"얘가 아까 저 운동장 끝에서 여기 까지 공을 던졌다는 학생 맞나?"

"예."

철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야구부 감독을 쳐다 봤다.

"자네 이름이 뭔가?"

"김철민인데요."

"우리 학교 학생인가?"

"네. 화공학과 91학번인데요."

"신입생이네."

"네."

"자네 야구 한 적 있었나? 선수로서 말이네."

"취미로 한 적은 있어도 선수로서 한 적은 없는데요."

"자네 테스트 한 번 받아 보겠나?"

"무슨 테스트요?"

"그냥 내가 시키는데로."

"그거 받아서 뭐하게요."

"테스트 한 번 받아 보게."

철민이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괜히 동엽이에게 눈치만 주었다. 대신

거절해 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동엽은 그런 철민이의 의사를 알아차리지 못했

다.

"한 번 받아봐."

철민이는 할 수 없이 감독이 시키는 데로 테스트 몇 가지를 받았다.

처음 테스트 받은 것은 공을 얼마나 멀리 던지는 것이었다. 철민이는 공 세개

를 던졌다. 타석에서 던진 공이 외야에서 서 있던 수비수의 키를 넘긴 것도 있었

다. 그것을 보고 감독은 철민에게 글러브를 던져 주었다. 철민은 무엇을 시킬런

지 몰라 어리둥절 했다.

"야, 차인표 이 녀석 공 한번 받아 봐. 그리고 석규는 스피드 건 가져 와."

철민은 감독이 그 소리를 내 뱉을 때까지 무엇을 할 지 몰라했다.

"뭐해? 넌 투수판으로 가서 공을 있는 힘껏 던져 봐."

"왜요?"

"왜요는 무슨. 나 자네 학교 야구부 감독이야. 시키는대로 해 봐."

철민이는 투수판으로 갔다. 야구 부원 하나가 철민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야구

를 즐겨 하는 철민이는 그 공을 쉽게 받았다.

"자 거기서 포수에게 있는 힘껏 공을 한 번 던져 봐."

철민은 조금 쑥스러웠다. 진짜 야구 선수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공을 던진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극적이지는 않았다. 폼을 잡아가

며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공은 포수가 일어서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이

들어갔다. 철민은 조금 쪽팔렸다. 하지만 감독은 공이 어떻게 들어 가는 것은 신

경쓰지 않았다.

"석규야 얼마 나왔냐?"

"139킬로 나왔습니다."

감독은 철민에게 다시 한번 공을 던져 볼 것을 명했다. 철민은 다시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옆으로 많이 벗어난 공을 포수는 잡지 못했다. 철민은 다시 쪽을

팔았으나 감독은 포수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석규야 이번엔 얼마냐?"

"142키로 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감독은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리고 철민이를 불렀다. 철민은

공이 엉망으로 들어 간 것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인 채 감독에게로 갔다.

"자네 진짜 야구 선수 한 적 없나?"

"없는데요."

"특별히 운동 한 것 있나?"

"헬스 클럽 다닌 것 외에는 없는데요."

"진짠가?"

"네."

감독은 철민의 오른 쪽 어깨를 만져 보기 시작했다. 철민이는 난처한 표정이

다.

"야, 석규야. 우리 에이스 민태가 얼마까지 던졌냐?"

"예. 149까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근데 운동 하나 안한 일반인이 142까지 나왔다는게 믿어 지냐?"

"좀 놀랍네요."

"좀 놀랍냐? 나는 많이 놀라운데."

자기를 바로 앞에 두고 멀리 있는 놈에게 소리치는 감독이 철민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철민은 이제 가야겠다는 말을 하려고 다짐을 했다. 근데 느닷없이 감

독이 자신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더니 흥분하는 투로 말을 했다.

"자네 야구부에 들 생각없나?"

"전 동아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허허, 동아리가 아니라 정식으로 야구 해 볼 생각없냔 말일세."

"네?"

"투수의 어깨는 타고 나는 거야. 아무리 훈련을 해도 구속을 10키로 이상 끌어

올리기는 불가능 해. 자네가 제대로 야구 훈련을 받는다면 150키로 후반은 충분

히 던질 것으로 믿어. 자네는 진짜 좋은 어깨를 가지고 있는거야. 그것도 아주

싱싱한 채로 말이야."

그 소리에 철민도 놀랐지만 동엽이도 마찬가지였다. 동엽이가 철민의 곁으로 왔

다.

"우리는 이 학교에 학력고사를 치르고 들어온 일반 학생입니다. 쉽게 결정 내

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동엽이가 철민이 대신으로 대답을 해 주자 철민이도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전 야구 선수할 생각이 없는데요. 아직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부모님

은 절 공부하라고 이 학교에 보냈지, 야구 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거든요."

"자넨 이제 성인이야. 자네 진로는 자네 소신대로 결정해야 돼."

"싫은데요."

"선동얄이 알지? 내 생각하기로 걔도 자네 만큼 어깨가 강하지 않아. 자네가 마

음만 먹는다면 특급 투수가 되는 것은 문제도 아니야. 화공학과라 그랬나? 거기

나와서 기껏해야 회사 취직밖에 더 하겠어? 내 장담하지. 자네가 내 생각대로 훈

련만 받는다면 졸업할 때 프로에서 자네에게 계약금 몇억씩 제시할거야. 야구할

생각 없나?"

"없는데요."

감독은 철민이의 어깨가 매우 탐이 난 것 같았다. 오늘 처음 본 학생에게 감독

은 분명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

만 감독은 철민에게 계속 야구부에 들 것을 권유했다. 철민은 계속 거절했다.

"그러면 잘 생각해보고 결정이 서 걸랑 언제든지 날 찾아오게. 우리 집 연락처

와 내 사무실 연락처를 주겠네. 날 찾아 올 것을 기대하겠네."

"그러지요."

철민은 빨리 이 곳을 벗어 나고 싶은 생각에 무성의로 답을 하고 감독이 적어

주는 쪽지를 바로 받았다.

"부모님에게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내가 대신 설득해 주겠네."

철민은 그런 감독의 말을 무시한 채 돌아 섰다. 감독은 철민을 꼭 야구부원으

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철민이 돌아 섰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야구부가 되면 등록금이 면제 돼. 그리고 내가 학교에 건의해서 장학금도 탈

수 있도록 해 주겠네. 훈련 보조비도 주겠네."

철민은 건성으로 들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감독에게서 벗어났다. 운동장을 벗어

나자 철민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공 한번 잘 못 던졌다가 혼났네 씨."

"그 감독 참 웃기다. 다짜고짜 널 야구부에 들라 하고 말이야. 야구 선수하면

공부하고는 끝이야. 하긴 넌 지금도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있긴 하지만..."

"그래. 나 운동선수 한다고 그러면 울 아버지가 가만히 안 있지."

"그래도 놀랍다. 내 공이 예전부터 남달리 빠른 것은 알았지만 선수를 능가하

고 있을 줄은 생각 못했었는데."

"그건 나도 그래. 내 공이 그렇게 빠른 지는 처음 알았어."

"아까 야구부 감독이 말한 것은 잊고 공부에도 좀 신경을 쓰라."

"알았어 임마."

 

철민과 동엽은 하숙집으로 돌아 왔다. 그날 밤 잠이 들면서 철민은 기분이 좋았

다. 비록 야구 선수가 될 마음은 없었으니 알아주는 대학의 감독이 인정을 해

준 자기 어깨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엽이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뒤척이면서 철민은 무심결에 이런 생각을 했다.

""야구 선수가 되면 장학금 받는다고 했지? 이 방은 동엽이 줘 버리고 나는 그

돈으로 방을 따로 얻어 나갈까? 야이 새끼야 잠 좀 자자.""

 

동엽이가 신검차 집에 내려 갔다 왔다. 동엽이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

다. 동엽이는 현역 일급 대상자였다. 집안 분위기를 느끼고 왔는지 방학 때 바

로 입영 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민은 자신의 친구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것이 슬펐다. 돕고 싶었다.

일학기 기말 고사를 맞쳤다. 철민은 하숙방 짐 정리를 해 놓고선 집으로 내려갔

다. 얼마 후 철민은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남들에게는 적혀 있지 않은 그 무

언가가 자신의 성적표에는 적혀 있었다. ""학사경고.""

그 성적표를 다행히 부모님들 손에 들어 가기 전에 철민이가 가로 채었다. 철민

의 아버지가 성적표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철민은 꿈쩍 놀랐다. 그러던 어느날 철민은 다시 짐을 챙겨 방학중인데도 불구 하고 서울로 올라간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그날은 동엽이가 서울로 휴학계를 내러 간다고 하는 날이었다. 철민은 전날밤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정을 봤다. 철민은 뚜렷한 미래관 없이, 성적표와 앞으로 하게될 학과 공부가 싫었고, 동엽이가 가정형편 때문에 휴학계를 내는 것이 싫었다. 앞으로의 인생이 바뀔 결정을 철민은 쉽게 내려 버렸다. 바로 야구부에 들 것을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등록금을 동엽이게게 주고 장학금으로 자신은 다소 여유롭게 생활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야구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야구 선수가 되어도 졸업장은 받을 것이고 시험을 보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온 다는 것을 알았다. 깊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부모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철민은 자신의 미래를 180도 바꾸게 될 결정을 아주 쉽게 내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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