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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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hain716] 쪽지 캡슐

2003-07-14 ㅣ No.4588

하느님이 어디에 계실까?

이 단순하고도 쉬울 것 같은 질문에

교회 박사인 대데레사 성녀도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 영성의 대가들을 보기만 하면 붙들고 늘어지면서

하느님 현존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대답을 들은 성녀는 그들의 대답이 한결같이 자기 성에 차질 않아서

성녀는 또 묻고 묻고 하며 세월 다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대가들은 성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귀찮아서 피할 정도였었다는데...

 

왜 그랬을까?

성녀는 지금 자기가 체험하고 있는, 아니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이 지고한 하느님 체험의 은혜인 하느님과 합일(合一)된 상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성녀는 이런 저런 경험과 성령의 가르치심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확실한 계시를 받게 된다.

 

16세기에 이르러 세상 구원의 성사인 교회가

분열주의자에 의해서 찢겨지고 있을 때

성령께서는 스페인의 걸출한 한 여인을 택해서

’인간 영혼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하늘에 어좌를 가지시듯이 또 다른 하늘

즉 당신 모상따라 창조한 인간 영혼을 ’질투가 날 정도로 사랑’하시는

인간 영혼 안에 또 다른 어좌를 두고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영혼 안에서 하느님이 떠나시지 않고 계시다는 것을 안다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큰 은혜요 구원이라고 십가의 성 요한은 강조한다.

 

따라서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이를 체험하는 이는

다른 이의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도 본다는 것이다.

고로 봉사란 남을 위해, 즉 이웃의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보고

그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봉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기에 마더 데레사는 ’내가 만나는 그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구세주요 하느님’이라고 증언했고

또 그렇게 사셨기에 생전에 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근원은 바로 ’영혼 안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 영혼의 놀라운 신비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상실한 실용주의 유물론의 해독에 잠긴 채 허덕이는 이들이

특히 교우들, 봉사자들이 사실 교회를 망치고 있다고 간주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하느님의 모상 대로 창조한 인간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를 구하기 위해서 당신 목숨을 바칠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

그런데 구세주께서는 당시 고결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이들과는 별로였고,

쩔뚝발이, 곰배팔이, 병신 육갑하던 이들 곧 강도, 나병환자, 창녀들과 가까이 지내시면서

"느그들 보다도 창녀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임을 역설하셨다.

 

들어난 죄인이라고 저마다 돌을 들어 치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떠올랐다.

"매를 때리면 자국만 남기지만, 말로 치면 뼈가 으스러진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정릉동 성당에는 참말로 성인 성녀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떠오르면서 말이다.

 

성인 성녀들에게 선배 성인이신 ’파울라의 성 프란치스꼬’는 이렇게 이른다.

"미움과 적대심을 버리십시오. 거친 말을 삼가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입에서 한 번 그런 말이 흘러 나왔다면, 그 말로 인해 생긴 상처를 치료해 줄 치료제를 같은 입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이렇게 서로 용서해 주고 과거에 당한 일을 영원히 잊어버리도록 하십시오.

당한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며 분노가 가져다 주는 결과이고 죄를 간직한는 것이며 정의에 대한 증오입니다. 그것은 녹슨 화살이고 영혼의 독소이며 덕의 파멸이고 정신을 점먹는 벌레요 기도의 방해물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청원들을 무효화하고 사랑을 몰아냅니다. 당한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또한 영혼에 박힌 가시요 결코 잠자지 않는 악이며 끝이 없는 죄이고 날마다 겪는 일종의 죽음입니다."

 

그래~ 그래~!  행실이 좋지 않던 여인이여~!

그래서 예의 그 성인 성녀들로부터 왕따 당하거들랑 이를 전혀 개의치 말고

’통신 교리’라는 것도 있으니 이를 통해서락또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응하여라.

"앞으로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주님의 당부 말씀을 명심하고

주님의 사랑받는 딸로 거듭 태어나길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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