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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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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2-10-01 ㅣ No.2768

제가 인천의 주안1동 성당 보좌로 있을 때, 아주 당황스러운 일을 체험했었답니다. 아마 주일 저녁 미사 때일 것입니다. 미사의 막바지가 되어,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함께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남, 여가 성당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중앙 통로 맨 뒤에서 둘이 손을 잡고, 또한 가벼운 스킨쉽(뽀뽀)을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한 번만 하고서,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들은 평화의 인사를 할 때까지도 계속해서 서서 스킨쉽(이제 더 찐한 뽀뽀를 합니다)을 하더군요. 저는 그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화가 나더군요. 결혼하지 않은 저를 약올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잠시 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들은 아마 사람들이 모두 미사 참례를 하느라 앞을 보고 있으니 자기들을 아무도 보지 않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겠지요. 하지만 그들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지요. 물론 바로 저였습니다.

 

아쩌면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들의 모습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겠지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보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겠지 하면서 죄를 짓는 저희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웃으실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지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리고 내 자신의 결점은 반드시 숨기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보다 강하게 보이고 싶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 제자들은 그래도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랐으니, 자신들은 당연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 중에서 누가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할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냐고 질문을 던졌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자기들은 당연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제자들조차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재물, 명예, 학식 등 무엇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들은 교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부자인데, 지위가 더 높은데, 더 많이 배웠는데 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겸손의 덕보다는 교만이란 것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교만의 마음보다는 겸손의 마음을, 이기적인 마음보다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셨지요. 성녀는 폐렴으로 심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작은 자’라고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면서, 모든 사제들을 위해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전교 지방의 선교사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녀께서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적이 없어도, 선교의 수호 성인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겸손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치 어린이가 자신의 부모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듯이 말이지요.

 

다시 한 번 오늘 복음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셨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은 우리 모두가 성녀 데레사처럼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과 단순함 그리고 겸손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것에 솔직히 자신은 생기지 않습니다. 왠지 예수님의 말씀이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이라는 예수님이 말씀이 절망의 소식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야말로 기쁜 소식이고, 희망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즉, 누구나 다 한때는 어린이였기에, 그 당시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면서 지금 이 현재를 살아간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천국에 가까이 있다가 어른이 되면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천국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보’라는 말은 보통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뜻하지요. 하지만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바보’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바라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이 바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바라봤을 때 바라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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