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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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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데레사 [hbrl] 쪽지 캡슐

2007-09-29 ㅣ No.2270

 
 
 
하느님의 사랑과 믿는 이들의 확신
 
31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지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바오로와 이스라엘
 
9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하느님의 이스라엘 선택
 
6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육의 자녀가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자녀라야 그분의 후손으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 "이맘때에 내가 다시 올 터인데 그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레베카가 한 남자 곧 우리 조상 이사악에게서 잉태하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 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택의 뜻을 지속시키시려고,
 
또 그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당신께 달려 있음을 드러내시려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고 레베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 쪽이 불의하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성경도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렇게 하려고 내가 너를 일으켜 세웠다, 곧 너에게서 내 힘을  보이고, 온 세상에 내 이름을 떨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 만드십니다.
 
하느님의 진노와 자비
 
19  이제 그대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을 여전히 책망하십니까? 사실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 할 수 있겠습니까? " 하고 물을 것입니다.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는 ,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한 덩이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힘을 알리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하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큰 은혜로 참아 주셨다면,
 
그리고 영광을 받도록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고 그리하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유다인들 가운데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도 불러 주셨습니다.
 
이는 바로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내 백성' 이라 부르고
사랑받지 못한 여인을 '사랑받는 여인" 이라 부르리라.
 
그들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 하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같다 하여도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온전히 또 조속히 세상에 실현시키실 것이다."
 
이는 또 이사야 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후손을 남겨 주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같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열성
 
30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의로움을 추구하지 않던 다른 민족들이 의로움을, 믿음을 바탕으로 의로움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믿음으로 찾지 않고 행위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부딪쳐 쓰러지게 하는 바위를 놓는다.
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10
 
1  형제 여러분, 내 마음의 소원,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5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은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민족도 아닌 무리를 너희가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에게 너희가 분노하게 하리라."
 
이사야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를 찾지도 않은 자들을 내가 만나 주었고
나에 관하여 묻지도 않은 자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
 
11
 
1  그래서 나는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벤야민 지파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엘리야가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걸어서 어떻게 호소하였는지 모릅니까?
 
"주님, 저들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대답은 어떠하였습니까? "나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 칠천 명을 나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이와 같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은총으로 선택된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은총으로 되는 것이라면 더 이상 사람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총이 더 이상 은총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찾던 것을 얻지 못하고, 선택된 이들만 그것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해졌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마비시키는 영을,
보지 못하는 눈을,
듣지 못하는 귀를 주시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하셨다."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식탁이 그들에게 올가미와 덫이 되고
걸림돌과 응보가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늘 굽어 있게 하소서."
 
다른 민족들의 구원
 
1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을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다른 민족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이 모두 믿게 될 때에는 얼마나 더 풍요롭겠습니까?
 
이제 나는 다른 민족 출신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민족들이 사도이기도 한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 입니다.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맏물로 바치는 빵 반죽 덩이가 거룩하면 나머지 반죽도 거룩합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거룩합니다.
 
그런데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 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 나갈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여지기 위해서였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아서 잘려 나가고  그대는 믿어서 그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그대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함께 준엄하심도 생각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떨어져 나간 자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그대에게는 인자하십니다. 오직 그분의 인자하심 안에 머물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도 잘릴 것입니다.
 
그들도 불신을 고집하지 않으면 다시 접붙여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대가 본래의 야생 올리브 나무에서 잘려 나와, 본래와 달리 참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졌다면 , 본래의 그 가지들이 제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이야 얼마나 더 쉬운 일이겠습니까?
 
온 이스라엘의 구원
 
25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에서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시온에서 구원자가 오시어
야곱에게서 불경함을 치우시리라.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
그들과 맺어 줄 나의 계약이다."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리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거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 찬미가
 
33  오! 하느님의 풍요한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이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
 
12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 모두에게 말합니다. 자신에 관하여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저마다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
 
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 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그리스도인과 권리
 
13
 
1  사람은 누구나 위에서 다스리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란 있을 수 없고, 현재의 권위들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위에 맞서는 자는 하느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고, 그렇게 거스르는 자들은 스스로 심판을 불러오게 합니다.
 
사실 지배자들이란 악행을 할 때에나 두렵지 선행을 할 때에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는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까?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권위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지배자는 그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악을 행할 경우에는 두려워하십시오. 그들은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악을 저지르는 자에게 하느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그분의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도 복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러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이에게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내야 할 사람에게는 조세를 내고 관세를 내야 할 사람에게는 관세를 내며,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십시오.
 
사랑은 율법의 완성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고 ,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각심
 
14  또한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형제를 심판하지 마라
 
14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나 여러 견해를 두고 논쟁할 생각으로 그렇게 하지는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무엇이나 다 먹을 수 있다고 믿지만, 믿음이 약한 이는 채소만 먹습니다.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은 가려 먹는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가려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 넘어지든 그것은 그 주인의 소관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하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날이 다른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사람은 어느 날이나 다 같다고 여깁니다. 저마다 자기 판단에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특정한 날을 중시하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중시하는 것이고,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도 하느님을 위하여 먹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먹으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가려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가려 먹으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형제에게 장애물이 되지 마라
 
13  그러니 더 이상 서로 심판하지 맙시다. 오히려 형제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나는 주 예수님안에서 알고 있고 또  확신합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더럽습니다.
 
그대의 형제가 음식 문제로 슬퍼한다면, 그대는 더 이상 사랑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음식으로 형제를 파멸시키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그 좋은 것이 모욕을 받지 않게 하십시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니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음식 때문에 그르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어 남에게 장애물이 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롭습니다.
 
고기를 먹든 술을 마시든, 그 밖에 무엇을 하든, 그대의 형제에게 장애물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대가 자기의 것으로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느님 앞에서도 그대로 지니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단죄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의심을 하면서 먹는 사람은 이미 단죄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우러나온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위는 다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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