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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십리성당 신부님의 주례사 -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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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영 [mymoon] 쪽지 캡슐

2001-11-09 ㅣ No.2248

아래의 글은 개신교신자인 김현인이라는 분의 개인홈페이지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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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주례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나는 지난해 석 달 동안 답십리 성당에 나가 교리 공부를 한 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올해 초엔 결혼식을 치를 그 성당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혼인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모든 준비는 이제 끝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이 원하는 것이라며, 사무장님이 종이 쪽지를 한 장씩 나누어주고는 “지금까지 부모님이 여러분을 키워주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다고 생각하는지 전부 계산해서 적으세요.”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돈으로? 한 번도 따져보지 않은 문제라 난감해 하면서 옆에 있는 지금의 남편을 보니까 손가락까지 짚어가며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었다. 새로 오신 신부님은 참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별 생각 없이 ‘2억 원’을 적어 냈다. 남편은 ‘1억 4000만 원’이었다.

 

천주교에서는 결혼을 매우 성스러운 일로 보아 결혼식을 ‘혼배성사’라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 날엔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시는데, 그 날의 신부님 설교가 일반적인 주례사에 해당한다.

 

떨려서 굳어 있던 나는 신부님이 설교라도 재미있게 해주셨으면 했다. 그런데 “새로 출발하는 두 분의 앞날을 위해서 모두 기도합시다.”로 시작된 말씀은 별다를 게 없었다.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좀 졸려 눈을 내리 감고 신부님의 설교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라고 강조하시는, 특히 그 ‘절대절명’이란 말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반쪽을 찾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두 분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희생의 구체적인 증거로 두 분께 묻겠습니다. 신랑께서는 오늘까지 자신을 키우느라 애쓰신 부모님의 모든 정성과 노력을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1억 4000만 원쯤 될 겁니다.”

 

“그럼 신부는?”

 

“네, 2억 원이라고 적었습니다.”

 

신부가 더 액수가 많아서인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서 2억 원이란 계산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 뼈와 살과 피를 죄다 주시고 껍질만 남은 부모님입니다. 이제 두 분은 앞으로 살면서 양가 부모님께 3억 4000만 원이라는 빚을 갚아야 합니다. 여기 이 쪽지는 다 갚을 때까지 여기 보관해 두겠습니다.”

 

지금 우리 부부는 그 빚을 갚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시어머니는 잊어버릴 만하면 한 마디 하신다. “아직 1억 하고 3000 하고도 900 얼마 남았다아.” (최지선/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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