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내가 개종을 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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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4-08-10 ㅣ No.3131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밋숀스쿨이라 싫어도 하나님을 안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용산역 앞 철도관사에 살았는데 신용산성결교회 찬양대에서 테너 파트를 맡았는데 그땐 지금처럼 목소리가 허스키가 아니었거든요. 철도병원에 간호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가 내 목소리에 뿅갔다 하더라구요.

젊었을 때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옛 보르네오)에 가 있었는데 같은 직장에 한국인이 약 60명, 그 중 20명이상이 기독교인이더라구요. 주일이 오면 집집이 돌아가면서 한자리에 모여조용기 목사 테이프를 틀어놓고 예배를 보는데 나도 자꾸 오라잖아요.

하기사 가족도 없이 혼자 외국에 나와 있다보니 외롭고 그래서 참여를 했는데 10일조를 내는 신자가 있어 헌금한 돈이 꽤 많이 모였더군요.

"우리 이 돈으로 예배당을 짓자"고 했더니 회교국가인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허락할 까닭이 없다고 하더군요. "종교는 자유라고 이 나라 헌법에 되어 있으니 한국인 직원에 한해서 예배를 본다고 하여 내가 책임지고 주지사한테 가서 허가 받으마 하고 설쳐서 그곳 군수, 주지사 등을 만나 10개월만에 어렵사리 허가를 받아서 예배당을 하나 멋지게 지었습니다.

원목회사라 나무가 흔하니 울린(철목) 제재목으로 땅에서 1미터쯤 높이로 바닥을 만들고(거기는 땅에 벌레들이 많아 그렇게 높이하고 폐유를 뿌린 다음에)그 위에 라왕 제재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150명이 들어갈 예배당을 100% 나무로 지은 거죠. 그곳이 남위 3도라서무풍지대라 태풍 같은게 없거든요.

자카르타에서 한국인 목사님을 초청해서 헌당예배를 보던 날 인도네시아 현지인 직원들이 나를 찾아와 자기들은 천주교 신자인데 가까운 곳에 신부님이 계시니 이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장소 사용허락을 해 달라는 겁니다. (당시 허가가 제 이름으로 나왔으니까 저에게 요청한 거지요)

"짜식들 길 닦아 놓으면 뭐가 먼저 지나간다더니 별 소릴 다하네. 안돼" 딱 잘랐지요.

한국인들만 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기엔 장소가 너무 컸고 가끔 현지주민들을 모아 문화공연도 열어보았지만 회교신자라서 교회건물에 들어오는 것이 알라신에 거역한다하여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더라구요.

한국인들 예배는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는데 저는 왠지 기도를 할 줄 몰랐어요. 글쓰기는 잘하니까 기도문을 써가지고 성경갈피에 끼워뒀다가 기도합시다 하여 모두가 눈을 감으면 그때 살짜기 꺼내서 읽는데 그때마다 아멘! 아버지! 중간중간에서 그러는 사람이 몇 있더군요. 그 중에서 아멘을 가장 자주하는 창고과장은 "야! 저 사람은 신앙심이 얼마나 깊으면 남의 엉터리 기도에 저렇게 감동하나?" 싶어 저에게서 존경까지 받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 회사에 부정사건이 터졌어요. 그것도 내 업무와 관련된 부서에서... 판매과장인 내 싸인이 있어야 창고에서 제재목 제품이 출고되는 것인데 재물조사를 하여보니 재고가 왕창 비는 것 아닙니까? 판매과장이 잘못했던지 창고과장이 잘못 했던지 둘중 하나가 잘못된 것만은 분명한데 아무리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하드라도 상대가 그 아멘 도사라서 내 생각에는 내 부하들이 일처리를 잘못한 것으로 판단 하여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시말서를 쓰고 일정액(약 2개월 봉급)을 변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경찰이 불출증없이 제재목을 팔아먹는 범인을 잡아서 회사에 데려왔는데 그 아멘도사가 자기가 데리고 살았던 현지여인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 창고에서 제재목을 몰래 빼돌렸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아멘! 아멘! 아버지! 아버지!를 외쳐대던 그가 범인이라니요? 그 사람은 곧장 귀국조치 됐고 나는 누명을 벗고 변상한 돈도 다시 찾았지만 다시는 예배당에 나갈 맘이 없더군요.

그랬더니 나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어느날밤 내 숙소로 한국인 교인들이 떼거리로 심방을 왔더군요.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내 부하직원이 커다란 십자가를 들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이거 내가 손수 만든 목각 예수상인데 뚜안(미스터) 권 한테 선물한다" 하더군요.

그 직원이 손재주가 있어 가끔 휴식시간에 목각을 만드는 것을 내 눈으로 봤지만 예수상은 제법 잘 만들었더라구요. "고맙다. 하지만 오늘은 내게 손님이 와서 너 대접을 못하겠다. 나중에 보자"하고 그걸 가지고 심방 온 사람들에게 보였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글쎄

"그건 우리 십자가가 아니라 천주교 십자가인데, 권과장님 그거 태워 버리세요" 하더라구요. 저는 천주교 십자가 다르고 예배당 십자가 다른 것도 몰랐거든요.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 하셨으니 자기들 십자가엔 벌거벗은 예수님이 없데요. 

 

그날 밤 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시내에 나갔던 총무과장이 우편행낭을 가져왔는데 (그 배낭 안에는 서울의 가족들 한테서 온 편지가 들어있어 항상 우편행낭을 기다리는데) 그날은 밤 늦게 총무과장이 돌아와서 서울 아내한테서 온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아! 글쎄 우리집 사람이 면사포를 쓴 사진이 편지 속에 들어 있더라구요. 이게 뭐야? 하고 내용을 읽어보니 자기가 답십리 성당에서 영세를 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십자고상 선물과 아내의 영세! 비록 우연의 일치이긴 했지만....뭔가 이상찮아요.

 

다음날 천주교를 믿는다는 현지인 직원들을 일부러 찾아서 "언제든지 너희들이 필요할 때 예배당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더니 매우 좋아 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인도네시아에는 16세기 초에 필리핀과 가까운 슐라베시와 오스트랄리아쪽 뉴기니아, 프로레스, 보르네오 북부에 폴튜갈또는 네덜란드,스페인에서 천주교가 전파되어 신자들이 개신교보다 훨씬 많더라구요.

어쨌던 저는 그렇게 해서 개종을 했구요. 때때로 대자나 다른 교인들이 나의 못난 행동에 혹시나 상처를 받아서 나 때문에 성당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조심을 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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