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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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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6-07-10 ㅣ No.5329

 

 

 

설악산 여행 중에 들렸던 기린면에 위치한 기린 성당은 시골의 작고 아담한 성당이었다.

 

기린이란 고유명사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지만 정감 어린 느낌을 갖게 한다.

 

문득 한때에는 고구려 땅이었을 강원도 척박한 산골에 오래 전 붙여진 이름이라면 벽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동물 "기린"에서 유래한 지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어 가는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이루어진 특전미사는 시골성당이 갖는 평화와

 

여유로움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미사를 준비하시는 수녀님과 우리일행 다섯 명을 포함해도 이십 명이 넘지 못하는 조촐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앞좌석 두 번째 줄 수녀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낯선 우리가 평화로운 시골 성당을 현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수녀님께서 함께 간 베드로 형제에게 작은 소리로 물으셨다.

 

“10번 내 주를 찬미해 성가를 아세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성가인지라 입당 성가로 선택한 곡을 몇안되는 신자가  성가를 부르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성가 책을 찾아보니 10번은 우리가 자주 불렀던 곡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반주만 있으면 어떤 성가든지 다 부를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환갑은 훌쩍 넘으셨을 것 같으나 피부가 맑고 깨끗해서 더욱 우아하게 느껴지시는

 

수녀님께서 눈을 반짝이시며 “반주를 해드리지요”라는 말을 남기시고 올간이 있는 성당 뒤쪽으로

 

가셨다.

 

그래서 그날의 의식은 무반주 성가로 기획되어 있었으나 올간이 연주되고 예정에 없던

 

우리 다섯명이 추가 참석한 조금은 향상된 격을 갖춘 미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입당 성가와 함께 신부님이 입장하셨다.

 

제단 앞에 오르시어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너무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불안한 감마저 들었다.

 

신자를 향한 눈빛이 빛났으며 성호를 긋는 손끝이 떨리고 성자들을 찾으시는

 

목소리의 여운이 길고 짙하게 성당에 퍼지고 있었다.

 

 안 되는 신자들을 위한 미사였으나 신부님은 심혈을 기울여 진지한 미사 집전에

 

열중하고 계신 것 같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미사에 익숙해져있는 나는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외출할 때 가졌던 느낌이 들었다.

 

나의 영역 안에 순수라 불리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린 신앙의 열매는 눈으로

 

보여진 부분에만 너무 집착되고 있었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성령이 강조된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궤에 꿇어앉아 드리는 미사와 함께 양영성체를 받아먹으며

 

형식이라는 무거운 의식의 울타리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색으로 어두운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피어나 일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분심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 시골 성당에서 갖는 특전미사 라서 짧고 간단하게 끝나리라 생각했었는데

 

미사는 모든 형식을 갖추고 길고 경견하게 진행되었다.

 

미사후 우리는 사제관 앞에 서 계신 신부님을 발견하고 인사를 드리고

 

떠나기로 하였다.


 

 

“사제관에서 차 한잔 하고 가시지요.”

 

계획보다 늦어진 일정이었으나 신부님의 권유에는 뿌리칠 수 없는 강한 느낌이 있었다.

 

우리는 그 기운에 끌리듯 사제관으로 들어갔다.

 

넓고 단아한 방안에 자리한 앉음뱅이 큰 책상 위에는 두가지 종류의 묵주들이 구슬 꿰는

 

작업이 진행되고있는 상태로 놓여있었다.

 

부임한지 이 주 밖에 되지 않으신 신부님께서는 그 동안 생각하고 계셨던 기도의 생활화

 

추진의 일환으로 묵주의 개선을 생각하셨다고 했다.

 

성모경을 지속적으로 기도드릴 수 있고 생활하는 도중에 어디까지 몇 번 기도를 하였는지

 

를 가름할 수 있는 태그가 부착되어 추후 조용한 시간에 맞추어 추가 기도를 올림으로서

 

묵주기도를 완성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을 시도할 수 있는 묵주였다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최종 마무리는 신부님 자신이 하셨고 이름하여 ‘성령묵주‘라 하였다.

 

신부님께서는 성모 마리아께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듯 느껴졌다.

 

젊은 신부답게 카톨릭 신자들의 신앙의 자세에 대하여 사제들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이유를 격의 없이 말씀 하셨다.

 

대화를 하시면서도 지속적으로 신부님은 묵주 마무리 작업을 하고 계셨다.

 

묵주 만드는 일에 모든 영역을 할해하고 계신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신부님이 마무리하신 묵주에 강복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야 우리에게

 

묵주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 그렇게 서둘고 계셨던 것을 알게 되었다.

 

외지에서 쫒기듯 찾아와 의무감 때문에 미사를 드리고 떠나는 가난한 영혼을 위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묵주로 항상 생활 속에 기도하는 신자로 거듭나기를 바라셨던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우리도 신부님께 약속을 드렸다.

 

“우리는 서울 하계동 성당 성가대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이 될지 모르지만 미사 때 저희가 4부 화음의 미사곡으로 아름다운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계획

 

해 보겠습니다.“

 

“아 좋지요, 내가 성당에 부임하면서 서울에 있는 성당 성가대가 일년에 한번씩 이 성당에서 성가를 부

 

르게 된다면 일년 내내 아름다운 은총의 성가가 퍼져나가게 될 것이라는생각을 했었습니다.“

 

가로등 불 빛 아래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던 신부님이 밝게 웃으셨다.  

리는 계획보다 늦어진 일정에 쫒기듯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따라 숙소로 향하는 발길을

 

서둘고 있었다. 사실 그 일정이라는 것이 우리가 정한 것이였으므로 좀 늦어졌다고

 

하더라도 누구의 질책을 받는 것도 아닐진데 우리는 바삐 서둘고 있었다.

 

몸을 도시를 떠나 왔지만 마음이 여유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보다

 

 


내일은 목욕을 좋아했던 선녀들이 즐겨 찾았다는 12개 목욕탕을 둘러볼 예정이다

 

공짜라고 덥썩 받아온 성령묵주가 호주머니 안에서 자체의 비중보다 더 무겁게 오른쪽

 

벅지를 누르고 있는 느낌에 못내 신경이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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