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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reality76] 쪽지 캡슐

2001-07-23 ㅣ No.3393

게시자: 민경영(seemly) 모두아는이의 마지막글...

게시일: 2001-07-21 23:49:59

본문크기: 9 K bytes 번호: 17379 조회/추천: 39/8

주제어:  동호회 친구가 올린 글을  고스란히 퍼왔습니다.

 

 

얼마전부터 모두 본당의 게시판에는 이재경 세자요한(당산동본당) 이라는분의 글이 도배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냥..지나쳤었죠...

그러던 그분을 청년사목부 율동찬양학교에서 보았습니다..

와~ 참 열심히 사는 분이구나..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암과 투병중이시라는 이야기를 듣게되었구 하느님을 참 좋아하는 분이라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분이 14일 오전 10시에 돌아가셨답니다.

율동을 너무나 좋아하시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분의 생전 마지막(?)글을 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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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병원에 가려 합니다.

피검사 결과가 좋으면, 입원 치료 할 예정입니다.

좋지 않으면, 치료가 연기될 것입니다.

 

작년 연말 이후로 저의 모든 계획의 기초는 치료 계획이 최우선 되었고,

그 빈틈을 이용하여 나머지 생활 계획을 작성하곤 했습니다.

치료 계획에 변동이 생기면, 나머지 계획들의 수정은 당연합니다.

지난 주 치료가 불가하여 일주일 연기됨으로써,

가령, 7월 말에 있는 우리 본당의 도보성지순례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꼭 가고 싶었는데...

 

 

저는 병원에 가면, 제가 할 일들을 찾곤 합니다.

답답하게도 침대에만 누워있다가는...

제 의욕이 점점 저하되고, 기운도 더 떨어지며, 입원 자체로 더욱 중환자가 되고 맙니다.

 

제가 병원에서 주로 보내는 시간들은...

집에서도 자주 하지는 않는 샤워를 하루에도 세 번씩 하고...

1층 매점에 가서, 과자나 음료수를 쇼핑하거나,

5층 성당에 가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거나...

침대에 앉아서 책 읽고, 카세트 듣는 것이 전부 입니다.

 

 

 

지난 주, 주일을 포함하여 3박 4일을 입원했을 때는,

마침 주일에는 그 날 계획된 치료가 오전에 끝이 나서...

우리 본당 교우들을 보고 싶어서, 미사 시간을 맞추어 외출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 만큼 병원 생활은 단조롭고 지루합니다.

이제 사고를 약간 뒤집어 보겠습니다.

 

 

제가 생활에 너무 힘이 들때,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데, 복잡하게 엉켜 있기만 할 뿐,

어디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손 댈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답답하기만 할 때...

저는 병원생활을 기억하며,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병원에 제 생존을 부탁드릴 때, 제가 가진 환경은...

하루 세 끼의 식사와,

화장실 겸 세면장과,

손에 움켜진 묵주와 성서책이 전부 입니다.

 

 

실상 제게 필요한 것은 그 세 가지,

음식과 배설과 믿음...

 

 

저는 그것만으로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썩 유쾌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돌아온 초심은 제가 명확하게 사고하고, 판단 하도록 저를 이끌어 줍니다.

혹시 복잡한 일들이 여러분의 사고를 꼼짝 못하도록 붙들고,

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면...

자주 주님을 생각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보시길 권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의 일이 해결되리라는 장담은 못드리겠지만,

적어도...

닥친 일을 해결하지 못하여 받은 심한 스트레스로 다시 사고의 촛점이 흔들려,

해결은 엄두도 나지 않고,

오히려 누적된 몇 가지 일들로 점점 정신이 병들어 가는 현상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제 힘으로 막을 수가 없는 일로 인하여 슬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부모, 형제가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무척 슬플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충분히 슬퍼하시길 바랍니다.

 

슬픈 일에도 울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입니다.

 

 

주위에 갑자기 돌아가신 가족을 경험하며, 하느님을 매우 원망하시는 분들을 가끔 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슬퍼서 일시적으로 하느님께 화풀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혹시 진정으로 주님을 원망하시고,

그 계기로 냉담하시고 배교까지 하신다면...

 

그것은 너무나 그릇된 행동 임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 합니다.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더라도, 저의 가족이 돌아가시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닥친 슬픈 일을 하느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슬픈 일을 당하신 분들께...

충분히 슬퍼하시고,

때가 되면 다시 유쾌하게 일어서시길 기도 드립니다.

 

여러분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라며...

주님께 영광이 영원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이재경 세자요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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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이라....

주님의 기도 마지막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이 아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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