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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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03 ㅣ No.5299

 

어느 날 하교길이었습니다.

친구랑 둘이서 큰길 횡단 보도에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눈 앞으로 휙 종이 조각들이 날아왔습니다. 은행에서 급히 나오던 아저씨의 종이 봉투에서 쏟아진 지폐였습니다.

"어머...웬 돈이래?"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아주머니가 소리치며 돈을 주웠습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도 모두 달려들어 돈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도 나도 바람에 펄럭이며 달아나는 돈을 열심히 주웠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흩어진 돈들이 아저씨 품으로 아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 이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씬 연신 고맙다며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돈이 맞는지 한 번 세어 보세요."

아주머니의 그 말에 아저씨가 하나둘 돈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혹 돈이 모자라지 않을까 숨죽여 지켜봤습니다.

"여든아홉 아흔 아흔하나 아흔둘 아흔셋."

돌아온 돈은 93만원. 한 뭉치면 100만 원일텐데...

그런데도 아저씨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맞네요. 이거 고마와서 어쩌죠? 제 아들이 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사례를 할 텐데. 마음이 바빠서 가봐야겠습니다."

나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주인이 맞다고 하니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몇 걸음 가다 말고 친구가 멈춰 섰습니다.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던 길을 되짚어 갔습니다.

의문이 속 시원히 풀린 것은 며칠 뒤 친구의 고백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날 친구는 아저씨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주웠던 7만원을 돌려드리며 사죄했습니다.

"근데 아저씨, 왜 돈이 모자란다는 말씀 안 하셨어요?"

"글쎄... 내가 돈이 모자란다고 했으면 가진 사람이 당황했겠지. 그리고.... 난 단지 돈이 바람에 날아갔을 거라고 생각했지 누가 일부러 안 내놓고 있다고는 생각을 한했거든."

친구는 그날 아저씨의 그 말에 잠시나마 나쁜 마음을 먹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팔을 들고 그 용기있는 친구의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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