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지팡이가 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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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06 ㅣ No.5314

 

 

아름다운 숲에 나무 한 그루가 살았습니다.

나무의 꿈은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 멋진 집의 기둥이 되거나 큰 배의 갑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나무는 작고 볼품없었습니다.

다른 아름드리 나무들은 허황된 꿈만 꾼다며 나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목수가 그 숲을 찾아왔습니다. 목수는 깐깐한 눈으로 숲을 둘러보며 재목감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나무가 목수의 눈에 띄고 싶어 가지를 흔들고 잎을 팔랑댔습니다.

목수는 미끈하게 잘 빠진 아름드리 나무들을 다 제치고 그 볼품없는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흠.. 이 나무가 좋겠는데..."

나무는 황홀했습니다.

나라 안에 제일가는 목수의 눈에 들었으니 궁궐의 대들보가 되거나 하다못해 문짝이라도 될거라는 생각에 나무는 밑동이 잘리는 아픔도 참았습니다.

나무는 반듯한 목재들이 빼곡이 들어찬 공방으로 옮겨졌고, 목수는 노련한 솜씨로 나무를 다듬어 나갔습니다. 다른 나무들의 부러움 속에 검고 울퉁불퉁한 껍질이 한 겹 벗겨지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나무는 한참 뒤 다른 나무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쭐대더니 저 꼴 좀 봐."

"헤헤헤, 겨우 지팡이잖아."

’지..지.. 지팡이라니?’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목수는 나무를, 아니 지팡이를 들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목수가 도착한 곳은 산 속 다 찌그러져 가는 오두막이었습니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한쪽 다리가 불구인 노인이었습니다.

"영감님, ..저  여기."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때가.. 이 은혜를 뭘로 다 갚을지 원."

고맙다면 눈물까지 글썽이는 노인에게 목수가 말했습니다.

"은혜는요, 제가 더 고마운 걸요. 이 지팡이는 제가 평생 만든 어떤 물건보다도 값진 것입니다. 만드는 동안 아주 행복했거든요."

"젊은 양반이 속도 깊지. 내 소중히 쓰리다. 잘 가요, 잘 가..."

"안녕히 계세요. 부디 잘 쓰십시오."

나무는 그제서야 생각했습니다.

궁궐의 대들보보다 큰 배의 갑판보다 노인의 지팡이가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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