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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절대고독의장소-복음에서보면예수님께서는성령의인도로광야에나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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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7-05-02 ㅣ No.7503

광야, 절대 고독의 장소






광야, 절대 고독의 장소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십니다.

광야라는 곳, 들짐승이외는 아무도 살지 않는 험하고 메마른 곳이지요. 광야라는 곳은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곳입니다. 외로운 곳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기에 철저히 혼자이어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홀로 서시기 위하여 광야로 나가신 것입니다.

절대 고독을 찾아 광야로 가신 것입니다.
절대 고독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 하느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광야에 가신 것입니다.

거기서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면서 하느님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당신이 공생활을 하시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거기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만난 후 찾아온 자가 있었으니 그는 유혹하는 자, 악마였습니다.


우리도 때로 혼자 있는 광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광야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하느님하고만 지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도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아무의 도움도 소용이 없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만 단식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광야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도움은 오직 주님이시라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닉하게도 그것을 깨달으며 안도의 쉼을 쉬려 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유혹하는 자입니다.


바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가셨고 악마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소리가 들려옴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확신, 당신이 바로 메시아라는 사명을 받으신 위대한 체험의 순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엄청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바로 그런 은총의 시간, 위대한 순간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은총의 순간 이후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것이 바로 시험의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놀라운 방법으로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는 은총을 체험합니다.
재의 수요일, 이마에 재를 얹는 예식을 하면서 사순절을 새로운 삶의 출발로 삼았으니 은총의 때이지요.
사순 시기를 맞으며 우리의 신앙 삶을 되돌아보고 이제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으니 우리에게도 거룩한 시기이지요. 그런데 이때야말로 조심해야 하는 때입니다.
질투가 많은 악마가 견디지 못하고 안달을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신 유혹의 체험이 다만 외적인 것으로 생각하시면 잘못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께서 내면적으로 겪으신 투쟁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마음과 정신, 영혼이 겪는 갈등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실상 유혹하는 자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의 생각과 바람을 통해서이지요.
악마가 우리를 공격하는 부분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생각이지요. 가장 그럴듯한 생각을 불어넣으면서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우리를 시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부하심으로서 악마를 패배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악마는 물러갔지요. 그런데 영원히 간 것입니까? 루가 복음 사가는 분명하게 말하지요.
그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물러갔다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안 된다고 할 때 다시 “사탄아, 물러가라.” 고 말씀하시지요.
보십시오.
그 순간도 바로 베드로가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위대한 순간이었지요.
그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다. 바로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고 하신 위대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 사탄이 베드로에게 와서 유혹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습니다.

한 순간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늘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분께 매달릴 때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외쳐주십니다.
베드로에게 외쳐 주셨던 것처럼. “사탄아, 물러가라.” 어느 누구도 유혹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는 이제 어느 정도의 경지, 다시 말해, 어느 선은 초월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유혹에서 제외된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약한 우리 인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늘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시험을 이기고 더 정진 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유혹은 바로 그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혹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시험이고 시련인 것입니다. 물론 유혹은 악마의 힘이고 악마는 늘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때로 하느님께서 악마의 그 유혹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결코 견딜 수 없을만한 시련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분의 도움 없이 우리가 유혹을 이겨나갈 수 없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악마가 예수님께 와서 하는 그 유혹을 보면, 악마의 작전을 알 수 있습니다.

세 가지는 한마디로 하면, 물질, 명예, 권력이지요. 그것이 이 세상 안에서 악마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단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들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의 앞에 하느님을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유혹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성서를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늘 우리의 실제의 삶에서 새겨야 합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는 것과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는 말씀과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는 말씀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앞에 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빵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어느 정도의 힘도 또한 인간다운 명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주 하느님의 앞에 놓고 산다면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어느 것을 하느님보다 앞에 놓고 산다면, 우리는 바로 사탄의 하수인이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그분의 도우심으로 유혹자에게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주님께 ‘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stchoir.cafe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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