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이유

인쇄

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2-09-19 ㅣ No.2742

 

 

* 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이유* - 김현태 시인 처음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겨주고 가끔씩 흔들거리는 벼이삭과 눈인사도 나누며 참새들과 허공을 가르며 달리기시합도 했던 그 때까지만 해도 기차는 참으로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차의 얼굴에 여드름이 몽글몽글 날 즈음, 기차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던 것이다 나는 왜 내 길을 벗어날 수 없을까 ? 새색시 가슴처럼 도톰하게 핀 벚꽃나무를 보면 잠시라도 가던 길을 버리고 꽃망울에 입맞추고 싶고 창가에 달빛 드리운 그런 밤이 오면 철로에서 한 걸음 뛰쳐나와 당장이라도 그대에게 달려가련만 기차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잠시 스쳐간 이름도 모를 간이역을 기차는 사랑하게 된 것이다. 느끼고 싶어도 만질 수 없고 고백하고 싶어도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을, 그래서 울었던 것이다. 내 마음 알아달라고 시작과 끝을 수 십 번 오가는 이유도 잠시라도 그대를 볼 수 있기에, 내가 늙어 고철이 되어 한 곳에 자리잡고 누워야 한다면 민들레 마당을 갖고 있는 바로 그 간이역임을 알아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기차는 그렇게 기적소리를 내며 목놓아 울었던 것이다. - 선물하기 좋은 시집

중에서...



1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