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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길게 써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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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58.233.153.*]

2013-08-17 ㅣ No.10248

 이거참....

... 그러니까 말입니다.

~~~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성경까지 이르는 이 Story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교. 이런 순서로 대상이 바뀝니다만, 하느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한 인격의 성장과 관련해서, 그 시기에 맞게 교육하시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자제분이 어른이라면 우선은 말로 하지요. 말로 해도 보통은 들으니까요. 
자제분이 아직 아이라면 말로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치고 꾸짖고 급기야 때리기도 하고 그러지요.
문제는 왜 죽이냐 하는 것인데요.
하느님 앞의 이스라엘은 공동체로 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라는 이름의 한 명의 아기를 키우셨습니다.
이 아이에게 안 좋은 성격이 있다면 그 부분을 놔둘 수가 없지요.
없애버려야 합니다.
공동체 안의 한 사람, 혹은 한 가족, 한 부족은 그러한 하나의 성격적인 면이 될 수도 있고,
하나의 습관, 관습적인 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몇명을 그렇게 해서 없애버리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삽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교화"라는 것이 없습니다.
강압적으로 키우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말을 잘 듣고 잘 하면 무한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칼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그 당시 어린 세대를 제외하고 모세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을 차지하지요.
구 세대가 미워서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한 명의 인격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새로워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들어가는 것이지요.
어쨌든 이스라엘의 명맥은 이어져 갑니다.

신약에 와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새로운 이스라엘이 바톤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구약과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였고 사춘기를 지난 청소년이었다면
신약의 이스라엘은 성장한 어른이 되어서 굳이 때리거나 꾸짖지 않고 말로 해도 듣습니다.
성장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랑의 하느님이 더 부각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조차도 하느님께서 어떻게 해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떨어져 나갑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이란 어느 때고 늘 그 다음 단계에 진입한 성장한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관점에서 보자면 공동체가 하나의 인격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도 공동체 밖에서 하느님과 단독으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가는 것이지요.
물론 공동체와 개인이 양립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떠나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구약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느님의 관심이 개인까지 미치는 것은, 공동체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살아도 개인은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체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답변이 되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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