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며칠 전에 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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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연 [hanjae] 쪽지 캡슐

2000-04-14 ㅣ No.576

언젠가 제가 아직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을때 독서대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빛나눔터를 하던 때 청년신자가 직접 쓴 원고로 1독서를 대신 했던 미사였습니다.

그때 저는 후배이야기를 썼습니다.

 

많이 힘들어 하던 덩치 큰 녀석이 많이 야위고 황량한 모습으로 나타난 오래간만에 나타난 술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더랬습니다. 세상 사는게 왜 이렇게 힘이 드냐고...

그 녀석에게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울고 있는 덩치큰 녀석 앞에서 선뜻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 선배가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데다가 저 역시 세상이 힘들었고 한술 더 떠 녀석에게 힘든 길을 선택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마지막에 그렇게 썼습니다.

뭐라 위로할 말도 없이 함께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로 그냥 손을 꼭 잡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로 끝끝내 가야한다고 ....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다짐했었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녀석에게 감히 위로조차 할 수 없는 길이지만

끝끝내 가겠다고 말이죠. - 어쩌자고 그런 용기가 났을까요?

 

그때의 그 후배가 며칠전 E-mail을 보내왔습니다.

요즘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구요, 스스로 되고자 했던 모습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고요.

아직까지 전 답장을 못했습니다.

글쎄요, 그렇게 독서대에 올라가 호언장담하던 제 모습을 생각해보고 지금 제가 선 자리를 돌아보느라고요.

잘 서 있는 걸까요? 혹시 많이 다른 길로 가고 있는건 아닐까요?

 

 

벌써 5-6년쯤 지난 때의 일이지만 아직도 들썩이던 녀석의 어깨가 눈에 선합니다.

 

내일쯤은 녀석에게 전화라도 해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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