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헤로디아와 살로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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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annasee] 쪽지 캡슐

2002-11-10 ㅣ No.4086

 

딱 1년 전 이맘때 진행되고 있던 "성서와 여인들"이라는 그룹 성서 공부를 위해 신부님께서 목요미사시 강론해주셨던 내용입니다.1년이나 쉬었다 올리게 되어서 죄송하구요 다시 올리게 됨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전에 강론해주셨던  여인들을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용산성당 두 번 째 창에 뜨는 메뉴 중에 "마삼C"를 클릭하셔서 "성서속의 여인을" 찾아 치시면 됩니다. 하루 한편씩 읽어 보세요. 성서읽기가 재미있어질 겁니다.

 

두 인물은 세례자 요한의 순교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인데  

실지 살로메는  그 당시 문헌에는 나오지만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두 인물얘기를 시작하자면 우선 그 당시 역사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들의 가족사부터 풀어가야한다.  B.C.63년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안티파텔을 실권 자로 앉혀 놓는다.  그는 정통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두메인이었기에 유대인들은 같은 민족취급을 하지 않았고 게다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조인 마카베오 왕조의 또 마지막왕인 히르카누스 2세의 부하였다.(마카베오 왕조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기로 대단히 중요한 역사라하셨습니다.) 평생 유대인에게 무시당하고 살았을 그를 유대인을 짓밟는 시민지 정책에 앞장 서도록 새로운 왕으로 앉힌 것은 로마인들의 영리한 정치적 수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년후 유대인들에게 암살 당한다.

 

그의 아들이 바로 예수탄생때 나오는 헤로데 대왕이다.  헤로데 대왕 무척 정치적 인물임을 알 수 있는 것이 우선 마카베오 왕조의  마지막 왕 히르카누수 2세의 손녀 미리암과 정략결혼함으로써 옛왕권과 친밀히 지내 그들의 힘을 얻고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 증축하여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 노력하는 한편 로마 왕실에는 아첨을 하였다.  정략결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랬는지 부인이 10명이나 됐는데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헤로데는 제 4부인의 아들인 헤로데안티파스를 가리킨다.  그의 어머니는 헤로데 대왕의 제4부인  말라케이다. 이 안티파스가 바로 예수시대에 있었던 이고 예수가 그를 여우라 부르고있다(루가 13,32).

 

헤로데 안피파스는 갈릴레아의 영주일 뿐 정식 왕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헤로데 왕이라 했다. 그도 또한 정치적 인물이었는데 우선 도시를 요새화하고 티베리아라는 도시를 세워 갈릴리의 수도로 삼았다. 그 때부터 갈랄리 호수는 티베리아 호수라고도 불린다. 그도 아버지처럼 정략결혼을 하는데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라비아제국의 부족국가 나바테아국의 아레타스 4세의 딸과 혼인을 하여 국경을 평안하게 하고 로마에 아첨하기 위해 로마에 간다.

 

로마에는 이복형, 즉 헤로데 대왕과 그의 제 3부인과의 사이의 아들 헤로데 필립보가 살고있었는데 그 형집에 갔다가 그의 부인 즉 형수인 헤로디아를 만났고 만나면서 둘사이에 전기가 통했다(한다).  그녀는 야심찬 여인이었는데 관직도 없고  무능한 남편인 필립보를 버리고 시동생과 결혼을 해버린다.

이름과 관계가 여간 복잡한게 아니지요. 안티파텔-헤로데대왕- 헤로데(안티파스)/ 필립보 이렇습니다.

 

 게다가 헤로데가 정략결혼을 한 아라비아 부족 국가의 딸, 즉 전처와도 헤어지라 요구한다. 그런데 기가막힌 것이 그녀 또한 헤로데대왕이 제 2부인과 사이에 난 둘째아들에게서 난 딸이니 대왕의 손녀이므로 헤로데와 헤로디아도 따지고 보면 삼촌과 조카사이인 것이다. 전남편 필립보도 마찬가지고.

 

A.D. 26-27 그 둘은 결국 결혼을 하는데 이시기는 세례자 요한이 활동하던 시기였고 주위의 다른 왕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요한은 그들을 옳은 일이 아니라고 간언하며 비난하였다(마태14,4;마르 6,18). 헤로데는 민심이반이 두려워 그의 목을 치려한 악한 마음은 있었지만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마음을 굳히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고 있었다.(마태14,5;마르6,20) (예수심판때 처럼).

 

그런데 그의 부인 헤로디아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속담에도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하는 말이 있는데 집회서 25장13절에도 "마음의 상처가 아니면 어떤 상처라도 좋고 여인의 악의가 아니면 어떠한 악의라도  참을 수 있다"라는 말씀도 있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인의 한은 무서웠나 보다고 하셨습니다 . 게다가 이세벨에 버금가는 헤로디아의 원한을 샀으니…

 

로마로부터 정식 왕 임명을 받지 못한 헤로데는 그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연다. 그 잔치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과 필립보 사이에서 난 딸인 살로메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데 그 당시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은 창녀들이나 무희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합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자신의 딸에게 어떤 짓도 가리지 않고 시키는 는 헤로디아를 또 볼 수 있다. 야심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도 복잡한 가계구도 속에서 살았기에 윤리적 기준이 없음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살로메 또한 헤오데 대왕과 그의 제 5부인인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아들 필립보와 결혼하는데 이는 자기집안의 할아버지벌 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되는데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라 하셨습니다. 헤로데콩떡이나 팔까 하는 농담도 해주셨는데요.

 

결국  살로메는 헤로데 기쁘게 했고  그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며(마태14,7)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마르6,23) 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지만  헤로디아는 딸에게  요한의 목을 요구하게 한다.(마태14, 8; 마르 6,25). 헤로디아는 남편 헤로데가 왕이 아니니 땅1평도 줄 수 있는 권한이 없는 허풍임을 알고 있었다. 권위를 세우기위해 연 잔치에온 많은 사람앞에서 한 약속이니 그는 그 허풍을 가리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게다가 헤로데는 그녀의 요구대로 나바티아 왕녀인 부인을 폐서인 시킴으로 나바티아 왕국과의 전쟁을 초래하였고 전쟁에서 짐으로 인해 로마황제가 화가 나서 A.D.39 그를  무능하다고 파면시켜버린다. 그 후 프랑스 리옹으로 귀양살이 가는데 헤로디아도 뒤따라갔으나 그뒤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한다.  살로메 역시 그 뒤 역사에서 사라졌고.

 

머리를 써서 권력을 잡고 득세했지만 악으로 머리를 써서 악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결국 악이 그 문을 닫아 버린다 하셨습니다.  헤로데대왕의  다른 아들들도 다 그렇게 악으로 망했다 하시며.

 

마태오 14장 마르꼬 6장을 참조하세요.

 

저는 성서속의 남자들을 꼽아보라하면 세례자 요한을  앞자리에 넣고싶습니다. 그 당시 율법에 얽메여 있던 많은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면 죄가 사해진다 하며  복된 소식을 전하였으니 얼마나 민중의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추종자들도 많았다지요. 그래도 겸손되이 그 분의 신발끈을 묽어드릴 자격도 없는이라 하시며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예수님의 길을 곧게해주셨던분.  아마도 추종자들이 더욱 난리를 쳤을 것입니다.

그렇게 멋있고 위대한 인물이 여인의 악의로 맥없이 사라져가다니...너무도 안타깝지않습니까. 우리 여자들이여.  절대 원한, 악의 따위 품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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