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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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yimariaogi] 쪽지 캡슐

2006-09-09 ㅣ No.6936

      가을날 /이성선 말씀 없는 당신 말씀이 하늘에 소리 없이 피었습니다 얼굴 없는 당신 얼굴이 들판에 작은 풀꽃으로 웃습니다 당신은 멀리 있는 듯하지만 당신은 안 보이는 듯하지만 하늘을 보면 걸어오고 들판에 서면 향기가 발을 적십니다 새를 숨기고 솔잎 끝에 별을 빛내고 잎 떨어진 나무 가슴으로 달을 껴안으며 물소리 울리는 돌 뒤에서 낙엽 뒹구는 숲 뒤에서 해지고 난 지평 너머에서 당신은 발자국소리로 오십니다 사랑의 울음으로 오십니다 나의 고독을 깨우시고 내 몸의 귀를 열어 텅 빈 들에 홀로 세우십니다 이 가을날 더욱 멀리 있는 당신 ----------------------------- 가을 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 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 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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