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제 논문입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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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영 [natura96] 쪽지 캡슐

1999-12-17 ㅣ No.1020

사랑하는 여러분...4년간의 노력의 결과로 얻어낸 논문입니다..비록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조금이나마 ’전례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씨몽 올림)     

p.s : 각주 참조가 포함이 도질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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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사 학위 논문

 

 

제목 : 전례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고찰

 

 

                                 학     교: 부산가톨릭대학교

                                 학     과: 신    학    과

                                 학     번: 9   6   0   2

                                 이     름: 권    우    영

                                 담당교수: Rev. 윤  용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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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차례>

 

서론  

 

 

본론

 

1. 전례음악이란?

 

 1-1. 교회 내의 음악용어들

 

  1) 성음악(Musica Sacra)

 

  2) 전례음악(Musica Liturgica)

 

  3) 종교음악(Musica Religiosa)

 

  4) 교회음악(Musica Ecclesiastica)

 

 

 1-2. 한국 가톨릭 교회와 음악

 

 

 1-3. 한국 가톨릭 교회 전례음악의 실태

 

  1) 음계

 

  2) 노래의 구성 요소 : 가락, 박자, 화성

 

  3) 말(가사)과 곡조의 연결

 

 

 1-4. 한국 가톨릭 교회 전례음악의 현실과 문제점  

 

 

2. 토착화란?

 

 2-1. 토착화의 개념

 

  1) 토착화(土着化)

 

  2) 문화 융합(Acculturatio)

 

  3) 토착 문화화(Indigenisatio)

 

  4) 문화 적응(Inculturatio)

 

  5) 상황화(Contextualisatio)

 

 

 2-2. 토착화의 문제점

 

  1) 토착화의 정도는?

 

  2) 토착화는 그리스도화인가, 한국화인가?

 

  3) 토착화의 나아갈 점

 

 

3. 전례음악의 토착화

 

 3-1. 전례음악의 토착화에 대하여

 

 3-2. 그레고리오 성가의 토착화 가능성

 

 3-3. 한국전통음악에 관한 전례 속의 토착화

 

 3-4. 토착화 작업의 현실적 문제

 

 

 

4. 전례음악 토착화의 구체적 방향

 

 4-1. 공감대를 형성하는 전례음악

 

 4-2. 전례음악을 위한 교회의 구체적 노력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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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교회가 우리 민족의 감정이나 종교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토착화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심한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교회의 사상이나 전례의식이 아직도 대중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 교회 자체가 이 땅에서 자생하거나 어떤 한 민족에게만 제한된 교회가 아니고, 범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종교단체이기 때문에, 세계 교회와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전례란 백성의 행위이기 때문에 문화와 직결되어 있다. 즉 전례는 문화를 재료와 도구로 사용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문화를 떠난 전례란 백성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능을 상실 할 수밖에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의 이러한 본질을 감안하여 전례의 개혁과 육성책을 강구함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였다.

 

 

 

  교황 요한 23세가 내세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목표는 "가톨릭 신앙을 강화하고 그리스도 신자들의 풍습을 쇄신하며 교회 생활을 우리 시대의 요구에 적응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을 ’현대화’ (Aggiornamento)라는 단어로 축소시켜 표현하였다. 아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 내에서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이른바 ’토착화’일 것이다.

 

 

 

 제 3세계는 물론이요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이 전해진 모든 곳에서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토착화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제기되었다.

 

 

 

 1967년 3월 5일자 교황청 예부성성이 발표한〔예전(禮典)에 있어서의 음악에 대한 훈령〕제 61항에서는 ’고유한 음악 전통을 가지고 있는 지방, 특히 지방에서는 성음악에 적응시키는 문제에 있어 음악가들의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구절을 통하여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암시하였다.

 

 

 

 그러나 어떤 지방이나 민족이나 민족의 전통적인 습성과 사상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례의식이나 전례음악에는 많은 문제점이 들어 있으며, 진지한 연구와 적용으로 우리 민족에게 어울리는 토착화 내지 현대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의 전례음악들은 한국 민족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감정이나 심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며, 우리와는 언어나 풍습이 아주 다른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 불러왔고 또 지금도 부르고 있는 그런 전례음악들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반면에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자기 민족의 고유한 감정이나 심성만을 고집하며 산다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생각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깊은 내면이나 감정을 소리로 나타내는 음악에 있어서는 그 상황이 아주 다르다. 더구나 한 사람의 인격을 창조주 하느님 앞에 모두 바쳐드리며 자신의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전례행위 안에서 부르게 되는 전례성가에 있어서는 경우가 아주 다르다는 말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비판의 눈으로 살펴보아, 좋은 것은 그대로 유지 발전시키고,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개선시켜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우리에게 잘 맞는 전례음악을 많이 만들어서 전례행위에 참석하는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야 하겠다.

 

 

 

 

 

본론

 

 

1. 전례음악이란?

 

 

1-1. 전례음악의 개념

 

 

 

 우선 전례음악을 다루기 위해선 그보다 더 큰 범주의 교회음악의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교회음악 또는 성음악(聖音樂)이라 하면, 교회의식(敎會儀式)이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종교적인 목적, 즉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자들의 성화(聖化)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그리고 교회음악 가운데 특별히 교회생활에 있어 중요한 행위인 전례(典禮), 가령 미사(Missa)나 기타 성사(聖事 : Sacramentum)를 집행할 때 전례문(典禮文)에 결부된 노래로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자들의 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을 우리는 전례음악(典禮音樂)이라고 부른다.

 

 

 

 세속음악, 또는 속세(俗世)음악은 모두 다 교회음악, 특히 전례음악과 아주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물론 속세음악도 때로는 신(神)의 위엄과 위력을 찬양하거나 인간 정신을 승화(昇華)시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것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목적이 일차적으로 관능적(官能的)인 것이므로 교회음악의 범주에 끼어들 수 없다. 또한 비록 전례문에 결부된 노래라 할지라도 그것이 너무 관능적인 것일 때 교회는 이를 배척한다.

 

 

 

 이렇게 음악은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나, 우리는 많은 경우에 전례음악, 교회음악, 종교음악, 성음악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잘못 오용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위의 음악들의 개념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1) 성음악(Musica Scara)

 

 

 

 성음악은 가톨릭 교회음악을 세속적인 음악과 대조시켜 말하며 그 음악의 사용목적, 사용하려는 의도, 방법 그리고 영감으로써 신앙과 관련을 맺는 모든 음악에 적용된다. 이때는 어의적으로 교회음악과 일치한다. 그러나 성음악이 일반적으로 세속적인 성격과 구별되는 의미로만 사용되어 다른 종교의 음악도 수용할 때는 성음악이 교회음악보다 그 의미가 크다. 이때의 성음악은 우리들이 보통 종교음악이라고 하면서 다른 모든 종교의 성스러운 음악을 말할 때의 의미가 되고 종교음악으로 성음악이 대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의 종교음악(the music of religion)은 성음악과 구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이 종교음악은 가톨릭 교회음악의 범주안에 있다.

 

 

 

 성음악은 찬양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느냐, 간접적으로만 사용되느냐에 따라 전례음악과 종교음악으로 나뉘고 이 중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엄격한 의미에서 전례음악은 아니나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인 전례 안에서의 음악의 세범주가 있고 이 세범주를 6개의 장르로 구분지을 수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 성스러운 다성음악, 근대의 성음악, 오르간을 위한 성음악, 종교적 대중가곡, 종교음악 등이 그것이고 이 6쟝르는 역사적으로 성음악과 더불어 발전되어 왔다.

 

 

 

 

2) 전례음악(Musica Liturgica)

 

 

 

 성음악 중 교회가 엄격한 의미로 전례라는 공적이고 직무적인 찬양의 거행에 사용하도록 법적으로 인정한 음악 만을 전례음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음악은 미사나 성무(Divine Office)등 가톨릭교회의 찬양 중 주된 예식과 관계되기에 성음악 중 가장 중요하고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전례음악은 크게 성성(Holy See ; 聖省)에 의해 인준된 전례서에 규정되어 자유로이 곡을 선택, 변경할 수 없는 일정한 가락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예술의 진보를 인정하며 아름답고 좋은 모든 것을 예식의 봉사에 받아들인다는 교회의 정신과 전례법규와 일치하여 역사발전 과정에서 첨가된 고전적인 다성음악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모든 근대와 현대음악도 찬양의 예식적 필요와 상관된다면, 즉 건전한 예술의 형태를 갖추었다면 전례에 도입할 것을 허용한 성교회의 원칙에 따라(전례헌장 112항) 전례성가의 부분으로 인정될 수 있다.

 

 

 

 전례음악이나 종교음악은 그 구별이 분명하지만 전례음악 안에서는 전례음악에 대한 정의만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첫째는 엄밀한 의미로는 전례음악이 아니지만 전례행위를 수반하는 음악이고, 둘째는 예식을 집전하는 동안 연주되는 음악의 부분이다. 전자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종교적 대중가곡’이라고 밝히고 있고(전례헌장 118항) 이것을 수단으로 신자대중은 미사 중에 전례행위에 참여하게 된다. 보통 오늘날 우리들이 미사 중에 부르는 성가를 뜻한다.

 

 

 

 둘째의 경우는 오르간이나 기타 다른 악기에 의해 연주되는 음악의 부분으로서 악기만 연주될 경우에는 ’전례음악’이라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례 안에서 사용이 허락되어 있다(전례헌장 120항).

 

 

 

3) 종교음악(Musica Religiosa)

 

 

 

 이 음악은 종교적인 감정만을 나타낼 뿐, 전례 안에서의 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음악을 말하며 그 예로 음악성극(Sacred Drama), 오라또리오(the Oratorio), 깐따따(Cantata), 일반적인 성가(Sacred Song, 복음성가), 그리고 종교적인 줄거리를 나타내는 오케스트라나 악기 연주용 작품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종교적인 음악은 연주회 등에서 사용되거나 전도용으로 이용되며 공적 찬양에 오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4) 교회음악(Musica Ecclesiastica)

 

 

 

 교회음악은 글자 그대로 교회음악 만을 지칭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신자들의 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가톨릭교회 안에 존재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교회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교회, 즉 기독교를 말한다.

 

 

 

 이는 넓은 범위로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 동방정교 등의 하느님을 믿는 교회를 말하며 자연적으로 이런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노래를 일컬어 교회음악이라고 한다.   이상의 교회음악에 대한 개념을 전제로 하고,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전례음악의 현실정을 고찰해 보면서, 여기서 따라 나오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을 다루어 보려 한다.

 

 

 

 

 

1-2. 한국 가톨릭 교회와 음악

 

 

 

 한국에 가톨릭 교회가 창설된 이후 200년을 거쳐오는 동안 교회는 개인의 정신 생활과 낡은 전통 문화에 대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전례음악이 우리 나라에서 미사를 포함한 여러 종교 행사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여러 음악 운동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 서양음악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대 이화 학당에서 시작된 개신교의 찬송가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공부라고 하는 것이 주기도문과 예수 사랑하심이란 찬송가를 영어로 배우면서 예배를 보는 것이다"(이화70년사). 이처럼 개신교는 처음부터 찬송가를 예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인정하고 중시해왔다. 그러나 개신교보다 100년이 앞서 이 땅에 들어온 가톨릭은 당시까지 성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다만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교회의 기도문이나 경문 등이 한국 고유의 창이나 민요가락에 맞추어 읊어졌다는 증언이 있다.

 

 

 

 1930년경 단성으로 된 성가집이 서울과 덕원 등에서 발간되기도 했으나 예술적 가치는 거의 없는 것이었다.

 

 

 

 1939년 장발, 한창우 등이 소박한 단성의 노래를 지양하고 이른바 합창으로써 노래 부르기를 시도했었는데 보댕 신부의 도움으로 ’Ave Maria’와 ’Laudate Dominum’을 남성합창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에서 울려퍼진 최초의 합창이다.

 

 

 

 1945년 주한 미군을 환영하는 미사에서 혼성합창이 시도되었고 이때부터 서울 가톨릭 합창단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가톨릭 교회의 음악이란 그 역사가 매우 짧고 또한 그 음악적인 내용도 매우 얕음을 알 수 있다.

 

 

 

1-3. 한국 가톨릭 교회 전례음악의 실태

 

 

 

 한마디로 한국 가톹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례음악 중에는 한국적인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거의 대부분이 우리와는 언어나 풍습, 감정이나 심성이 다른 외국 사람들의 것들을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고 사용함으로써 점점 거리 감각이나 지역적 특성을 좁혀 가며 서로간의 교류를 증대시키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사상, 문화, 기술, 언어 등).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을 창조주 하느님 앞에 모두 바쳐 드리며 자신의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전례 행위 안에서 부르게 되는 전례 음악에 있어서는 경우가 아주 다르다. 바로 그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음계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사용해 온 음계는 5음으로 구성된 5음계(黃, 太, 仲, 林, 南)로  평조와 계면조로 되어있다. 이에 비해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전례음악의 거의 대부분은 서양음악에서 사용하고 있는 12음 음계로 작곡된 것이다. 물론 12음 음계가 5음 음계보다 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순수한 감정을 솔직하고 단순하게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심오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는 5음 음계보다 더 낫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서 많은 서양의 작곡가들이 12음계 음악의 한계점을 느껴 다시 동양적인 5음 음계 음악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나(서양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12음을 가진 서양음악도 결국 동양의 5음 음계와 비슷하던 것을 발전시켜 이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직도 교회 안에서 가장 고귀하고 고유한 전례음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동양의 음계와 비슷한 단선율이라는 특성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 졌음을 감안해 볼 때, 역시 사람의 내면적 감정을 단순하면서도 심오하게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우리의 전통음악이 서양음악보다 우월함을 짐작할 수 있다.

 

 

 

 

2) 노래의 구성 요소 : 가락, 박자, 화성

 

 

 

 서양음악에 있어서, 특히 르네상스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는 노래들은 거의 대부분 틀에 박힌 박자 관념과 엄격한 규칙에 의한 가락, 고정된 대위법이나 화성학의 법칙을 기준으로 하여 화성이 붙여졌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동양의 영향을 받은 그레고리오 성가는    희랍과 히브리 음악의 계통을 이어받은 그레고리오 성가(Greogorian chant; ’단선성가’〔plainchant, plainsong〕라고도 함)는 역시 한 개의 선 뿐인 멜로디로 이루어진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단선율적 짜임새로서 화성과 대위법이라는 제 3의 차원을 모른다. 자유로이 흐르는 그 성악의 선은 라틴어 가사의 억양에 미묘하게 조화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로디에는 규칙적인 액센트를 가진 음악에서 보는 것과 같은 운율적인 시의 리듬이 아니라, 자유시의 리듬이랄까, 음악에 있어서의 산문리듬이라고 할 만한 것을 구현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은 부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노래할 때, 규칙만 안다면 무리 없이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고, 서로간의 협동심을 배우게 하였으며(조화된 화성으로 인해),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공동체 안에 흡수시켜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징은 우리음악과 몇몇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음악의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연음>이라고 말하는 강수근 수사는 "전례분위기를 가장 순수하게 표현해주는 대표적인 교회음악으로 꼽히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법이 우리음악의 선법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며 전통적인 전례음악으로 개발될 수 있는 국악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리 전통음악은 단선율 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의 어느 정도 공통된 관계를 나타내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그 수가 3,000곡이 넘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로디들이 그 전통적인 형태를 갖추기까지에는 여러 세대를 내려오면서 계속 손을 보아온 것이다. 민중의 영적인 생활 깊은 곳에 뿌리박은 작자 미상의 멜로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이 종교적 노래의 보고(寶庫)는 누군가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나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이어진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음정의 넓은 도약에서 오는 흥분이나 강약의 대비를 피한다. 부드럽게 올라가고 내려오는 그 흐름은 일종의 유리된 음악적 언어를 이루고 있는 "가락을 가진 기도"인 것이다. 이러한 규칙적인 악구 구조의 속박을 벗어난 연속적이고 굽이치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가락중심의 동양음악과 유사하다.

 

 

 

 둘째, 그레고리오 성가는 처음에는 구전(口傳)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그러나 성가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가수들에게 각각 다른 멜로디에 대하나 대충의 윤곽을 기억나게 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나타내는 작은 표시를 가사 위에 그려 넣어 멜로디의 방향을 생각나게 하는 네우마(neume)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노래(창, 시조)가 구전으로 이어오는 것과 아주 비슷한 점이 아닐 수 없다.

 

 

 

 가사의 음악을 붙이는 방식에 관한 한, 멜로디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가사의 한 음절마다 한 개의 음이 붙는 ’음절적(syllabic)’인 것과, 한 음절에 두 개에서 네 개의 음이 붙는 ’네우마적(neumatic)인 종류(이것은 원래 기보법으로는 음의 각 그룹이 하나의 네우마로 제시되었었다), 그리고 ’멜리즈마적(melismatic)’이라고 부르는 종류는 <알렐루야(Alleuia)> 성가에서와 같이 한 음절에 대해 길게 연속되는 일단의 음이 붙여지는 경우이다. 이 멜리즈마적 양식은 동양의 열광적인 즉흥연주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두드러진 특색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서양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3) 말(가사)과 곡조의 연결

 

 

 

 지금 행하고 있는 전례 행위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는 가사를 가지고 음악적으로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이 전례음악이기에 말과 곡조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전례음악이든지 곡조에다 말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먼저 가사를 기초로 하여 그 가사가 지니는 뜻과 감정을 곡조로 표현해야만 한다.

 

 

 

 본시 언어란 것이 제각기 고유한 구조, 운율, 음성, 발생학적인 특징들을 지니고 있기에 그들의 말이 잘 드러나도록 작곡된 서양음악을 가사만 우리말로 바꾸어 부른다는 것은 전례음악의 기본 원칙을 도외시하는 처사이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전례음악들은 대부분 외국성가들을 번역한 것들인데 이처럼 외국성가들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를 경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때로는 서양음악의 기법이 요구하는 감정의 처리를 따르다 보면 우리말이 지니는 특성을 살릴 수 없고, 그렇다고 우리말을 살리려다 보면 원곡조의 흐름이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글이 지닌 발성학적 관점에서 높은 음정을 낼 수 없는 부분이 기존 외국성가곡의 높은 음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도저히 따라 부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또한 기존 곡조의 복잡한 박자를 그대로 살려가며 한글가사를 급히 부르다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1-4. 한국 가톨릭 교회 전례음악의 현실과 문제점

 

 

 

 첫째, ’맨 몸으로 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 가톨릭 교회 전례음악의 현실은 열악하다. 수 천명에 달하는 교회 음악가들이 왕성한 창작 활동을 통해 내놓는 성가들을 선별해서 부르고 있는 개신교와 비교해 보면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된다.

 

 

 

 개신교의 경우 전문 음악인에 대해 그들을 전문인으로 대우해 주고 그 활동의 폭을 넓혀 주는데 반해 가톨릭 교회에서는 ’봉사’라는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전례헌장에서도 나타나듯이「음악인들은 그리스도교적 정신에 젖어 교회음악을 장려하고 재보를 늘리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작곡을 하되 참된 전례음악의 특징을 지니고 큰 성가대에서만 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은 성가대에도 알맞고 또한 전체 신자들 의 능동적 참여를 듣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 전례음악의 가사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서와 전례에서 취해야 한다」(112항). 또한 음악인들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112항의 말대로 교회음악이란 하느님을 찬미하여 하느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고 하느님 백성을 상호 일치하도록 이끌고 있는 효과를 내는 거룩한 음악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전례음악의 범위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불렀던 찬미의 노래(마태 26, 30), 초기 교회 사도들과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불렀던 시와 찬송가와 영가(골로 3, 16; 에페 15, 18), 그리고 제 64대 성 그레고리오 교황(540-604)의 노력으로 집대성된 단선율 음악(Monophony Music)인 그레고리오 성가, 중세기 여러 학파의 다성 음악(Polyphony Music), 그리고 2천년 동안 물리어 전해오는 교회 각 지역의 종교적 음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는 물론 성직자, 수도자 까지도 전례음악을 마치 하나의 장식 정도로만 치부해 버리고 있기에 오늘날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전례음악이 열악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심여대 음악과 최병철 교수는 "교회가 누구나 전례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문인에 대한 투자나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전례음악은 아마츄어들의 취미 활동으로 인식되어 점점 퇴보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서울 명동성당 성음악 감독인 백남용 신부는 "척박한 전례음악의 풍토를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기관내의 종교음악과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개신교의 경우 아주 작은 신학대학이라도 종교음악과가 있지만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효성여대 종교음악과가 있다.

 

 

 

 둘째, 한국 가톹릭 교회 전례음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이 바로 본당 성가대다. 전례음악 활성화 및 보급의 첨병인 성가대의 육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교회의 성가대는 그저 여타의 단체와 별다를 바 없는 실정이기에 성가대의 올바른 자리 매김은 그만큼 요원하기만 하다.

 

 

 

 ’성가대 지휘자는 누구나 끼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식의 인식이 성가대원들 사이에서조차 자리잡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성가대의 질적 하향화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가대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서는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성가대 자체내의 의식개혁과 반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목자들의 성가대원들에 대한 전례 교육과  영성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며 성가대원들 스스로도 전례의 봉사자이며 기도자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셋째, 현재 한국 가톨릭 교회에는 서울 대교구 종교음악 연구소, 부산교구 성음악 연구소, 성음악 토착화 연구원, 가톨릭 음악인 협의회, 대구 가톨릭 음악인 협의회 등 교회음악과 관련해 개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는 다수 있지만 이들의 활동 구심점으로써 한국 교회 음악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총체적인 기구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전례음악을 비롯해 국악 미사곡, 일반성가, 생활성가 등이 교회 음악의 토착화라는 거대한 목표아래 어떠한 일관된 흐름이다. 대표적인 예가 본당의 학생미사나 청년미사 등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주제곡이나 민요 등에 가사만 붙여 미사곡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음악의 대중화 및 저변 확대를 위해 복음적인 내용이 실린 생활성가의 경우와는 달리 전례음악은 전례정신, 기법, 흐름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교회음악과 관련된 기구 및 제도의 마련을 위해서는 전례음악의 정신에 관해 연구할 성직자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능력을 충분히 갖춘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회음악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러면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전례음악을 어떻게 토착화해야 할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2. 토착화란?

 

 

 

2-1. 토착화의 개념

 

 

 

 최근에 와서 교회안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 말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복음화하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표현한 말로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또한 ’토착화’(Inculturatio)의 용어가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난 것은 ’현대의 교리 교육’(Catechesi Tradendae)에서 이다. "우리는 교리 교육이나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음 선교나 그것이 일정한 문화나 여러 문화들 한가운데 복음의 능력을 옮겨다 주는 것이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 하여 문화 속에 복음을 확산시켜 문화 그 자체를 그리스도화 하려는 의지를 밝히고, 교육의 방법에 대해서 거론하면서 ’토착화’내지 ’문화순응’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토착화라는 말은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르게 이해되기에 같은 용어를 쓰면서도 말의 뉘앙스가 다르며, 같은 생각을 표현하면서도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교지역인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타종교적 전통(토속신앙)과 문화에 대한 복음의 역할이 문제일 것이지만 유럽에서는 ’토착화’라는 말이 지배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가끔씩 "문화적응, 문화순응, 문화변용, 문화융합" 등의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1) 토착화(土着化)

 

 

 

 우선 우리 한글 사전에서 "토착"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대를 이어가면서 그 지방에서 삶"이라고 나와 있다. 즉 토착화란 어떤 문화 형태가 다른 문화 형태에 대를 이어가며 동화되어 새로운 문화 형태를 이루던가 어떤 기존 문화 형태가 새로운 문화 형태를 맞이하여 자기 문화 형태로 서로 주고 받으면서 소화하여 새로운 문화 형태를 탄생시키는 작업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토착화란 단순히 현재의 문화형태가 과거의 문화 형태로 되돌아감도 아니고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현재로 옮겨옴도 아니라 생각한다. 즉 현실을 무시한 과거 지향적인 토착화도, 과거를 무시한 현실 안주도 바람직한 토착화 작업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 용어가 서구어를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자생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우리 나라에서 신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때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감안할 때 서구어의 번역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토착화의 교회적 개념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에 의하면 "토착화란 그리스도의 신앙의 핵심이 되는 예수의 육화에 기초를 둔 것으로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을 때 그의 시대와 문화와 역사적 상황 안에서 복음을 구체화 시켰음과 같이 그의 지체인 교회도 각기의 시대와 문화와 역사적 상황 안에서 복음을 구체화 시켜야 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2) 문화 융합(Acculturatio)

 

 

 

 이 용어는 미국의 인류학자들이 19C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그들 사이에 계속적인 접촉은 다른 그룹의 문화적 요소들을 취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문화들의 접촉과 상호작용, 그리고 그 결과를 일컬어 문화융합이라 한다.

 

 

 

 신학에서는 이 용어를 선택하는 데는 몇가지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교회와 주어진 문화 사이의 관계는 문화들 사이의 접촉과 같은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 사명과 본질에 따라 인류 문화의 어떤 특수 형태나 어떤 특정 정치, 경제, 사회 체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리고 교회가 문화와 접촉하여 꾀하는 것은 복음을 사회와 문화 깊숙히 침투시켜 교회가 주어진 문화, 사회의 한 부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신비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기 위해, 그리스도 자신이 당신의 수육(受肉)으로 말미암아 같이 살으신 동향 사람들의 특정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당신을 적합시키신 것과 같이 교회도 그런 열정으로 이런 모든 사회안에 자기를 침투시켜 가야 한다." 따라서 이 용어는 적절하지 못하다.

 

 

 

 

3) 토착 문화화(Indigenisatio)

 

 

 

 토착 문화에 강조점을 둔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느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요소 혹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고자 하며 때로는 그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적 계시의 하느님이 초기부터 현존하고 역사 하셨음을 의식하도록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이미 그 지역의 전통 종교 안에 현존하고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4) 문화 적응(Inculturatio)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지역교회가 문화에 자신의 경험을 침투시켜 문화적 요소로 자신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 문화에 복음의 정신을 불어넣고, 방향을 제시하며, 혁신시키는 힘이 되어 교회와 문화를 함께 성장케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말은 문화 순응과 구별된다. 문화 순응이란 개인이 어떤 문화를 갖고 있지 않다가 문화에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문화 적응은 개인이 순응해 가는 과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교회가 하는 것이다. 또한 문화 융합과도 구별되는데 문화융합의 경우 주체가 되는 문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교환적이지만 문화 적응의 경우에는 복음이 주체가 되어 어떤 문화에 삽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5) 상황화(Contextualisatio)

 

 

 

 "토착 문화화"라는 용어와 그 내용이 너무 과거 지향적이고 너무 문화적인 면에 치우쳐 있어 현대 사회를 복음화 하는데 있어서 부적당하다고 보고 "상황화"를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현실을 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나타내며 현실 적응의 취지와 나아가서는 현실 개혁의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2-2. 토착화의 문제점

 

 

 

1) 토착화의 정도는?

 

 

 

 이 문제에는, 그리스도께서 어느 정도로 인간이 되셨는가? 또는 그리스도께서 어느 정도로 돌아가셨는가?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뜻이 들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인간이 되신 것과 같이 한국 교회도 온전히 한국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파면적이었던 것과 같이 교회의 한국 문화와의 동일화도 전면적이라야 한다. 따라서 토착화를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적인 것 사이에 어떤 「균형」을 잡는 과정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를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평균」으로 보아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2) 토착화는 그리스도화인가, 한국화인가?

 

 

 

  한 때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란 말이 많이 쓰이다가 최근에는 그리스도교의 한국적 ’육화’(肉化)란 말도 쓰이고 있다. 육화의 주체를 간명히 표현하는 것으로 최근 우리신학연구소와우리사상연구소가 쓰는 ’그리스도교의 한국화’라는 말도 있다.

 

 

 

 토착화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지역 문화를 중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지역 문화란 전통 문화나 관광 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전통적인 가치와 염원이 스며 있는 현대 문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100퍼센트 토착화된 한국 교회는 100퍼센트 그리스도교 적이고, 100퍼센트 한국적이며, 100퍼센트 현대화된 교회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토착화는 한국의 옛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라든지, 한국 교회를 한국화하는 것이라든지, 그 무엇보다도 전례의 가시적인 측면을 적용하는 것이라는 등의 토착화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잘못된 개념은 고쳐져야 할 것이다. 바로 토착화는 하느님과 진실한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을 열의를 다해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토착화를 시도해야지, 그런 체험이 없이 토착화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값싼 속임수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 다음에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며 또 돌아가시지도 않고 부활하실 수 없었던 것처럼 먼저 그리스도교화 되고 난 후에 토착화에 노력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한국의 그리스도교화는 교회가 먼저 한국화하는 거기까지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완전히 한국화되어야만 비로소 그리스도교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이며 순례 도상에 있는 교회가 완전한 토착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교의 한국화는 그리스도교를 한국 전통 문화 안에 몰입시킨다든가, 또는 한국 전통 문화를 그리스도교 안에 몰입시키고 끝내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 진리의 보편성과 한국 민족문화의 특성이 서로 만나서 서로를 풍요케하는 데에 ’그리스도교의 한국화’가 지니는 목적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전례음악들은 거의 대부분 외래음악의 요소들이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작품 속에 투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개 외래음악의 수용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외래음악의 도입이 곧 외래음악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래음악의 수용이라는 것은 도입된 외래음악을 우리 음악의 틀 속에 용해시켜 우리음악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마찰을 피할 수 없었지만 현재교회에서는 전통적인 문화정신에 대한 재발견과 이를 복음정신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 국악미사곡이 속출하고 있는 경향이다. 한국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들이지만 한가지 염려가 되는 것은 과연 이런 국악미사곡들이 얼마나 외래음악과 적절한 하모니를 이룰지 의문이다. 자칫 무조건 한국화 한다고 해서 서로 맞지 않는 선율에다 텍스트를 짜집기 식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렇게 완성된 미사곡은 어느 분의 말을 들어서 이야기하자면 갓 쓰고 양복 입은 우스운 모습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례음악을 어떻게 한국화 할 것인가? 예를 들면 우리 전통음악과 비슷한 단선율을 가진 그레고리오 성가의 8선법을 사용하여 우리의 전통음악과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화"란 따라서 달라진 세계 속에서 변화의 추세에 끌려 다니며 변화의 객체로서 살지 말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 변화의 주체로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외래음악은 우리음악의 틀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우리음악의 틀에 맞추어 이리저리 변화된 다음 우리음악의 한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때 그것은 우리음악 속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가 없다. 따라서 토착화와 그리스도교화는 손을 맞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3) 토착화의 나아갈 점

 

 

 

 토착화가 단지 복음을 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거나 토착화의 가치를 모름지기 교회의 건설이라는 그 결과에서만 연유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강생이 단지 구속의 수단에 불과하다거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각기 그 의미와 가치가 그분의 부활에서만 유래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각기 그 의미와 가치에 있어서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강생도 그 고유한 가치를 지닌 채로 구속에 대해 그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점점 더 한국화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교회가 점점 더 그리스도교화 하는 것이요, 교회가 점점 더 자신의 본질을 인식, 실현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교회가 점점 더 진정한 의미의 교회자신, 곧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가는 것이다.

 

 

 

3. 전례음악의 토착화

 

 

 

3-1. 전례음악의 토착화에 대하여

 

 

 

 전례(典禮)와 성무(聖務)에 있어서 전례음악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크다. 과거의 전례음악에서는 기도적인 참여보다 동적인데 치중하면서 우리 나라에 짧은 가톨릭 교회사 속에 이단시나, 혹은 서양의 가톨릭적인 것이었던 것에서 보다 더 우리의 가톨릭적인 것, 이것이 곧 토착화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문제는 언어 습성, 풍습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보다 빨리 앞당겨 줄 것이다. 전례음악의 토착화는 과연 무엇인가?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민속적인 것이 토착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또한 누구나 즐겨 노래한다고 해서 토착화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또 그럴 수 있다는 결론도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시작을 도모하며, 이 시작이 중요하며 우리의 전례음악을 찾아 토착화를 촉진시켜야 하겠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전례음악이 지니는 최후의 보루는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전통성에 살아온 모든 음악이며, 이 전통음악 속에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며 우리의 전례음악의 토착화는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한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그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교회는 전례음악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아직 재즈도 비틀즈도 12음 음악도 정면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그 상태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토착화해야 한다. 그러면 오늘부터다"라는 식의 방식은 금물이다. 한국에 전례음악을 토착화한다고들 떠들지만, 한국에 서양음악이 들어오기 이전 한국이 토착화하는 것인지, 서양음악의 물을 상당히 먹은 오늘의 한국에 토착화하는 것인지도 아직 결정을 못본게 사실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우리 나라에서도 토착화를 가장 강력하게 정열적으로 일선에 나서서 부르짖는 사람은 한국 사람보다도 외국인이란 사실이 우리를 무척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서양음악에 있어서 단선율에서 3화음까지 수세기 걸렸고 3화음에서 7화음까지 2-3세기 걸렸듯이 우리 나라의 전례음악 토착화도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너무 서두르거나 무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3-2. 그레고리오 성가의 토착화 가능성

 

 

 

 각각의 종교마다 고유한 전례 의식 음악이 함께 공존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범패와 제례 음악은 그 기원이 한국에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토속 신앙과 함께 깊게 뿌리를 내렸으며 각각 그 고유한 종교 의식 문화를 보존해 왔다. 그리고 개신교의 코랄은 16세기 종교개혁시 마르틴 루터에로 근원하는데 초기의 코랄 형태를 보면 첫째, 가톨릭의 전례음악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도 향토어(독일어)를 붙여 라틴어를 대신했으며 둘째, 그 당시 독일의 민요나 세속음악의 가사와 선율을 활용하여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를 편곡했고 셋째, 마르틴 루터의 신작(新作)이 포함된다. 이러한 요소를 중심으로 18세기 J. S. 바하(1685-1750)에 의하여 완성된 코랄을 이룩하였다. 이렇게 하여 전세계 개신교 전례에서 큰 발전을 거듭해 온 코랄은 한국 기독교 안에서도 그 두각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코랄 형성 과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느 조항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토착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초기 코랄 성격은 중세 8선법의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에 기반을 두고 편곡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개신교 예배는 복음에서 중요성을 두며 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가톨릭 미사 전례는 성사(聖事)로서 내적 변화(그리스도의 살과 피로의 변화)에 그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사제의 경문과 노래는 그 목적과 지향이 명확하여야 됨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만일 사제가 다른 목적과 지향을 두고 거양성체의 기도문 내용을 바꾸었을 경우를 가정하면서 또한 전례를 반주하는 노래 선율이 다른 종파의 신앙(무속곡 범패)의 테마를 노래했을 때에는 아마도 놀라운 부조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미사의 염경 기도문이나 노래 가락이 변형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즉 거양성체 기도문은 각국 나라말로 낭송된다거나 외국어 발음에서 오는 본의 아닌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예컨데 동양인의 발음으로 ’그리스도’가 ’그리도’로 ’호수 천신’이 ’헌신 천신’으로 등등 ….

 

 

 

 이와 같이 전례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동양인에게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는 선율동기 하나 하나가 기도를 호소하는 즉 천상적 신비 요소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례음악을 다소 동양적으로 개작(改作)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새로운 창작을 시도한 경우에는 미사 전례의 목적과 지향을 앞세우고 또한 수천년 전통으로 이미 미사 전례음악으로 지정되었던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이 실려진 중세 교회 8선법의 활용이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서양음악 사상 가장 최초의 음악의 씨를 싹 틔우고 길러 온 세상에 피웠던 그레고리오 성가를 토착화라는 물결에 밀리어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있어서 그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현명한 관찰과 대책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뜻에서 가톨릭 전례음악 그레고리오 성가의 토착화에 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어느 사제의 토착화에 관한 강의 내용 중에서 몇 가지 조항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는 곧 토착화의 일면을 나타낸다" "토착화는 복음화의 일부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전례의 측면에서 토착화란 전례와 음악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본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박혀지는 성화의 현상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전(祭典)에는 제관(사제)과 혹은 무당이 따르게 되고 제의(祭衣), 제구(祭具) 등의 외적인 즉 어느 부분은 변화 가능한 요인이 동반되는 반면 초자연적 사항, 다시 말하면 미사 전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변화는 물론이거니와 전례 집전 사제와 신자의 내적 기도 그리고 이 모두를 반추하고 신앙의 결정에로 승화시키는 전례음악 또한 토착화의 면에서 초자연적 위치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가톨릭 교회의 전례 사상 최초의 토착화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339경-297)에 의하여 시도되었다고 본다. 그는 처음으로 동방 전례의 시편 창법을 받아들여 밀라노 교구 전례 음악으로 활성화시켰다. 이것은 점차 각 지방의 특성에 따라 다소 그 형태가 변모되어 불란서, 스페인, 로마 등으로 토착화되어 전파되었다.

 

 

 

 또한 그는 중세 교회 8선법의 모체가 된 4선법을 개발하여 가톨릭 전례음악의 창작에 전념하였는데 이 음악을 암브로시안 성가(Ambrosian chant)라 부른다. 암브로시안 성가의 성격은 첫째 대중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시문학(詩文學)과의 관련된 요인으로 선율에 있어서 음철(音綴)에 의한 악센트의 활용, 둘째 시(詩)의 운율(韻律) 구조에 따른 리듬, 그리고 전음계(全音階) 사용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 후에 음악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즉 암브로시안 성가를 통하여 고전 시음악과의 접근이 가능하며 산문시적인 요소는 대중 음악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의 리듬 형성과 8선법에 기초가 되었다.

 

 

 

 가톨릭 고유문화이며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성을 영구 보존하면서 한편 실천 가능한 토착화의 방법이 탐구되어야 한다. 따라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전통음악을 보급하는 과도기적 노력의 일환으로 각 교구마다 연구기관을 두며 실험실습본당을 지정하여 여기서 일정기간 시행해본 후 전국적 보급을 하도록 해야겠다.

 

 

 

 둘째, 앞의 ’토착화는 그리스도화인가, 한국화인가?’라는 항목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미 기성 작곡가들의 관심사로 시도되고 있는 중세 교회 선법과 동양 음계와의 유사성을 모색하여 창작되는 전례음악의 출현이 적극 추진되었으면 한다. 단 다양한 전례음악 작곡을 장려하되 심의보급은 일원화해야 한다.

 

 

 

 셋째, 중세 초기부터 가톨릭 교회의 전통이 되었던 스콜라 칸토룸(그 당시 교회 전례음악을 전담 연구하여 음악가를 양성하는 일종의 음악 대학)제도를 부활시켜 신학대학 내에 교회음악과를 설치하거나 가톨릭 음악 대학을 설립하는 일에 적극적인 성원이 절실하다.

 

 

 

 넷째, 중세 음악사에서 권위 있는 음악 학자나 작곡가는 거의 성직자나 수도자였다. 그러나 그 외에 교회 안에서 전례음악에 공헌했던 많은 평신도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초기에 올라갈수록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 전례음악과 전례 연관성에 대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음악 학자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 전례음악과 발전을 위해 가톨릭 음악인들의 사려 깊은 관심과 연구가 요구되는 동시에 가톨릭 고위 지도층은 깊은 애정과 보호 안에 음악인들을 감싸고 성원이 절실히 요청된다.

 

 

 

3-3. 한국 전통음악에 관한 전례 속의 토착화

 

 

 

 전례음악의 토착화는 곧 우리 옛 음악에로의 복귀이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옛 음악인으로 복귀 형태는 하나의 좋은 시도로써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분명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옛 것이 절대로 우리의 지금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작곡가들이 오늘도 우리 옛 음악의 소재들을 이용해서 여러 악기에 좋은 음악을 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옛 것과 지금 것의 만남의 장을 찾으려고 하는 선에서 전례음악의 토착화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전통음악은 여러 갈래들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정작 전례음악의 부류에 넣어 줄 수 있는 것은 의식음악에 국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음악의 소재보다는 주로 놀이음악이라 할 수 있는 민속음악의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때때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마찰을 피할 수 없었지만 현대교회에서는 전통적인 문화정신에 대한 재발견과 이를 복음 정신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의식음악이 유교나 불교 또는 무속 신앙의 음악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종교 심성을 바탕으로 연주되던 음악이라면 다른 어느 음악보다도 더 연구되고 공통 요소 발견의 가능성을 거기서 얻어내려고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리 옛 전통 요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는 오랫동안 제단 위에 바쳐져 온 음악이고, 우리 전통음악은 앞으로 제단 위에 바쳐져야 할 음악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제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전례음악 토착화 과정에서 그레고리오 성가 그 자체에서 크게 영향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어도 된다. 그보다 제단에서 이루어지는 사건 즉 전례를 잘 아는 것이 제일 첫 과제이다.

 

 

 

 전례가 어떤 음악적 요구를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엔 그레고리오 성가를 비롯한 다른 서양 음악들이 어떻게 그 요구를 채워 주었는가를 살펴보면, 우리 전통음악은 그 응답을 어떻게 하는 길이 있는가를 찾는 데 쉬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작곡 기법보다 어떠한 종교적 신심(信心)이 어떤 음악적 분위기로 표현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즉 남의 경험을 내 앞길의 참고로 삼자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례음악 토착화를 위해서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비롯한 성음악에도 풍부한 식견을 갖추어야 하겠다. 그러므로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기존 성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성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의 전통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은 서로를 존중하게 하고 이해와 협력의 폭을 넓힐 것이다. 이 사랑이 미래의 우리 토착화된 성음악을 잉태하여 줄 것이다.

 

 

 

3-4. 토착화 작업의 현실적 문제

 

 

 

 전례 행위 때에 불려지는 노래는 각 시대나 민족의 특성에 따라 그 형식이 서로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내용이 되는 가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야 한다. 사람마다 그리고 민족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각 다르다. 그리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방법도 역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내용을 담은 노래라고 해서 무조건 다 전례에 도입시켜 부를 수 없다. 전례용 성가는 일반 종교적인 음악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즉 전례음악은 전례에서 행해지는 내용과 부합되는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전례문 자체나 전례문에 결부된 가사에다 곡을 붙여 만들어야 하며, 이러한 음악을 잘 선택하여 전례 때에 불러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가 지니고 있는 고귀한 내용을 어떻게 한국인에게 알맞는 표현 방법과 잘 융합시킬 수 있으며, 또한 이렇게 잘 표현된(토착화된) 전례음악을 통해 우리 민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하게 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길로 인도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실제적인 과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음악적 느낌이나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 왜냐하면 토착화라고 해서 무조건 옛날의 고유(전통)음악만을 이용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국악"이라고 불리는 전통적 음악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느낌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어려서부터 계속 서양 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국악보다는 서양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었으며, 어쩌다 라디오나 텔레비젼에서 국악 연주가 나오면 듣거나 보기를 중단해 버릴 정도로 국악과는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제 와서 무조건 외국의 음악을 무시하고 우리의 전통음악만을 내세운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무리한 처사가 될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떠난 토착화 작업이라면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기에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연구와 비판을 통해 무엇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물론 외국의 음악 형식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 외국의 노래가 이 땅에 들어와서 우리 민족의 심성에 알맞은 적응을 했는지 그리고 이런 종류의 수입된 음악을 부르거나 들으면서 우리 민족이 참으로 정서적 만족을 느끼고 있는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외국의 음악이 우리 자신을 얼마나 변화시켜 놓았는지, 그리고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한국적인 요소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가집 출판 과정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성가집들이 나왔지만, 그 대부분이 외국의 성가들을 번역하여 출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 신자들은 근 100여년 동안에 걸쳐서 계속 우리의 것이 아닌 성가들을 부르면서 신앙을 표현했고 전례 행위에 참석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신자들은 외국 성가에 익숙해졌고 적어도 성당에서만은 외국의 성가를 부르면서 종교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다분히 서구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다. 현재 유행하는 것, 과거의 음악, 춤을 목적으로 한 무곡(舞曲), 예술 가곡, 대중 음악, 행진곡, 농악, 무악 등등. 이상의 여러 가지 음악들이 전례음악이 지니고 있어야 할 세 가지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전례헌장, 112항, 119항) 얼마든지 전례음악에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상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상호 일치만 이루어지면서 하느님 백성의 성화 목적이 결여되어서도 안되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만 되고 하느님 백성의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훌륭한 전례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 우리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팝송 같은 것도 젊은이들의 상호 일치를 이루는 데에는 좋을 것이나 전례 음악이 요구하는 하느님 백성의 성화와 하느님 백성의 상호 일치에 필요한 성스러움이 결여되었을 때에는 전례음악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진정한 토착화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지금까지의 결과나 현실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항상 미래를 지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온 교회가 힘과 예지를 한데 모으고, 앞을 내다보는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어야 하겠다. 또한 전례는 우리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핵심을 이루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를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종교음악연구소의 차인현 신부도 전례헌장 112항에 나와 있는 바처럼 전례 안에서 전례성가는 필요하고도 불가결한 구성 요소임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전례음악는 누구 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며, 전례음악의 토착화 작업은 더욱 그러하다. 이 문제를 취급할 전문기구가 설치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공의회는 이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전문학교 설치를 권장(전례헌장 115항)한 바 있다고 종교음악원 건립취지문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야, 참으로 우리 민족의 심성에 맞는 전례음악이 정립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 전례음악에 대한 토착화의 구체적 방향

 

 

 

 토착화란 단순히 현재의 문화 형태가 과거의 문화 형태로 되돌아감도 아니고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현재로 옮겨옴도 아니다. 즉 현실을 무시한 과거 지향적인 토착화도, 과거를 무시란 현실 안주로 바람직한 토착화 작업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 안팎으로 다분히 서구화된 한국인의 음악적 감각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역사의 유산을 가미시키고 한국인의 정서적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앞으로 전례음악을 토착화하는 작업에 있어서 특별히 감안해야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4-1. 공감대를 형성하는 전례음악

 

 

 

 첫째, 전례음악이란 무엇이고 그 음악이 내포해야 하는 요소(Contenuto)가 무엇인지, 어떤 요소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양보할 수 있고, 또 전례음악이기 때문에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신자들은 그 개념을 정립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한국 교회이지만 전세계의 로마 가톨릭에 속하기 때문에 다양성 안에 일치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세계 로마 가톨릭과 다르면서도 같은 그 무엇은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는 모든 전례 행위에 있어서 변할 수 없는 신적 요소(전례헌장 21항)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둘째,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음악적 유산을 연구, 검토, 정리하여 한국인이면 누구나 같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한국적인 음악의 형태를 우선 정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 민족이 끈질기게 간직하고 있는 요소가 무엇이며 또 어떤 형태의 음악을 좋아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그것을 토대로 삼아 전례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음악의 물결속에서 아직까지도 살아남은 우리의 전통음악의 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겠다. 이런 뜻에서 ’국악’이라는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토착화를 하려면 우리의 음악이 토착화를 할 수 있도록 공통되게 우리 모두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겠다.

 

 

 

 

4-2.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위한 교회의 구체적 노력들

 

 

 

 오늘날 한국 가톨릭 교회에 있어 전례음악이 침체되어 있는 이유로는 첫째, 한국 가톨릭 교회에 전승되어 오고 있는 전례의 형태에 그 원인이 있다. 즉, 개신교의 경우 찬송가가 예배 성립의 기본조건인데 비해 가톨릭 교회에서는 경문 읽기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음악에 소양이 있는 일반신자의 협동심 부족이다.

 

 

 

 이처럼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전례음악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위하여는 타 분야 내지 주위 환경과의 상호 융합과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과 미술, 조각, 건축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이 울려퍼지는 고딕식 성당에서 우리 전통악기인 거문고와 가야금이 어울릴지? 성당 내부는 온통 서양식 그림, 조각들이 있는 곳에서 도자기 성작과 도포와 제사식 전례가 얼마나 어울리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전례와 관계되는 분야간에 보조를 맞추면서 협력해야 하겠다.

 

 

 

 둘째, 이제와서 서양음악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이 어려서부터 영향을 받아왔고 또 지금도 즐기고 있는 서양음악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역시 요구된다. 비록 그 역사는 길지 않다고 해도 서양음악이 이 땅에 들어와서 한국인의 음악적 감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서양의 음악기법을 통해서도 우리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례음악에 있어서는 우리가 계속 불러온 노래가 거의 다 서구의 노래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례의 분위기를 꾸며준 서양음악들을 계속 이용하는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만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널리 알려진 서양음악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전례음악의 중요내용이 되는 가사를 붙일 때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해서 우리말이 무리없이 잘 표현되도록 재정리함으로써 가사가 지니고 있는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유의해야 한다.

 

 

 

 셋째, 교회 당국의 합창음악에 대한 인식과 신자 개창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넷째, 유능한 지도자의 발굴이다. ’합창지도’란 하나의 음악 기술이기 때문에 신자들 중에서 전문 음악가를 찾아내거나 강습을 통해 육성해야 한다.

 

 

 

 다섯째, 일정한 예산의 뒷받침이다. 성가대를 조직적인 체제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예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제대로 갖추어져야만 전례음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미흡하게나마 전례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고찰을 해보았다. 한 마디로 토착화는 하루아침에 실현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여러 세기를 걸쳐서 그 효력이 지속될 수 있는 완벽한 토착화 작업도 불가능하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표현방식이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우리의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사상이나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토착화를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지 모르겠다. 특히 서구의 전례 의식을 따라야 하는 처지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의 심성이나 종교 감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전례 의식을 만들어 정착시킬 수 있느냐 하는 과제를 놓고 진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며, 더 나아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대명제를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전례음악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너무나 부끄러운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며,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전례 행위는 개인적인 기도나 행동이 아니고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교회의 공동체의 행위이다. 그리고 전례음악은 전례 행위와 밀접히 결합하면 결합할수록 더욱 거룩해질 것이며, 전례의 겸손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전례헌장의 표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전례음악은 전례의 고유 기능을 살려서 모든 신자들이 제반 제례 의식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완전히 참여하도록 하고, 소리의 일치로 공동체성을 더욱 깊이 이룰 때 그 역할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전례음악은 신자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종교적 대중성을 띠어야 하며, 우리 민족의 종교적 심성에 적합한 전례음악들이 부단히 창작되고 보급되도록 전문적인 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명백한 이러한 사실들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노력이 너무나도 미약한 실정이다. 또한 본당 공동체의 전례 행위를 이끌어나가는 성직자들이 전례에 임하는 자세에도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적인 전례"를 더욱 풍부하게 하며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전례위원회의 활동이 강화되고 특히 전례음악의 토착화 내지 현재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한국 천주교회의 핵을 이루고 있는 본당 신자 공동체 안에서부터 전례 행위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 같다.

 

 

 

 

 

 

 

 

                              §참고 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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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6, 12).

 

 

 

·김종수, 「민족음악의 이해」(서울: 민족음악 연구회, 한올, 1992).

 

 

 

·H. M. Miller, (The History of Music), (대학음악 저작회 편역, 삼호출판사, 1989, 7,       2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사도적 권고, "현대의 교리 교육"(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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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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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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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호(1975, 겨울).

 

·이홍기, "전례의 토착화"「신학 전망」, 제47호(1979,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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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구, "전례의 토착화", 「사목」, 제114호(198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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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61호(1973. 4).

 

 

 

·이문근,  "교회음악의 소위 토착화에 대하여", 「경향잡지」,제1261호(197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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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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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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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수, "전례성가 토착화 구심점 역할"(종교음악원 건립에 즈음하여),「평화신문」

 

 

 

                                                                       (1991.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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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국악의 해/교회음악 토착화를 위한 제언", 「가톨릭신문」, (1994. 3. 20).

 

 

 

 

 

 

                  §기타§

 

 

 

 

<잡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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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현, "체계적인 연구가 따라야", 「경향잡지」, (1980, 12월호).

 

 

 

 

 

 

 

·신군성, "한소리로 찬미를", 「경향잡지」, (1980,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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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國樂협회 창립", 「가톨릭신문」,(1986, 7, 20).

 

 

 

 

 

 

 

·"聖음악 발표회가져", 「가톨릭신문」,(1986,7, 27).

 

 

 

 

 

 

 

·"파리 그레고리안성가대 來韓", 「가톨릭신문」,(1986, 8, 17).

 

 

 

 

 

 

 

·"每미사마다 고유성가대", 「가톨릭신문」,(1986, 8, 24).

 

 

 

 

 

 

 

·"우리歌謠 알고 사랑하자", 「가톨릭신문」,(1986, 8, 31).

 

 

 

 

 

 

 

·"典禮音樂의 진수보여줘", 「가톨릭신문」,(1986, 9, 14).

 

 

 

 

 

 

 

·"전통 聖음악 이해 절실", 「가톨릭신문」,(1986, 9, 21).

 

 

 

 

 

 

 

·"그레고리안 성가단 내한공연", 「가톨릭신문」,(1986, 9, 23).

 

 

 

 

 

 

 

·"미사 전례를 우리가락으로", 「가톨릭신문」,(1986, 9, 28).

 

 

 

 

 

 

 

·차인현, "프랑스 교회음악과 성가 수용과정", 「가톨릭신문」,(1986, 10, 5).

 

 

 

 

 

 

 

·이문자, "文化産室로 발돋움하는 명동성당", 「가톨릭신문」,(1986, 10, 12).

 

 

 

 

 

 

 

·노광선, "韓國式 토착화미사 봉헌", 「가톨릭신문」,(1986, 11, 2).

 

 

 

 

 

 

 

·노광선, "무지카샤크라 소년 합창단", 「가톨릭신문」,(1986, 11, 9).

 

 

 

 

 

 

 

·"우리말 캐롤 많이 나와야", 「가톨릭신문」,(1986, 11, 30).

 

 

 

 

 

 

 

·"빠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순회공연 ; 노래통해 인류는 하나",

 

 

 

                                                       「가톨릭신문」,(1986, 11, 30).

 

 

 

·蓮, "김성순씨 복음성가테이프 취입 ; 노래통해 복음전한다",

 

 

 

                                                       「가톨릭신문」,(1986, 12, 21).

 

 

 

·노광선, "평신도가 전례음악전문 서적 펴내", 「가톨릭신문」,(1987, 3, 8).

 

 

 

 

 

 

 

·김영조, "점차 확산되는 생활성가", 「가톨릭신문」,(1987, 3, 15).

 

 

 

 

 

 

 

·가톨릭대학보(음악부), "알마음악제를 준비하며", (1987, 5, 27).

 

 

 

 

 

 

 

·"창단49주 명동합창단 ; 聖음악 보급의 기수자리 굳혀", 「가톨릭신문」,(1987, 6, 7).

 

 

 

 

 

 

 

·"무지카사크라 창단 연주회", 「가톨릭신문」,(1987, 6, 21).

 

 

 

 

 

 

 

·連, "성가대 활성화에 공헌", 「가톨릭신문」,(1987,6, 28).

 

 

 

 

 

 

 

·최창우, "전례음악토착화 연구할터", 「가톨릭신문」,(1987, 7, 19).

 

 

 

 

 

 

 

·盧, "성가보급에 앞장서는 복음성가 연구실", 「가톨릭신문」,(1987, 7, 19).

 

 

 

 

 

 

 

·이미연, "聖音樂통해 복음화에 이바지", 「가톨릭신문」,(1987, 9, 13).

 

 

 

·"大邱 종교음악연구소 개설 ; 전례음악 연구·보급", 「가톨릭신문」,(1987, 9, 13).

 

 

 

 

 

 

 

·須, "7년 동안 새벽미사 聖歌전담", 「가톨릭신문」,(1987, 9, 27).

 

 

 

 

 

 

 

·가톨릭대학보, "전례음악과 찬송생활", (1987, 10, 21).

 

 

 

 

 

 

 

·차인현, "전례음악 專門교육기관 절실", 「가톨릭신문」,(1987, 10, 25).

 

 

 

 

 

 

 

·김건정, "전례음악 활성화 시급하다", 「가톨릭신문」,(1987, 12, 6).

 

 

 

 

 

 

 

·"아름다운 선율로 미사봉헌", 「가톨릭신문」,(1988, 1, 10).

 

 

 

 

 

 

 

·娼, "종교음악 확산에 첫결실" 「가톨릭신문」,(1988, 7, 10).

 

 

 

 

 

 

 

·최창우, "우리가락으로 하느님 찬미", 「가톨릭신문」,(1988,, 7, 17).

 

 

 

 

 

 

 

·"국악도입으로 토착화 시도", 「가톨릭신문」,(1988, 8, 7).

 

 

 

 

 

 

 

·손상오, "전통가락의 우수성 보여준 국악미사", 「가톨릭신문」,(1988, 8, 28).

 

 

 

 

 

 

 

·이연술, "우리가락에 담은 미사곡 선보여", 「가톨릭신문」,(1988, 8, 28).

 

 

 

 

 

 

 

·윤민구 "교회음악에 던진 신선한 충격", 「가톨릭신문」,(1988, 9, 18).

 

 

 

 

 

 

 

·"격조높은 성가의 토착화", 「평화신문」, (1990, 1, 28-2, 3).

 

 

 

 

 

 

 

·"서울 중림동성당에 宗敎 音樂院 건립", 「평화신문」, (1991, 3, 3).

 

 

 

 

 

 

 

·문혜경, "그레고리안聖歌 보급에 앞장", 「평화신문」, (1991,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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