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무엇을 향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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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venivediveci] 쪽지 캡슐

2000-02-21 ㅣ No.1860

 

부단히 거부해왔다.

갇힌다는 것, 타협한다는 것, 철들어 간다는 것, 현실에 적응하는 것,

세상을 모른 나에게

이 모두가 무엇을 향한 그토록의 열정만을 부어준 채..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이제 마냥 웃을 수 없는 건

그 어린 시절 꿈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나라는 어둠의 방을 뚫고 세상을 보고 싶었지만

세상은 더욱 더 깊은 흑암에 지워져있었다

올라갈수록 세상이 보일 거라 생각했지만

세상의 참모습은 낮아져야만 보였다

남은 건 냉소 우울 그리고 열정

 

마음 가득 남은 우울과 열정은 실은 하나인지 모른다

우울이 차가운 열정이든가 열정이 뜨거운 우울이든가..

 

스물을 넘긴 어느 해

온 방을 뒹굴며 괴성의 비를 뿜어야 했다

’비참’의 뜻을 새롭게 새기며

나는 이십년 전 이 땅을 밟음으로써 처음으로 죽은 후 다시 한번 죽어 있었다

 

외로움의 황홀함을 가슴 깊이 끌어안고

매일을 나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밤을 지샜다

 

"인간이란 늘 서로 속이고 사기치고 배신하며 배은망덕하며 무지하고 허약하고 변덕스럽고 비겁하고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고 술주정하고 인색하며 잔혹하고 야망에 굶주리고 모략하고 타락하고 위선적이고 바보스러웠다고 믿는단 말입니까?"

 

볼테르가 낳은 순박이 ’캉디드’의 외침은

이미 염산으로 푹 절인 듯이 너덜너덜대는 썩어빠진 나의 골수를 다시금 찔렀었다

 

낙관주의(l’optimisme)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던가..

"오! 인간이 불행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으로 이루어졌다고 고집하는 일종의 광기라네!"

 

 

무엇을 향한 열정?

무엇을 바라는 갈망, 몸부림?

 

누가 무지개를 일곱빛이라고 아이들에게 속여 가르치는가?

 

오늘도 무슨 열정이 남아있다고

나는 여전히 저 무지개의 색을 새고 있는지..

무엇을 향한 갈망을 품고 아직도

무지개는 절대로 일곱색이 아니라고, 그건 뉴턴의 실수였다고 말하며

미쳐가고 있는지..

 

빨강,

그 옆에 아주 조금 다홍색에 가까운 빨강,

그 옆에 그보다 조금 더 다홍색에 가까운 빨강,

그 옆에 그보다 아주 조금 더 다홍색에 가까운 빨강,

그 옆에 그보다 아주 그리고 매우 조금 더 다홍색에 가까운 빨강,

...

 

무지개 편집증에 걸린 채,

미치지 않고는 발견할 수 없는 내 안의 캉디드를 찾아

사무치는 이 길..   포기하지 않는 이 길..

미쳐간다...

 

이 모든 마음을 숨길만큼 나는 강하지 못하다

매일의 나의 가식과 위선에 움츠러들 뿐

 

 

외로움의 폭력

 

                          최승자

 

내 뒤에서 누군가 슬픔의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하고 있다.

                  

요즈음의 꿈은 예감으로 젖어 있다.

무서운 원색의 화면.

그 배경에 내리는 비

그 배후에 내리는 비.

죽음으로도 끌 수 없는

고독의 핏물은 흘러내려

언제나 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인다.

 

물러서라!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을 길목에서

녹슨 내 외로움의 총구는

끝끝내 나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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