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성당 게시판

천 마리 학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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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blue1004] 쪽지 캡슐

2000-07-25 ㅣ No.2116

 어느 통신망 게시판에서 읽었는데 정말 멋있어서 퍼올립니다...

약간 글이 길어서 모뎀을 사용하시는 분이나 겜방에서 하시는 분은 글을 갈무리해서 보세요...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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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아니, 이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유치원에 갓 들어간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바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동해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였습니다.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 안으로 들어 갑니다.

카페 주인인 듯한 털보 아저씨가 다가 오자 가벼운 미소로 커피

 한 잔과 코코아 한 잔을 주문합니다.

"엄마?" 아이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엄마를 부릅니다.

아이의 목소리에 이끌려 여인의 두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이고 있었습니다.

"엄마, 또 울어? 바보같이."

".....?"

"엄만 참 이상해. 바다만 바라보면 왜 바보처럼 맨날맨날

눈물 흘리는 거야?"

"그냥,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러는 거야."

"피이, 거짓말. 사실은 아빠 생각나서 그러는 거지?"

".....?"

여인은 아이의 질문에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합니다.

 주문한 커피와 코코이가 나옵니다. 여인은 코코아를 아이

앞에 놓아줍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버립니다.

순간 여인의 눈동자 속에 고여 있던 눈물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커피잔속으로 떨어집니다.

 

생의 모든 의미를 잃어 버린 채, 커져만 가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하얀 죽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려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녀의 계획은 또 다른 자살을 꿈꾸는 한 사내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하늘을 닮은 사내, 너무나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그가 소녀 앞에 나타난 것은 바다가 보이는 동해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였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저에게 나누어 주겠습니까?"

그와의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토니젯티의 <사랑의 묘약> 중에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사내는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가슴 저리도록 슬퍼 보였습니다.

사내는 소녀에게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맞은 편 의자에 털썩

앉았습니다.그리곤 그 슬픈 눈으로 다시 말합니다.

원한다면 곁에 있어 주겠노라고.....

사내가 소녀곁으로 이끌려 온 것은 소녀의 외모나

분위기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소녀가 흘리고 있는 수정빛 눈물이 하도 아파 보였고,

서글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표현하면 어떤 알 수 없는 강렬한 힘이 사내의

 시선을 소녀 곁으로 끌어 당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강렬한 힘.

그건 바로 사내와 소녀를 죽음으로부터 구해 내려는 신의

따스한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하지만 소녀와 그는 혹독한 그 겨울을 너끈하게 이겨냈습니다.

지난날의 슬픔과 방황을 기억의 저편으로 훌훌 던져 버릴

수 있었습니다.봄 햇살처럼 따스한 사랑이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새로이 피어 오른 것입니다.

"기억나세요? 제가 동해 바닷가에서 울고 있을 때 저에게

처음으로 했던 말이요?"

<토스카> 중에서 "별이 빛나건만"이 나직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사내가 소녀를 보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살짝

짓습니다.

"사실 저 그때 눈물을 흘리고는 있었지만 웃음이 나오려고

해서 무척 당황했었어요. 그때 아저씨 표정이 너무 재미

있었거든요.""내 표정이 재미있었다고?"

"예, 나보다도 더 슬퍼 보이는 낯선 남자가 불쑥 나타나서

"당신의 슬픔을 저에게 나누어 주겠습니까" 하는데 어떻게

 웃음이 안 나와요."

"그랬어?"

"만약 제가 그때 아저씨에게 나의 슬픔을 나누어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아저씨의 그 큰 눈에서 소낙비 한

 줄기가 후두둑하고 쏟아져 내렸을 걸요."

"훗훗, 그랬어?"

"내 슬픔보다는 아저씨의 슬픔이 더 커 보였거든요.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제 슬픔이 이 세상에서

제일큰 줄 알았어요. 그때 제가 아저씨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위로 받기 위함이 아니라 아저씨의 그 하얀

슬픔을 제가 나눠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에요."

사내의 꿈은 조각가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조각하는게

그의 꿈이자 소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내는 좀체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다른 길을 강요하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벽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내가

조각하려던 아름답고 소중한 그 대상을 여지껏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었습니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여인에게 다시 묻습니다.

"엄만 왜 여기만 오면 맨날맨날 술을 마시는 거야?"

진한 진토닉 한 잔을 입 안으로 살며시 털어 넣던 여인은

쓸쓸한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살며시 어루만져 줍니다.

 아이에게 들려 줄 만한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냥, 술이 좋아서....."

"피이, 거짓말.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아니야."

"그럼?"

창밖에서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습니다. 파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파도 소리가 커질수록 여인의 눈물은

더 빠르게 떨어집니다. 온 몸을 떨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만은 잊고 싶어서 그래."

"술을 마시면 아빠 모습이 잊혀져?"

"아니, 더 잘 보여."

"그럼 뭘 잊고 싶은데?"

"조금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아빠의 모습을 자꾸만 잊어

 버리려고 하는 엄마의 못된 생각을 잊어 버리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혹독한 시련의 계절인 겨울이 가고 어느덧 대지에는 아늑하고

따사로운 봄 햇살이 싱그럽게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소녀와

사내는 인생에 대해서,미래에 대해서, 소망에 대해서,

그리고 남쪽에서 먼저 필 꽃에 대해서 행복하게 노래합니다.

 둘이 여행을 떠난 건 아카시아 꽃향기가 짙게 품어나오던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두사람은 낡은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 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낯선 곳에 내려 커피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풍족감이 찾아왔습니다.

둘은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가끔은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손을 맞잡고 씩씩하게 걸어 보기도 합니다.

밤이깊을 때까지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두사람의 머리 위로 초록별이 쏟아져 내립니다. 풀벌레의

시샘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사내가

소녀에게 묻습니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소녀가 짓궂은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

"아프리카요."

"아프리카?"

"예."

"하필이면 왜 아프리카지?"

"숨겨 놓은 애인이 그곳에 살거든요."

"애인?"

"예."

"아하, 타잔?"

"아뇨, 치타요."

하나도 웃기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사내는 배꼽을 쥐며

 웃습니다. 석류알처럼 싱그러운 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바보가 되는가

봅니다. 자꾸만 웃음이 쏟아져 나오는가 봅니다.

사내가 소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풀어

놓습니다. 파도처럼 쐬한 그 무엇이 가슴 가득 밀려 옵니다.

소녀가 사내 곁에서 떠나간 것은 이른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사내는 밤낮없이 소녀를 찾아

나섭니다. 우산하나 받쳐 들지 않고 그 거센 빗줄기를

한몸에 받으며 소녀가 갈 만한 곳은 어디든 찾아갑니다.

그러나 소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할수 없습니다. 사내는 허탈한

 표정으로 구멍난 하늘을 바라봅니다. 송곳 같은 빗줄기가

사내의 슬픈 눈을 파고 듭니다. 하지만 사내는 눈을 감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크게 눈을 크게 치켜 뜹니다.

아무말 없이 떠나버린 소녀에게 화가 난 것입니다.

한 마다 소식조차 없는 소녀에게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소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입니다. 사내는 소녀와 늘 만나던

 그 카페로 찾아갑니다. 주인 잃은 맞은 편 의자가

너무나 쓸쓸해 보입니다.

텅 빈 의자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이 왠지

처량해 보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소녀를 기다려야 합니다. 사내는

매일 두 잔의 커피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두 잔의

커피양만큼 눈물을 흘립니다. 가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성급한 사람들이 벌써 첫눈을 이야기

합니다. 소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낙엽이 바람결에

 흩날리던 어느 가을날 이었습니다.

소녀는 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전화기 속에서 금방이라도 수돗물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사내는

소녀에게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얼하며 지냈 느냐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곳이

어디냐고 물을 뿐입니다. 사내는 소녀가 있는 곳으로

뛰어 갑니다. 사내 앞에 놓인 장애물들은 그냥 뛰어

넘습니다. 신호등이 빨간 불이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뛰어갑니다. 저 멀리

소녀가 보입니다. 아니 소녀를 닮은 한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여인의 배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습니다. 사내는 잠시 당황하여 멈칫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바로 옛날의 그 소녀임을 알아봅니다.

"아저씨의 아이를 가졌어요. 행복해야 되는데....."

소녀는 아니 이제 머지 않아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여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하얀 눈물을 와락

토해냈습니다. 사내는 여인의 눈동자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여인의 야윈

어깨 위를 싸늘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사내는

휘청거리를 다리를 겨우 진정시킵니다. 여인이 되어버린

소녀를 힘껏 끌어 당깁니다. 한손으로는 여인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줍니다. 나머지 한손으로는 비에

 젖은 머리결을 어루만져 줍니다.

사내는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어떤일이 있어도 이

여인과 아이만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살려 내겠노라고,

설령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한이 있더라도.....

사내는 아무말 없이 여인을 낯선 회색빛 도시 속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날 밤은 바람 스치는 소리가 너무

서글퍼서 누군가가 말을 걸으면 길바닥에 주저 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그런 밤이었습니다. 사내는

여인을 비좁은 자취방으로 데리고 옵니다. 여인이

입을 옷과, 먹어야 할 음식, 그리고 여인이 읽은

책들을 한아름 사다 놓습니다. 태어날 아이에게

필요한모든 것들도 잊지 않고 하나 가득 사다 놓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굳게 닫혀져 있던 작업실 문을 활짝

엽니다. 구석구석 스며 있는 어둠을 몰아 내기 위해

환하게 등을 켭니다. 뽀얗게 내려 앉은 먼지를 털어 냅니다.

"살릴 거야. 반드시..... 사랑하는 내 여자와 아이만큼은....."

사내는 문을 굳게 걸어 잠급니다.

그리고 한손에는 정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망치를

든 채 앞에 놓인 돌덩이를 쪼아대기 시작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거의 다

되어 갔지만 사내는 작업실 밖으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매일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여인은 사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단정합니다.

사람을 불러 모읍니다. 사람들이 도끼로 작업실

문 손잡이를 부수어 버립니다. 한 줄기 빛이 부서진

손잡이 틈으로 빨려 들어 갑니다. 여인이 사내의

이름을 부르며 작업실 안으로 뛰어 갑니다. 이때였습니다.

-푸드득-

소리와 함께 작업실 안에서 무엇인가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습니다.학이었습니다.

사내가 여지껏 돌을 쪼아 만든 것은 학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학.....

빛을 받아 들인 학들은 새 생명을 얻어 어디론가 훨훨 날아

 갑니다.

여인은 사람들을 밀치고 탈진해 쓰러져 있는 사내를

일으켜세웁니다. 물 한 모금을 입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여인의 눈물 한 방울이 길게 흘러 사내의 콧등 위로

떨어집니다. 얼굴이 새까만 수염으로 뒤덮인 쾡한 눈의

사내가 신음 소리 토해내듯 입을 엽니다.

"약속을 받았어. 천 마리의 학을 조각하면, 그 학이 새

생명을 얻어 날아 가게 되면 당신과 내 아이를 살려주겠다고....."

"누가요?"

"그건 나도 잘 몰라. 작업하는 동안 내내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사내는 여인에게 힘겹게나마 웃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는 망치와 정을 다시 집어 듭니다. 아주 능숙한

솜씨로 돌을 쪼기 시작합니다.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보름이 가고..... 사내가 작업실에서

나오는 경우는 보름에 한 번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인이

잠에 빠져 있는 아주 깊은밤 뿐이었습니다.

어디론가 가서 여인이 먹을 음식을 한아름 사옵니다.

여인이 먹을 약을 구해 옵니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여인의 볼에 살며시 입

맞춤을 합니다. 불러오는 여인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져

봅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사내는 서둘러 방에서

나옵니다. 어디론가 미친 듯 뛰어 갑니다. 날이

밝은 때쯤 다시 작업실로 돌아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여인이 작업실 밖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손톱으로 작업실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하지만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쾡한 눈으로 열심히 돌조각만 쪼아댈

뿐입니다. 등을 돌린 채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작업실 안에서는 언제나처럼 돌 쪼는

소리만 일정한 박자로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엇습니다.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집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여인의 비명소리가 차츰 희미해집니다.

사내의 손에 쥐어져 있던 망치와 정이 힘없이

 떨어집니다. 사내는 더듬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간신히 눈을 뜨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눈동자 속에 돌조각이 하나 가득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내는 무릎으로 기면서 문이 있는

 쪽으로 가려 합니다. 썩은 몸에서 살이 듬성듬성

떨어져 나갑니다. 문을 비스듬히 엽니다.

 강한 햇살이 날카롭게 몰려 듭니다.

"아! 이제 천 마리 학 중에서 한 마리만 남았는데.....

이렇게 끝내야 되다니.... 햇빛을 방은 사내의 몸은

마치 눈사람이 녹아 내리듯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거의 동시에 헤일 수 없이

 많은 학들이 작업실 밖으로 물밀듯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마치 함박눈이 내리듯 새하얀

학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간호사가 여인에게 아기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합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여인은 조심스럽게 아이를 바라봅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한 사내의 눈동자를

기억해 냅니다.

-후두둑-

방금 전까지만 해도 쨍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내립니다.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여인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한 마리 학이 보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 병실 밖에는 분명 한 마리 학이 있습니다.

도심 한 복판에서, 더구나 이렇게 비내리는 날 학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빗물에

흠뻑 젖은 학은 하얀 물기로 가득 찬 큰 눈망울을 깜박이며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주둥이로 유리창을 미친 듯 쪼아대고

 있습니다. 여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간호사에게

아기를 학에게 보여주라 합니다.

학이 유리창 가까이에다 자신의 눈을 갖다 댑니다.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립니다. 학의 울음 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깝습니다. 학은 병실 밖 유리창에 한동안 그렇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학은 아기를 보며 날개를 몇 번인가 퍼덕여 봅니다.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는 듯 병실 주위를 몇 바뀌

 돌아봅니다. 비가 그치고 쨍한 햇살이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 왔을 때는 이미 학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

 뒤였습니다. 그렇게 슬피 울던 학이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간 후였습니다. 여인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합니다.

매일 같이 들리던 돌 쪼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기를

뉘여 놓고 작업실로 달려 갑니다. 그동안 그렇게도

굳게 닫혀 있던 작업실은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여인은 사내의 이름을 부르며 작업실 안으로 뛰어

들어 갑니다. 작업실 안 그 어디에도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껍질을 벗고

날아간 학들의 흔적뿐이었습니다. 여인은 울먹이며

학이 벗어 놓고 간 껍질들을 세어 봅니다. 아무리

세어 보고 또 세어 봐도 학의 껍질은 구백구십구개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사내가 그동안 만들었던 학은 구백구십구

마리뿐이었다는 것을.

마지막 천번째의 학을 완성할 수 없었던 사내는

결국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가 천번째

학이 되었다는사실을..... 사내의 슬픈 눈망울이 떠오릅니다.

병실 밖에서 슬피 울던 학의 안타까운 몸짓이 떠오릅니다.

여인이 웁니다.

침실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기가 웁니다.

저 하늘 끝에서 학이 웁니다.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만, 아빨 얼만큼 사랑했어?"

 

 

".....?"

"피이, 대답 못하는 걸 보니 쪼끔밖에 사랑하지 않았구나?"

"아냐, 사랑했어. 아주 많이....."

"그럼 얼만큼?"

"글쎄, 엄마가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할 걸."

"어째서?"

"엄마는 아빠를 보이지 않게 사랑했거든, 가슴으로만....."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눈에 보이는 사랑은 금새 사라지고, 금새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엄마는 아빠를 가슴으로만 사랑한거야.아무도 모르게

가슴으로만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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