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壬辰倭亂의 秘史!(제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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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lsk55] 쪽지 캡슐

2002-11-21 ㅣ No.4121

 

임진왜란의 비사! 귀화한 1만여명의 왜군들의 활략상

왜장 "사야가(沙也加)"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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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

야트막한 산줄기에 둘러싸인 시골마을 하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슴이 많아 우록동이라 이름 붙여진 동네.

마을은 400년동안 이어온 김해 김씨의 집성촌입니다.

마을 쉼터에는 많은 할아버지들이 모여있는데, 이분들은 김해김씨 사람들이랍니다.

그런데 이들의 시조는 뜻밖의 인물이었습니다.

즉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한 일본의 왜장 사야가(沙也加)였습니다.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가구 200호 가운데, 사야가의 후손은 70여호, 그 수가 약 300여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왜장이었던 사야가의 후손들이 어떻게 김해김씨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을까?

 

 

사야가는 조선에 투항 후, 많은 공적을 쌓게 되고, 그 공을 인정받아 선조로부터, 金海金氏 성을 하사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김충선(金忠善)이 되었습니다.

철저한 朝鮮人으로 말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에 왜군과 싸운 왜군 장수이며, 우리 조선이 임란의 승전을 이룰 수 있도록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일본인입니다.

한국 이름 "김충선!"

그는 1642년, 72세의 나이로 자신으 두번째 고향, 조선땅 우록동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사후, 조정은 대신급에 해당하는 정2품, 정헌대부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왜장 사야가!

그는 조선을 위해 싸웠고, 자신의 남은 일생을 조선인 김충선으로 살아 갔습니다.

누가 뭐래도 "정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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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조선침략을 위해 출병한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부산에 상륙했을 때에

사야가(沙也加)는 바로 그 부대의 선봉장 왜병 장수였습니다.

그는 조선출병과 동시에 조선에 귀순한 "항왜자(抗倭者)"인 것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한 침략에 항명한 일본인 장수!

우리 조선에 "조총제조법과 화약제조법"을 전수하여 임진왜란 1년 후부터 우리 조선군이 신무기인 조총을 갖고 왜병들과 대등한 싸움을 하도록 만든 인물이지요.

그외에도 감추어진 항왜자 약 1만명이 우리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우리의 姓을 하사받아 일본의 이름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항왜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어떤 인물인가?

오늘 저는 여러분께 사야가(沙也加)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이러한 歷史의 秘史를 그 어디서도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이잖아요.

지난 토요일(11/16) 저녁에 방송된 KBS 역사스페셜을 너무나 감명 깊게 들은 내용이라서...

괜히 아는척 했나봅니다. 아~이고 남새스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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