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단순하고 간소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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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덕을 쌓으려면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내가 가끔 인터뷰할 때 ’스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 내 개인적인 소원은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의 부엌 벽에다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하게’ 라고 낙서를 해놓았다. 단순함과 간소함이 곧 본질적인 세계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다 덜어내고 꼭 있어야 할 것과 있어야 되는 것으로만 이루어진 어떤 결정체 같은 것, 그것이 단순과 간소이다. 꼭 있어야 되는 것만으로만 이루어진, 복잡한 것을 다 소화하고 난 다음의 어떤 궁극적인 경지이다.
단순함이란 그림으로 치면 수묵화의 경지이다. 먹으로 그린 수묵화. 이 빛깔 저 빛깔 다 써보다가 마지막에 가서 먹으로 하지 않는가. 그 먹은 한 가지 빛이 아니다. 그 속엔 모든 빛이 다 갖춰져 있다. 또 다른 명상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그것은 침묵의 세계이다. 텅 빈 공의 세계이다.
단순과 간소는 다른 말로 하면 침묵의 세계이다. 또한 텅 빈 공의 세계이다. 텅 빈 충만의 경지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이 이 단순과 간소에 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가득 채우려고만 하지 텅 비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어야 거기 새로운 것이 들어찬다. 우리는 비울 줄을 모르고 가진 것에 집착한다.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 찬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진정으로 거기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다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이다. 텅 비어 있을 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텅 비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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