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베란다의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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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9-01 ㅣ No.5294

 

 

 

한창 바쁜 근무시간에 딸 아이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여보세요? 119는 왜?"

난데없이 119를 불렀다는 딸 아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참새가 구멍에 빠졌단 말야. 엄마 잠깐만...."

전화를 건네 받은 119대원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혼자 집을 보고 있는데 베란다로 덤벙대는 참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어..? 참새네. 어디로 들어왔지?"

그 참새가 베란다 바닥을 쪼며 다니다가 작은 구멍에 빠졌는데 도무지 나오질 못하자 딸아이가 119를 부른 것입니다.

"저.. 아저씨, 동물도 구해 주시나요?"

"물론 구해주지."

119대원은 곧 참새를 구하러 출동했습니다.

"베란다를 조금 깨야 되겠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119대원은 난처하다는 듯 내게 물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베란다에 구멍을 낸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딸 아이의 간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아이, 엄마. 안 그러면 새가 죽는단 말야."

그 참새는 왜 하필 우리 집 베란다에 들어왔으며 왜 또 그 작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담....

속이 상했지만 아이의 성화 때문이라도 허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엄마, 정말? 네 알았어요."

허락은 했지만 괜히 일이 커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한참 뒤 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 베란다 안 깨도 됀대. 새가 나왔어."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구조대원들이 묘안을 짜낸 것입니다.

아래에서 불빛을 비추고 위에서 몰아붙이는 양동작전을 편 것입니다.

"얘야, 안 깨도 되겠다. 이렇게 하면....

물이 비치는 대로.... 좋아 좋아."

새는 작전대로 불빛을 따라 구멍사이 작은 틈을 비집고 나와 하늘 멀리 날아갔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이의 방문을 열였습니다.

"아휴..우리 착한 딸, 잘 자네..."

그날 밤, 새 한 마리를 구하고 고단해 잠이 든 아이의 일기장엔 그 대단한 무용담이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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