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작은 안나의 집" 봉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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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수 [dmkkk] 쪽지 캡슐

2004-07-30 ㅣ No.6205

작은 안나의 집 봉사를 다녀와서

 

                                                           2004. 7. 26   박덕수 요셉

 

매월 넷째 일요일은 평화의 모후 레지오팀에서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에 있는 작은 안나의 집으로 봉사를 가는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7시40분에 7명의 단원들과 함께 서울 고덕동을 출발한다. 일요일이지만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중부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좌측으로 바라보이는 예봉산과 검단산 정상부위가 운무에 살짝 가려있고 한강의 아침안개를 머금고 있어 제법 고산다운 면모로 바라다보이고 아침을 닮아 싱그럽게 펼쳐져 있다. 수없이 자주 오르내리는 산이지만 넓은 치맛자락의 주름과 같이 골과 골을 이루어 흘러내린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작은 안나의 집에는 원래 아침 8시30분에 미사가 있었고 그래서 미사시간을 맞추러 서둘렀는데 아침 6시30분으로 앞당겨졌단다. 봉사를 빨리 끝내고 다른 곳에서 미사를 드려야 하겠기에 시작기도를 하고는 우리가 알아서 식당 청소를 하기로 한다. 원래는 수녀님께서 봉사일거리를 할당해 주시면 착한 학생들과 같이 열심히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데 아직 수녀님께서 출근을 하실 시간이 되지 않아서이다.  

식탁을 닦고 의자를 식탁위로 들어올리고서는 바닥을 쓸고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는 밀대걸레로 닦는데 자주 청소를 하는 식당이지만 청소거리가 많다. 기둥도 물걸레로 정성 들여 닦아내고 벽면과 턱진 부위, 구석구석을 꼼꼼히 털어내고 닦는다. 청소를 시작한지 5분도 되지 않아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티셔츠 바깥으로 땀이 배어 나온다. 요즈음 폭염이 며칠 동안 계속되는데 오늘도 아침부터 푹푹 찌는 보통이 아닌 날씨다. 땀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떨어지는 땀방울을 물로 삼아 바닥을 훔친다. 바닥이 한번 쓸고 닦고 나서는 깨끗해 보이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대리석 바닥에 거뭇거뭇하게 또는 누르스럼하게 눌러 붙은 음식 찌꺼기 흔적이 많다. 대리석 무늬와 비슷해서 자세히 보거나 손끝으로 긁어보지 않고서는 구분이 잘 안 된다. 연세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식사를 하시니 아무래도 많이 흘릴 테고 지나다니시다가 밟곤 하니까 그렇게 눌러 붙나 보다.    

우리 스스로는 음식을 흘리지 않고 똑바로 먹을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 또 감사할 일이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장 상사 한 분이 가끔씩 하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약주를 마시고 안주를 먹을 때 넥타이나 와이셔츠에 자주 흘리곤 해서 집에 가서는 칠칠맞다고 야단을 맞곤 한다는데 그 어찌 본인만의 잘못일까! 이미 나도 모르게 나의 수족이 내 의지대로 전적으로 따라주지 않음을 의미하고 늙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건데.

그러니 사모님들이시여, 낭군님들께서 혹시나 흰 외이셔츠에 고추장 자국을 묻혀 오더래도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시기를…… 그리고 낭군님들께서 이미 늙어가고 있음을 아시어 잘 대해 주시기를. 단 약주가 과해서 흘리고 묻혀오는 것은 알아서 조치(?)하시기를.

50대의 나이에서도 그럴진대 연세가 7-80은 다 넘으시는 것 같은 여기 작은 안나의 집 식구들은 오죽이나 더할까. 땀 흘려 긁어내고 닦아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음식을 흘렸을 여기 노인들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그리 오래도 아닌 며칠 전에 이 바닥에 음식 자국을 내었을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 분께서도 계시리라.

당신에게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렇게나 원했던 내일이었다. 오늘은 당신에게 남아있는 생의 첫날이다. 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열심히 또 열심히 살 일이다.       

밀대로 그냥 어지간히 밀어서는 닦이지를 않으니 생각 끝에 주방에서 칼을 가져와 일일이 긁어낸다. 앞으로는 식당청소를 할 때는 껌 자국을 긁어내는 주걱칼 같은 것이 있어야 하겠다. 꼼꼼히 한 시간 정도를 청소를 하니 식당이 더 환해 보인다. 나중에 수녀님께서 오시어 청소를 잘 해주었다 하시고 식당이라서 돌아서면 또 청소를 해야 한단다.

청소가 미쳐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식당의 식탁의자에 다소곳이 와 앉으신다. 넥타이를 단정히 맨 차림에 허리가 곧으시고 곱게 늙으신 모습이 젊을 때는 한 가닥 하셨던 기품이 깃들어 계신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 없으시다. 그저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계실 뿐. 어떤 할머니는 소일거리가 마땅치 않았는지 식탁 위에 테이프자국을 긁어내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할머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세요. 해도 할아버지와 같이 또한 묵묵부답이다. 젊은것들이 니들이 알면 뭘 얼마나 아느냐는 생각에서인가?

청소를 다 끝내고 세탁 실에서 걸레를 빨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묵주기도 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빨래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도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았더니 어떤 방에 편찮아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계시고 대여섯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그분을 위해 묵주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 허리가 거의 방바닥을 향해있고 체구는 가벼운 바람에라도 날아갈 듯 자그마하시지만 묵주기도를 바치는 그 소리만큼은 천둥만큼이나 우렁차다. 몸 구석구석 어디 한군데라도 아니 아픈 곳이 없을 고령의 노인들이지만 나보다 더 아파하시는 한 할아버지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고 계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우시다. 모두가 생을 그리 길지 않게 남겨두신 분들이니 무슨 가식이 있겠으며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마음을 모아 정성을 모아 기도를 드리신다. 인공적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이 세상의 그 어떤 외부적 아름다움보다는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같이 아무런 가식 없이 오롯한 정성으로 동료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처럼 남을 위해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적 아름다움이 참 아름다움이리라.

세월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니 머지않아 우리도 할아버지가 될 테고 그때는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함께했던 시간의 필름들을 풀었다 되감았다 하면서 어떤 성취에 만족해 했음 보다는 그렇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더 많이 생각하겠지. 사랑하는 가족과 자주 함께 하지   못 했었던 것과 내가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어야 했을 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좀더 주위를 넓게 바라보지 못하고 또한 자주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 등등을.

지나온 발자취에 회한과 아쉬움보다는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흐뭇함이 더 많아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정말 열심히 보람 있게 살아야 하는데 언제나 생각뿐이고 일주일, 한 달이 지나가면 또 아쉬움만 남는다.

그래, 맨날 아쉬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삶의 본 모습일 것이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 인생에도 가을이 오리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 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름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묵주기도 소리를 뒤로한 체 식당으로 돌아와 마지막 정리를 끝내고 오늘 봉사를 마친다. 오늘 봉사는 잠깐 동안의 육체적 노력이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묵주기도로 인해 실로 많은 것을 느낀 은혜와 감사의 시간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향한 조그만 사랑을 만 배로 갚아 주셨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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