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전함 發進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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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12-06 ㅣ No.3669

                           

                                   전함(全艦) 발진(發進)하라!

                              

고등학교 시절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교 인근에 있는 경남극장에서 당시에 유명한 미국 배우인 챞 찬들러 주연의 영화 “전함 발진하라!(Away All Boats !)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학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체관람 뿐이었고 만약에 몰래 극장에 들어갔다가 지도선생에게 발각되는 경우에는 정학처분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교복과 모자는 단골로 다니는 극장 옆 자장면 집에 맡기고 만원 관중석에 용케 숨어있으면 극장 문을 드나들 때만 조심을 하면 되는 그야말로 스릴 만점의 놀이이기도 했다.

그때에 본 여러 편의 영화 중에서 지금 이 시점에 왜 하필이면 ‘전함 발진하라!’는 그 영화가 생각날까? 자세히 짚어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면 태평양전쟁에 출전하는 미 해군 대형 전투함 미조리 호에 승선하는 신병들의 면면이 나온다. 뒷골목에서 막되 먹은 짓을 하던 젊은이를 비롯해서 학교에 다니다가 자원입대를 한 젊은이, 거리에서 신문팔이를 하다가 온 청년, 남부출신, 북부출신 등등...그야말로 오합지졸로 이루어진 신병들이 공동운명체인 거함 미조리 호에 신병 보충병으로 올라탄다.

 

신병들은 걸핏하면 저희들끼리 편을 갈라 패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거나 카드놀이 등을 하여 그들을 전투인력으로 양성해야할 지휘관인 함장이 골치를 썩힌다.

만약에 그 상태에서 적함이 나타나 전투를 치른다면 함포사격 한번 제대로 쏴보지도 못하고 미조리함이 격침될 것 같았다.

혼자 고민을 하던 함장이 어느 날 갑판 위에 부하들을 전원 집결시키고 갑자기 엉뚱한 명령을 하달한다.

“지금부터 내가 애완용으로 키우는 물개를 보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경례를 붙여야 한다. 만약에 물개에게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시 명령 불복종으로 간주하여 영창에 보내겠다”는 것이 그의 명령이었다.

부하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함장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물개에게 경례를 하지 않는 이들이 명령불복종이라는 이유로 영창에 갇히게 되자 부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함장이 똘아이야. 미친 넘 같애"

마지못해 물개에게 경례를 붙이는 장교나 병들도 함장이 돌아버린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욕을 해 댔다. 

“만약 저런 사람을 함장으로 두고 전투를 치렀다가는 우리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라는 공감대가 그들 사이에 차츰 형성되고

“저런 함장은 우리가 뭉쳐서 지휘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외쳐댔다.

결국은 편을 갈라 싸우던 병들과 장교가 하나로 뭉쳐 선상 반란이 일어나고 함장은 부하들에 의해 연금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차츰차츰 하나로 뭉쳐진 부대원들은 부함장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착실히 전투훈련을 받는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왔다. 눈앞에 일본 전함이 나타난 것이다.

각자 전투 위치에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전투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백전노장인 함장의 지혜가 필요했고 참모회의에서 함장의 연금을 풀기로 결정하고 미조리 호의 지휘를 함장에게 다시 맡긴다.

 

함장은 일치단결된 부하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다시 지휘봉을 잡은 함장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다음 “때로는 아이가 어머니를 구한다”는 유언을 남기며 적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다.

적의 전함을 격침시켰지만 미조리함도 일본전함의 어뢰에 맞아 침수가 되고 엔진마저 꺼져버린 위급한 상태였다.

서서히 가라앉는 미조리함을 내려다보며 부함장은 ‘때로는 아이가 어머니를 구한다.’는 함장의 유언의 의미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모선인 미조리함 옆에 실려 있는 8개의 상륙정이 곧 함장이 말하는 ‘아이’임을 깨닫고

“그래! 저것이다!. 즉시 저 상륙정을 바다에 띄워라! 와이어로프로 상륙정을 모함에 연결하라!”

부함장이 외친다. 사병들은 즉시 전 상륙보트를 바다에 띄우고 로프로 모함을 예인할 차비를 한다.

드디어 부함장의 명이 떨어진다.

“전함 발진하라!”

그렇게 하여 함장의 유언대로 상륙정(아이)이 모함(어머니)을 끌고 안전하게 항구로 돌아온다.

함장의 시신이 성조기에 싸여 함교를 내려오는 동안 전 부대원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올리며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입술로 삼킨다.

오합지졸인 부하들의 일치단결을 위해 얼토당토 않는 명을 내려 스스로 감방행을 택한 함장의 고귀한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자신들의 우매함에 대하여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45년전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 몰래 본 그 영화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이렇게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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