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2주일

인쇄

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1-30 ㅣ No.2508

연중 제2주일(나해. 2003. 1. 19)

                                        제1독서 : 1사무 3, 3a. 4∼10. 19

                                        제2독서 : 1고린 6, 13c∼15a. 17∼20

                                        복   음 : 요한 1, 35 ∼ 4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한 겨울에 봄과 같은 따뜻함을 느껴본 한 주간입니다.  마음이 따뜻하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모든 것이 따뜻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히말리야 근처에 위대한 성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스승 밑에 젊고 똑똑한 제자가 생겼습니다.  젊은 제자는 간절하게 "어떻게 하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스승은 "그래 내가 가르쳐 주마.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 1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어느 날 스승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제자를 데리고 숲 속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너에게 고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내 뒤를 따르라" 하시고는 정신 없이 숲 속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달리던 스승은 큰 아름드리 나무를 끌어안고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는 나무에 매달린 스승을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나무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무가 스승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도리어 나무를 잡고 놓지 않고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나무가 스승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이 나무를 잡고 놓지 않는 것이니 나무를 잡은 손을 놓으라고 하니, 스승은 마지못해 나무를 놓으면서 "제자야 바로 이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란다" 하고 일러 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사무엘은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사무엘은 스스로 응답합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하느님께서 "누구야, 너 오늘부터 성당에 나가거라" 하는 개인적인 부르심을 받고 교리를 배우고 영세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어쩌다가 돌아가시는 분의 유언이나 장례를 치르면서 봉사해주고 기도해주는 분들에게 감동 받아 교리반에 오시는 분들은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시몬은 동생 안드레아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가지만 그 분의 부르심에 스스로 응답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그냥 그분이 누군지 궁금해서 호기심으로 안드레아를 따라 나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라는 말에 메시아를 따르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갈등도 있었을 법합니다.  '혹시 아니면 어쩌나,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는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내렸고, 예수님은 그의 선택에 축복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 너를 게파로 부르겠다"하고 시몬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예부터 히브리인들은 이름을 인격 그 자체로 여겼습니다.  이름은 단순히 그 사람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의 본성을 결정짓기도 합니다(1사무 25,25).  그래서 이름이 바뀌는 것은 그의 인생이 바뀜을 뜻합니다(창세 17,5. 32,29).  시몬은 이름이 바뀜으로써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몸은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사람의 운명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어르신들은 모든 게 팔자소관이라고 자주 말씀하시고, 젊은 사람들은 '운명', '팔자'라는 단어에 친숙함을 느낍니다.  인터넷 광고에 자주 오르는 '사주팔자, 운세 봐 드립니다'등의 문구가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운명지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 운명이라는 것에 머물러 버리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과 명예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물질과 명예를 붙잡고 놓지 못하고 괴로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가 이겨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