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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이 좋아, 정말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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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12-04-18 ㅣ No.7556

나는 꽃이 좋아, 정말 좋아!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매주 월요일이면 꽃을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아마도 남자 중학교에 꽃을 든 귀여운 학생,

아니면 뭔가 여성스러운 남자 녀석이 등교하는 모습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잊혀졌던 아련한 옛 추억이었으며, 행복했던 기억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꽃을 예쁜 병에 꽂으며 이 세상에 아무도 모르는 어떤 소중한 것을

홀로 차지한 것처럼 아주 작은 행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를 입학하는 첫 시간에

우리 담임선생님은 우리 교실에 시커먼 놈들만 우글거리니,

우리 교실에 꽃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씀을 지나가는 말씀으로 듣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꽃을 들고 등교하는 못난 놈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꽃을 들고 등교하는 나를 놀려대도,

나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땀나는 이마를 손으로 닦으며

그저 미소만으로 답을 했습니다.

꽃집 아주머니도 매 주 꽃을 사러 오는 나를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하더니

이내 웃음으로 반겨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꽃집 아주머니는

나에게 꽃꽂이 하는 방법을 조금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매주 하던 꽃꽂이를 어쩔 수 없이

시나브로 그만 두게 되었지만

가끔 꽃집을 지날 때마다

꽃을 들고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나는 다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일찍 성당에 와서 교사 회의실을 청소 하고,

얼마 되지 않는 꽃 몇 송이를 회의 탁자 위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이리 저리 자리를 옮겨 가며 어느 자리가 가장 좋을까 고민하다가

꽃병 자리를 정하고 마음속으로 기뻐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누가 꽃을 놓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꽃을 보며 성경공부를 하고,

교안발표를 하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꽃 선물을 좋아합니다.

“금방 시들어 버릴 것인데, 꽃 선물이 뭐가 좋으냐?”

어떤 친구가 나에게 핀잔 섞인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시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시들어 버릴 것을 알면서도 주는 사랑이 있어서 그 선물이 더 고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조금은 궁색한 답변이었지만 나는 꽃이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다 시들어 버린 꽃다발을 버리면서,

나는 꽃을 준 사람의 사랑이 시들지 않고 오래 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린 마음으로 꽃을 버리며

내 사랑도 열매 맺는 사랑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우리 인생도 시들고 늙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꽃이 만발한 청춘시기를 지내면서도,

청춘의 의미와 그 아름다움을 잘 알지도,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빛이 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꽃이 지는 시기가 찾아오니 아름답고 꽃다웠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꽃이 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꽃다운 시절이 다 지나갔다고

섭섭해 하거나 서러워 하는 모습을 간간이 발견합니다.

나도 화려한 꽃다운 시절을 그리워하며

늙어가는 내 모습을 감추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나는 화려한 꽃다운 시절보다 더 아름다운 시기가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주름살과 흰머리카락을 감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못 되나 봅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나는 내 얼굴과 목덜미, 손등에 새겨지는 주름살을 반기고 자랑할 것입니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기 위해 지혜를 간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분은 꽃처럼 향기로운 분이셨고,

그분이 남겨주신 말씀과 삶의 열매는

우리 모두가 먹고도 언제나 남아도는 음식이며 향기로운 음료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늘 시들지 않는 꽃으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는 길을 당신 스스로 택하시며,

우리도 한 알의 죽는 밀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땅 속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마침내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분이 땅에 떨어져 죽으시어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먼저 꽃을 피우고,

새로운 생명인 열매를 준비하기 위해 시들어 땅에 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향기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제대에 꽃이 아름답게 꽂혀있습니다.

이 꽃을 봉헌한 사람들은 복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 시리고 아픈 봄날에 꽃을 만끽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꽃을 선사할 것입니다.

내가 옛날 어린 시절에

우리 동무들에게 꽃을 선사했듯이

내 마음의 꽃을 꺽어 그대에게 주렵니다.

(수원교구 밤밭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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