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바그다드 까페

인쇄

방기숙 [mam] 쪽지 캡슐

2003-06-01 ㅣ No.4554

 

어제 학교에서 C.A.를 실시했습니다. 1,2학년은 수화를 배우러 가고 3학년은 앨범 촬영을 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바그다드 까페’라는 영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먼지 나는 황야가 화면에 뜨고 선명하지도 못한 영상에 우리 친구들은 벌써 다 알아보았다는 듯이 그저 끼리끼리 떠들기만 합니다. 몇 번을 주의를 주고 기다리다가 결국’꽥’ 소리를 치고 맙니다. 정말 ’꽥’입니다.

 ’이런 유치한 놈들, 그래 그냥 저급하게 살아라.’

 매년 하곤 하는 ‘소리치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또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고3이 된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선생의 독한 말에 기가 질려 말을 듣는 척 이렇게 저렇게 기대어 영화를 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의 전반부는 지루한 편입니다. ’calling you’의 멜로디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계속 영화를 보도록 강요하기가  아마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calling you’의 멜로디는 다행히 선전에서 들어서 알고 무엇인지 매력이 있는 음악입니다. 그 덕에 전반부를 잘 넘겼습니다.

 마술이 시작되며 영화를 즐기는 아이들이 늘어났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나도 다른 걱정 없이 또 한번 영화에 몰두합니다. 학교에서 보면 화면이 커서 집에서 볼 때보다 더 좋습니다. 나는 이 영화를 네 번째 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감격입니다. 어쩌면 오늘은 학교 일로 상처를 받은 나에게 이 시간을 통해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실 것 같습니다. 점차 나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 까페에 사람들이 몰려오며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난 듯한 분위기입니다. 야스민이 다시 돌아와 마술 공연을 할 때 나는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내 기쁨과 신명을 즐깁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습니다.

 

“얘들아”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앞에 섰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놀랄 정도로 나에게 집중을 했습니다. 나도 갑자기 더 진지해졌습니다.

‘이 아이들도 깊은 생각이 드나보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겠니? 야스민은 자신의 불행 속에 빠지면 그 사람들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하겠지만 그이가 해낸 일을 생각해 보렴. 너희도 누군가가 너희를 부르면 응답해야 한다. 그 부름은 저렇게 나를 멸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모습 속에도 있다는 것을 -정말 다른 이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은 대개 저렇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생각해야 한다. 나도 너희 중 나를 힘들게 하는 친구들은 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아이들은 그 어떤 수업보다도 열심히 내 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작품이 주는 기쁨과 그 효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무시하는 이를 그대로 받아 들여라. 야스민처럼’

나는 이번 주에 학교 일로 몹시 화가 나고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과 그리고 학교와.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안에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해보려고 기를 씁니다.

언젠가 내가 학교에서 겪는 마음 아픈 일들을 글로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아주 담담한 마음으로 모두를 용서하면서.

 

‘바그다드 까페’

아마 올해 안에 한번은 또 보게 되겠지요.

새겨 보아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2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